'TV에서 퀴즈가 나오면 스마트폰으로 답을 보낸다. TV 사회자는 그 답을 보고 정답 여부를 방송에서 알려준다. 집에 앉아서 TV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할 수 있는 것이다.' 작년 5월 미래창조과학부는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이 개발한 이 같은 '비욘드(Beyond) 스마트TV 기술'을 '국가 연구개발 우수 성과 100선'의 하나로 선정해 홍보했다.

하지만 이 성과는 가짜였다. ETRI 연구 책임자는 아무 관련이 없는 특허 31건을 해당 과제의 성과처럼 꾸며 허위 연구 결과를 제출했고, 관리를 맡은 정보통신기술진흥센터는 이를 그대로 인정했다. 우수 성과 100선 추천서에도 12건의 가짜 특허가 들어갔다. 이 과제에는 4년간 374억원의 정부 연구비가 투자됐다. 감사원 감사에서 드러난 사실이다.

우리나라 공공 연구·개발(R&D)이 투자는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섰지만 성과는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그런데도 실적을 부풀려 대부분 과제가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투자는 세계적, 성과는 우물 안

우리나라 정부 R&D 예산이 국내총생산(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12년 기준 4.39%로, 세계 1위다. 투자 규모도 미국·일본·중국·독일·프랑스에 이어 세계 6위다. 그 결과 국제 학술지 논문 수 세계 10위, 특허 출원 세계 4위에 올라섰다. 외형은 이처럼 화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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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생산성은 초라하다 못해 형편없는 수준이다. R&D로 지출한 예산과 그 연구 결과인 기술로 벌어들인 수입의 비율을 보면 공공 R&D에 계속 돈을 써야 하나 의문이 든다. 2012년 기준 공공 연구 기관의 R&D 생산성은 1.80%로 미국(10.83%)의 6분의 1 수준이다. 100원 써서 2원도 못 벌었다는 말이다.

논문·특허도 마찬가지다. 논문이나 특허는 다른 사람이 많이 볼수록 가치가 높다는 뜻이 된다. 우리나라 논문의 피인용 횟수는 세계 32위로 슬로베니아, 태국보다 낮다. 미국에 등록한 특허도 80% 이상이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았다. ETRI가 대대적으로 홍보했던 파장분할다중화 광전송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미국 특허가 5건 등록됐지만 기술 이전은 전무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공공 R&D가 투자에 비해 성과가 부진한 이유로 "소규모 과제가 급증하면서 체계적 관리가 어렵게 된 점"을 꼽았다. 공공 R&D 사업 과제 수는 1998년 1만3715개에서 2013년 5만865개로 크게 늘었지만, 이 중 사업비 5000만원 미만인 소규모 과제가 32%(1만6171건)에 이른다. 산업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중요하고 핵심적인 과제가 아니라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 자잘한 과제를 나눠 먹기식으로 예산을 받아서 한다는 말이다.

평가 기준도 부처마다 제각각이다. 이우일 서울대 연구부총장은 "미국, 독일, 프랑스는 국가 R&D 평가 기관이 하나이지만 우리는 13개 부처에 17개, 관련 규정도 372개나 된다"고 말했다.

'좀비 벤처' '대포 연구원' 量産

정권에 따라 평가 기준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문제다. 작년 초 대덕연구단지에서는 태양광 연구에서 손을 떼는 연구자들이 속출했다. 지난 정권에서는 태양광 같은 녹색 기술이 대세이다가 지금은 ICT(정보통신기술)와 사업화가 최우선 조건이 됐기 때문이다. 창업이 지상 과제가 되면서 정부의 각종 공모전 입상 경력을 내세워 사업 실적도 없이 공공 R&D 지원만으로 연명하는 '좀비 벤처'도 나왔다.

공공 R&D 예산은 '눈먼 돈'이란 인식이 퍼져 있어, 이름만 빌려주고 연구는 하지 않는 이른바 '대포 연구원'까지 등장했다. 자신의 전공과 전혀 무관한 과제에 이름을 빌려주는 방식으로, 여러 연구에 이름을 올려놓고 연구비와 성과를 공유하는 것이다.

박희재 산업통상자원부 R&D전략기획단장은 "시장에 통할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공공 R&D 전반을 조정할 수 있는 강력한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 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