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왜 달러가 이렇게 많이 모자라지?” 서울 강남 A은행의 정 모 과장은 지난 3일 오후 6시 눈앞이 깜깜해졌다. 영업을 마치고 시재금(時在金)을 확인해 보니 전산상에 있는 금액보다 한두푼도 아니고 무려 5만4000싱가포르달러가 비어 있었다. 우리나라 돈으로 따지면 무려 약 4400만원이 부족한 것이다.

위 사진은 100싱가포르달러 도면, 아래 사진은 1000싱가포르 달러

정 모 과장과 직원들은 폐쇄회로(CC) TV를 돌려보며 그날 오후 2시 15분쯤 IT사업가인 이모(51)씨에게 실수로 100달러 60장이 아닌 1000달러 60장을 흰 봉투에 건넨 것을 발견했다. 100달러짜리는 주황빛이지만, 1000달러는 어두운 연보라빛이라 CCTV상으로도 이씨에게 돈이 잘못 전달됐다는 것을 추정할 수 있었다.

정 모 과장은 그 즉시 이씨에게 연락을 시도했다. 오후 8시 30분쯤 전화를 받은 이씨는 “봉투에 6만 달러가 들어 있었다는 것은 금시초문이고, 가방 앞주머니에 넣어 둔 봉투를 잃어버려 경찰에 분실신고를 한 상태”라며 돈을 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 도리어 “환전을 하면서 여러 번 확인절차를 거치는데 은행에서 이를 몰랐다는 것이 말이 되느냐”고 반박했다.

양측의 주장이 엇갈리면서 결국 경찰이 시시비비를 가리려 수사에 나섰다. 핵심은 이씨가 봉투에 6만달러가 들어 있었던 사실을 인지했는지 여부다. 이모씨가 6만달러를 받은 사실을 인지하고도 이를 묵인했다면 횡령죄가 적용된다. 하지만 사건이 일파만파 번지면서 정 모 과장은 결국 반년치 급여에 달하는 5만4000싱가포르달러를 물어주기로 했다.

은행권 관계자는 “창구 직원이 실수로 돈을 더 주더라도 이를 되돌려받기가 사실상 쉽지 않다”며 “드물게 발생하는 실수지만 같은 은행원 입장에서 많이 안타깝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