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RBS 서울지점 철수, 씨티 SC 몸집 줄이기…영미 금융사 脫한국 움직임
안방보험 동양생명 인수 등 중국 일본 동남아 금융사, 한국 앞다퉈 진출

외국계 은행 대표주자인 한국씨티은행이 '월세살이'에 들어간다. 다음달까지 중구 다동 본점을 매각하고 내년초에 여의도 국제금융센터(IFC)에 새 둥지를 틀 예정이다.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도 서울 명동의 구본점을 신세계에 팔기로 했다. 영국 최대 국영은행인 로열뱅크오브스코틀랜드(RBS)은 아예 서울 지점을 철수하기로 했다.

미국과 유럽 등 영미권 금융사들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한국 금융시장에서 잇따라 몸집 줄이기에 나서고 있다. RBS 처럼 짐을 싸 떠나는 경우도 심심치 않게 나오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한국 경제의 매력이 떨어져 '바이(bye) 코리아'의 징후가 나타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금융 전문가들은 현지화 실패,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실적 악화에 따른 본사 차원의 구조조정, 한국 특유의 규제 장벽 등을 주요 요인으로 꼽는다.

반대로 중국과 일본, 동남아시아 등 아시아권 금융사들은 한국에 앞다퉈 진출하고 있다. 일본과 중국 자본은 영미계 금융사들의 공백을 메우며 잇따라 한국 금융사들을 사들이고 있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나 인도 등의 금융사들도 한국 진출을 모색하고 있다. 아시아권 금융사들은 영미권 금융사들과는 정반대의 '바이(buy) 코리아' 대열을 형성하고 있다.

◆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퇴조하는 英·美 은행권

영미권 금융사들의 탈(脫) 한국 움직임은 증권과 보험, 캐피털 등 제2금융권에서 은행권으로 확대되는 분위기다. 2010년 푸르덴셜증권과 2012년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이 한국에서 짐을 쌌다. 2013년 HSBC가 한국 소매금융시장에 철수했고 지난해에는 ING그룹이 ING생명을 사모펀드인 MBK에 매각했다.

한국씨티은행은 영업점 통폐합과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한데 이어 계열사인 한국씨티캐피탈 매각에 나섰다. 최근에는 본점 매각을 위해 부동산 투자회사 마스턴투자운용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한국SC은행은 지난 1월 본사 차원에서 주식 부문 사업을 정리함에 따라 한국스탠다드증권의 주식 영업본부와 리서치 부문을 청산했다. 앞서 계열사인 SC저축은행을 팔았고, SC캐피탈 매각도 진행중이다. 최근 본사 회장 교체 이후 증권가에서는 "새 회장이 한국 사업 매각이라는 과감한 결정을 내릴 수도 있다"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한국SC은행은 한국 철수설을 극구 부인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영국 RBS가 한국 철수를 결정했다. 본사 실적 악화에 따라 아시아 지역에는 중국과 일본에만 지점을 남겨두기로 방침을 정한 데 따른 것이다. 외국계 은행이 한국 금융시장에서 철수한 것은 2009년 리먼브러더스와 메릴린치 이후 처음이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한국에 진출한 영미권 은행들의 덩치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약 3분의 1쯤 줄어든 것으로 추산된다"고 말했다. 또 "외국계 은행들은 그동안 미국의 저금리를 기반으로 한국과의 금리 차이를 활용해 안정적인 수입을 올려왔지만 미국이 금리를 인상하면 수익기반이 약화되기 때문에 몸집 줄이기 현상은 지속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 동남아·아랍 은행권 속속 한국 진출…中·日 은행도 영업 확대

영미계 금융사들이 떠난 자리는 아시아권 금융사들이 메우기 시작했다.

중국의 안방(安邦)보험은 동양생명을 사들인다. 안방보험은 지난달 동양생명 최대주주인 보고펀드로부터 동양생명 지분 57.6%를 인수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금융위원회의 인수 승인을 받게 되면 중국 금융회사가 국내 금융회사를 인수하는 첫 사례가 된다. 2004년 설립된 안방보험은 덩샤오핑(鄧小平) 전 중국 국가주석의 손녀사위가 회장으로 있는 보험사로 지난해 우리은행 인수전에 참여하기도 했다. 대만계인 유안타는 동양증권을 사들였다.

일본계 자본은 저축은행, 대부업 등 서민 금융시장에서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일본 금융사인 제이트러스트는 2011년 국내 대부업체 네오라인크레디트, 올해 3월 KJI대부와 하이캐피탈대부를 인수한데 이어 2012년에는 미래저축은행(현 친애저축은행)을 사들이며 저축은행업계에도 진출했다. 올해는 SC저축은행도 사들였다

일본계 SBI는 2013년 국내 1위 저축은행인 현대스위스저축은행을 인수했다. 2010년 푸른2저축은행을 사들인 오릭스그룹은 현대증권 인수도 눈앞에 두고 있다.

인도네시아 최대 국영은행인 BNI(Bank Negara Indonesia)는 현재 한국 지점 설립을 준비 중이다. 한국 내 인도네시아 근로자의 환전·송금 서비스 등에 나서기 위해서다.
금융위원회 인가를 거쳐 연내 지점 설립을 목표로 하고 있다.

BNI는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의 할아버지(Margono Djojohadikusomo)가 세운 은행으로, 원곡동 등지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대상으로 영업을 하는 우리은행이나 신한은행 등의 경쟁 상대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인도 최대 은행인 스테이트뱅크오브인디아(SBI)는 2013년 3월 서울사무소를 개설한 지 2년 만에 지점으로 전환, 이르면 다음 달 영업을 시작할 계획이다. 인도계 은행이 한국에 진출하는 것은 인도 해외은행(Indian Overseas Bank)이 지점 인가를 받은 1977년 이후 38년 만이다.

이 밖에 아랍에미리트(UAE) 내 자산규모 2위인 퍼스트걸프은행(FGB)과 필리핀 최대 민간 상업은행 BDO유니뱅크는 지난해 2월 한국에 사무소를 설립하며 한국 진출의 첫 걸음을 뗐다. 호주의 웨스트팩(Westpac) 등이 한국 진출을 염두에 두고 금융당국과 접촉하고 있다.

기존에 진출한 중국과 일본계 은행들은 올해도 대출 규모를 늘리며 영업 기반을 꾸준히 확대해 나가고 있다. 특히 공상(工商)은행, 중국(中國)은행 등 주요 중국계 은행들은 위안화예금과 ABCP(자산담보부기업어음), 전자단기사채 등을 토대로 한국 금융시장에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미쓰비시UFJ은행, 스미토모미쓰이은행, 미즈호코퍼레이트 등 이른바 일본 '3대 메가뱅크'의 지난해 대출 규모는 전년대비 10% 늘어났다. 일본계 은행은 초저금리 엔화 자금을 무기로 기업대출시장의 강자로 굴림하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한국에 진출한 자국 근로자나 기업의 송금·외국환 수요가 커지는데다 최근 유학생 송금 수요도 꾸준히 늘어나면서 동남아권 현지 은행들의 진출이 활발한 편"이라며 "중국과 일본계 금융사들도 건설사 PF대출 시장부터 서민 대출시장까지 꾸준히 영향력을 넓히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