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후기 지방지도 강화부 전도(규 10350), 1872년,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강화도 옛 지도 중에는 벌(浌)이라고 적힌 것도 있다. 칠 벌(伐)에 삼수변(氵)이 붙은 글자다. 난 이걸 '뻘'이라고 읽는다. 썰물 때는 땅이 되었다가 밀물 때는 바다가 되는 곳이다. 유럽 북해 연안, 미국 동부 조지아 연안과 함께 우리나라 서해안 지역을 세계 3대 갯벌이라고 한다.

▲ 강화도의 해안선. 네이버지도

강화도에서 갯벌을 잘 보려면 남쪽으로 가야한다. 초지대교를 건넌다. 남쪽 해안도로를 달린다. 동검도 옆을 지나며 차창 밖을 보는데 갯벌이 너무 너무 아름다웠다. 일행 모두 물 빠진 드넓은 갯벌을 보고 어쩔 줄 몰라 했다.

▲ 선두포. 간척의 역사를 보여준다.

선두포에서 차를 세운다. 선두포 유로 낚시터가 있는 곳이다. 겨울에는 얼음이 얼어 이곳에서 썰매를 탄다. 제방 안쪽 썰매를 타는 곳은 예전에는 바다였던 곳이다. 옛지도를 보면 안쪽으로 깊게 바닷물이 들어왔다.

동해안과 달리 서해안은 밀물과 썰물이 있고 갯벌이 형성되어 있다. 그래서 간척지와 염전은 대부분 서해안에 있다. 이 곳 선두포의 선두(船頭)는 뱃머리라는 뜻이다. 배가 이곳까지 들어왔다는 말이다.

간척지라고 하면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에 이루어진 줄 아는데 고려시대에도 조선시대에도 계속 간척은 이루어졌다. 노파심에서 사족을 붙이자면, 간석지는 갯벌을 말하는 거고 이곳을 논으로 바꾼 걸 간척지라 부른다.

조선후기 지방지도에도 이곳에 제방이 표시되었고 언(堰)이라고 적었다. 언(堰)은 방죽, 막다, 보를 막다는 뜻이다. 방죽 위에는 도로 표시가 되었다. 제방을 쌓아 바닷물을 막은 것이다. 제방 밖에는 염처(鹽處)라고 적었다. 안쪽은 민물, 밖은 바닷물이 되는 것이다.

▲ 선두포 비석군

선두포 수문에서 150m 쯤 가면 비석들이 보인다. '사기리 선두포 비석군'이라 이름붙인 곳이다. 지금은 비석이 5개가 보이는데 예전에는 6개였다. 하나는 강화역사박물관으로 옮겨 놓았다. 그 비석 이름이 선두포축언시말비(船頭浦築堰始末碑)이다. 1706년 선두포에(船頭浦) 제방을 쌓은(築堰) 과정을(始末) 기록한 비석(碑)이다. 지금 이곳에 남아있는 비석에도 제(堤) 글자가 보인다. 제언(堤堰)이 제방, 방죽이다.

비석 뒤편에 넓게 논이 형성되어 있고, 앞에도 논이다. 고려시대에도 간척은 이루어졌지만, 거칠게 말해서 제방 안쪽 비석 뒤편은 조선시대에 간척한 논이고 제방 밖은 현대에 간척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 정수사

이제 우리는 정수사로 간다. 근처에 전등사가 있지만, 관광지화된 곳이라 조용한 풍경을 즐기러 정수사로 갔다. 정수사 옆 주차장에 내리니 마니산 정상 참성단까지는 1.7km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참성단은 다음 기회에.

정수사는 신라 선덕여왕 8년(639)에 처음 만든 절이다. 정수사 옆 유명한 계곡이 함허동천이다. 조선 세종 8년(1426)에 정수사를 새로 지은 이가 함허대사이다. 정수사 앞에서 바라본 풍경은 나를 차분해 지게 만든다. 한참 바라보다 나오면 된다.

▲ 동막해변

정수사에서 나와 동막해변에 갔다. 관광지화 된 곳이라 음식점이 많다. 밥 먹을 생각들도 안하고 다들 갯벌로 내려갔다. 한참을 갯벌을 보며 감탄을 하고는 식당으로 갔다. 동막해변의 펜션과 식당의 음식값은 비싸다. 그래도 여기까지 왔는데. 밴댕이회무침, 해물칼국수, 강화도 인삼막걸리를 주문하지 않는다면 갯벌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점심을 먹으며 개발은 다른 땅에서 하고 갯벌은 그냥 놔두는 게 좋겠다는 이야기를 했다. 점심을 먹고 나오니 그새 물이 들어온다. 우리는 행운아였다. 물이 빠진 갯벌과 물이 차 들어오는 갯벌을 둘 다 보다니.

계속해서 강화도 남쪽 해안을 따라 달리며 구경했다. 남쪽을 다 보았다. 이제 북쪽을 향해 서쪽 해안도로를 달린다. 목적지는 망양 돈대. 석모도로 떠나는 배가 출발하는 곳, 외포 선착장 옆이다.

▲ 삼별초 호국항몽유허비

망양돈대 앞에 내리면 진돗개와 돌하르방이 서 있다. 뒤편에 비 하나가 서 있는데 삼별초호국항몽유허비(三別抄軍護國抗蒙遺墟碑)이다. 고려가 원나라에 굴복한 이후에도 계속 항쟁한 군대가 삼별초군이다. 진돗개와 돌하르방은 삼별초군이 강화에서 진도로, 다시 제주로 이동하며 항쟁했기에 세운 것이다.

▲ 망양돈대

강화도 해안 곳곳에는 군사시설인 보(堡)와 돈대(墩臺)가 있었다. 옛 지도에도 돈대를 그려넣고 망양(望洋)이라 적었다. 지금도 외포리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석모도에 들어가는데 옛지도에도 이곳에 뱃길을 그려놓았다.

망양돈대는 삼별초군호국항몽유허비 뒤편 계단으로 올라가면 된다. 조선 숙종 5년(1679)에 쌓은 원형돈대인데 지금 보는 것은 사각형으로 새로 만든 것이다. 안내문에 경상도 어영군사 4300명, 황해도, 함경도, 강원도 승군(僧軍) 8000명을 동원했다고 적어놓았다. 어영군사, 승군이라고 하지만, 사실 백성들 아니겠는가. 풍경은 좋지만 당시에 이걸 쌓느라 얼마나 고생들이 많았겠는가.

강화도는 수난의 섬이다. 고려 때는 몽고에, 조선시대에는 청나라에, 조선 말기에는 서양세력과 일본에 의해 고통 받은 곳이다. 전쟁을 한다고, 임금과 왕실을 모신다고 얼마나 고생들을 했겠는가. 지금은 또 북한과 마주한 곳이다.

▲ 제적봉 평화전망대에서 본 북한 땅

외포리 망양돈대에서 동북 방향으로 가면 화문석 문화관이 나온다. 과거 강화도의 특산품이 화문석이라 장소 마케팅 차원에서 화문석 마을을 조성하고 문화관을 세운 것이다. 화문석 문화관 근처 바닷가가 승천보이다.

승천포에 세운 보(堡)이다. 승천포 나루가 과거 강화와 개경을 연결하는 뱃길이다. 좀더 서북 방향으로 가면 강화평화전망대이다. 민간인통제선(민통선) 안쪽이라 군인들에게 신분증을 제시하고 전화번호를 적고 들어간다. 입장료는 2500원이지만 북한 땅을 바라 보는 데 이 정도 비용이야 충분히 지불할 수 있다.

전망대가 세워진 곳을 제적봉(制赤峰)이라 부른다. 빨갱이를 제압한다는 뜻이다. 건물 밖에 제적봉 유래를 설명해 놓았다. 크리스마스 트리를 세우는 애기봉을 제적봉이라고 부르려다 가 고 박정희 대통령이 거기를 애기봉이라 부르라고 지시하면서 여기를 제적봉이라고 이름붙였다. 1966년 민주공화당 의장 김종필이 글씨를 쓰고 제적봉 비 제막식에 참석하였다.

북한 땅이 코 앞에 바로 보인다. 이렇게 가깝나 싶다. 2층 전시관을 보고 3층으로 올라가 보시라. 남한과 북한 땅을 모형 지도로 만들어 놓았다. 이곳이 어떤 곳인지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1층으로 내려 오면 음식점 맞은편에 매점이 있다.

몇 년 전에 갔을 때는 북한의 맥주 '대동강'과 소주 '평양'을 팔았었다. 이제는 팔지 않는다. 매점 아저씨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북한 생산 물품 수입 금지 조치 때문이라고 대답해 주었다. 처음 갔을 때는 '북한' 생산 물품을, 중국 '한족' 종업원이, '남한'에서 팔던 곳이다.

밖에 나오니 새들이 날아다녔다. 우리는 해안 철책선을 따라 집으로 돌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