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은 건강한 사람이 나이 들어 아플 때에 대비하려고 가입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최근 이런 상식을 뒤엎은 역발상 상품들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병이 있는 사람도 가입할 수 있는 일명 '유병자(有病者) 보험'이 등장하고 있는 것이다. 보험 시장이 포화 상태로 접어들면서 생겨난 현상이다. 건강한 사람들만 손님으로 받고 질환이 있는 사람들은 문전박대해왔던 보험사들이 수익 확보 차원에서 유병자 보험이란 새로운 시장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의료 기술이 발달해서 고혈압이나 당뇨병 같은 질환은 관리가 가능해졌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금융 당국도 유병자 보험 출시를 독려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앞으로 관련 시장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단, 유병자 보험은 모든 질병에 대해 문턱을 낮춘 것은 아니고, 당뇨나 고혈압 등 평소에 관리만 잘한다면 얼마든지 건강한 사람 못잖게 생활할 수 있는 만성질환 중심으로 신상품이 나오고 있다. 새로 등장한 유병자 보험은 주로 암이나 뇌출혈, 급성심근경색증과 같은 중대 질병을 집중 보장해 준다. 예전엔 만성질환이 있다고 하면 이유 불문하고 보험 인수를 거절했는데, 실제 통계를 살펴보니 만성질환자가 중대 질병에 걸릴 확률이 그리 높지 않다는 점에 근거해 보험 가입을 받아주고 있는 것이다. 유병자 보험은 건강한 사람들이 가입하는 보험에 비해 가격이 10~30% 비싸지만, 일반인보다 질병이 생길 가능성은 분명 높기 때문에 노후 질병 위험에 대비하려는 50대 이상 유병자들은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본지 재테크팀은 만성질환은 있지만 마음은 20대 못지않게 팔팔한 병자들을 위해, 시중에 판매되고 있는 유병자 보험 9종을 분석했다. 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에 의뢰해 시판 중인 유병자 보험을 전부 추천받은 다음에 꼼꼼하게 비교했다. 평가에는 강지영 한국금융투자자보호재단 연구원, 어경석 삼정회계법인 금융사업본부 이사, 이천 희망재무설계 대표,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가나다순)가 참여했다.

그래픽=구선아 인턴기자

간편 가입·원스톱 보장 가능한 동부화재 1등

시중에 나와 있는 유병자 보험은 회사별로 보험료뿐만 아니라, 보장 내용에서 차이가 컸다. 평가단은 '무늬만 유병자 보험'인 경우에는 박한 점수를 주었고, 질환이 있는 소비자가 간편하게 가입할 수 있으면서 실질적인 보장을 받을 수 있는지를 집중적으로 따졌다. 특히 대다수 유병자가 걱정하는 실손의료비나 암·뇌졸중·뇌출혈 및 급성심근경색 등 치료비가 많이 나오는 질병에 대해 보장을 잘해주는지 살폈다.

그 결과, 평가단이 가장 후한 점수를 준 상품은 동부화재의 '아파도! 행복장수종합보험'(10점 만점에 7.68점)이었다. 당뇨나 고혈압이 있는 50대는 까다로운 서류 제출이나 방문 진단 없이 바로 보험에 가입할 수 있어 '스트레스제로 보험'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실손의료비 등 일부 담보는 별도로 심사를 받아야 하고 추가 보험료도 내야 하지만, 심사를 통과하면 한 개 보험으로 모든 위험에 대비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으로 꼽혔다. 관상동맥우회수술비 등 경쟁사에 없는 특화된 보장이 있고, 보험금 부지급률도 평가 대상 중 양호한 수준이었다.

2위는 메리츠화재의 'The넓은 건강보험'이 차지했다. 당뇨 환자는 서류 심사와 진단 시 제출해야 할 서류가 많아 번거롭긴 하지만, 통과만 한다면 질병입원비 담보도 가입할 수 있어 시중에 나와 있는 상품 중에 실질적인 보장을 받을 수 있는 범위가 가장 넓어 유리하다는 지적이었다. 보험료는 갱신형과 비갱신형 중에서 고를 수 있고, 한국인의 5대 질환(암·뇌·심장·간·폐질환)에 대해 집중 보장해 준다.

현대해상의 '간편가입건강보험'은 3위를 차지했다. 50~75세가 고혈압이나 당뇨뿐 아니라 어떤 질병이든 3가지 조건(5년 내 암진단·치료, 2년 내 입원·수술, 3개월 내 의사 입원·수술 등 추가 검사 소견)에 해당하지 않으면 서류 제출이나 건강진단 없이 간편하게 가입할 수 있다. 간편가입보험 가입자에게도 상해·질병 사망보험금을 보장해 주고, 상해·질병입원일당으로 3만원씩 준다.



중하위권은 상품별로 색깔 뚜렷


4위를 차지한 한화생명의 'The따뜻한 고혈압케어건강보험'은 지난 1월 출시된 따끈따끈한 신상품이다. 고혈압 환자만 가입할 수 있는 전용 보험으로, 무심사 가입이 가능하다. 신상품은 고혈압 합병증으로 발병하기 쉬운 뇌출혈, 급성심근경색증, 말기 신부전증과 같은 성인병 관련 질병을 보장해준다. 보험 가입 후 혈압약 복용 및 합병증 없이 정상 혈압으로 돌아오면 보험료가 싼 일반 상품으로 전환도 가능하다. 단 최근 3개월 이내 입원·수술 소견이 없는 등 조건은 충족해야 한다. 한 전문가는 "고혈압 환자 중에 암·뇌졸중·급성심근경색 등의 진단금을 보장받고 싶다면 고려해볼 만하다"고 평했다.

5위는 한화손해보험의 '마이라이프 투모로 종합보험'이었다. 고혈압 플랜과 당뇨 플랜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다. 심사 기준은 다소 엄격하지만, 각 특약의 보장 내용은 독립적으로 운영되어 질병에 따라 보험금을 추가로 받을 수 있어 폭넓게 위험을 관리하려는 가입자에게 적당하다는 평이었다. 6위인 동양생명의 '수호천사고혈압Yes정기보험'은 고혈압 환자 전용 상품으로, 일반사망 시 최대 3000만원, 뇌출혈·급성심근경색증은 최대 3000만원, 일반암은 최대 3000만원을 보장해 준다. 만기환급금이 없는 순수보장형으로 설계되어 보험료는 저렴하지만, 최대 보장 나이가 85세까지여서 다소 아쉽다는 평이었다. MG손해보험의 '천만인파이팅통합보험'은 질환별로 다양한 내용을 보장하고 있어 눈에 띄지만, 초진 기록지, 검사 결과지 등 보험사가 요구하는 심사 서류가 많아서 고생을 많이 해야 하는 반면, 소비자 수고에 비해 보장 금액이 인색하고 보험료도 다소 비싸서 잘 따져봐야 한다는 조언이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