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공대와 MIT(매사추세츠 공대), 국민경제자문회의, 조선일보가 공동 주최한 '제조업의 미래' 포럼에 참석한 국내외 석학들이 포럼 이튿날인 지난 5일 '한국 제조업의 미래'란 주제를 놓고 머리를 맞댔다. 토론에는 이건우 서울대 공대 학장,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천정훈 MIT 교수, 브라이언 앤서니(Anthony) MIT 교수, 데이비드 하트(Hardt) MIT 교수, 에마누엘 색스(Sachs) MIT 교수, 독일 프라운호퍼(Fraunhofer) 연구소 올라프 자우어(Sauer) 박사가 참여했다.

산학 협력 활성화 대책 필요

이건우: 한국의 산학 협력은 미국·독일과 같은 선진국처럼 활발하지 않다. 산업계는 대학의 연구가 비실용적 학문적 성과에만 매달린다고 지적한다. 반면 대학은 산업 기술 개발을 위한 동기 부여나 충분한 보상이 없다고 호소한다. 산학 협력 활성화를 위한 대책은 무엇이 있을까.

앤서니: 산업계와 대학이 긴밀하게 교류하고 서로의 요구를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 특히 학생이 산업 현장을 경험하고, 기업인들이 대학에 와서 연구하는 인적 교류는 산학 협력을 더 빠르게 만들 수 있다.

5일 서울대 이건우(가운데) 공대 학장이 미국 MIT(매사추세츠공대),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의 석학들과 함께 한국 제조업의 미래에 대해 토론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정동 서울대 공대 교수, 에마누엘 색스 MIT 교수, 올라프 자우어 프라운호퍼 연구소 박사, 이 학장, 브라이언 앤서니 MIT 교수, 천정훈 MIT 교수, 데이비드 하트 MIT 교수.

천정훈: 대학과 기업 간에는 '시간차'가 있다. 만약 기업에 어떤 제안서를 보내면, 그들은 처음에 "위험하다(risky)"고 말한다. 하지만 연구를 마치고 결과를 보여주면 그제야 관심을 보인다. 대학이 가진 머릿속 아이디어는 세상의 어떤 기업도 받아들이지 않는다. 실제로 연구를 진행해 가시적 결과를 보여줘야 서로 협업할 수 있다. 대학이 시장보다 앞선 기술을 개발한 경우에도, 시장이 무르익기를 기다려 산업계에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색스: 대학에서 여러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이 탄생하는 것이 미국의 경쟁력이다. 중요한 것은 이런 시도를 존중하는 문화다. 교수는 학교 안에서 무엇을 하다 실패해도 타격이 크지 않다. 하지만 창업에 실패하면 기업이 파산한다. 교수 입장에선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된다. 도전을 존중하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 결국엔 큰 차이를 가져온다.

기본 가르치고, 고급 인재 길러야

이건우: 기술에 대한 이해가 있는 창의적인 인재를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 고등 교육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나.

천정훈: 나노엔지니어링처럼 세분된 전공도 있지만, 이 같은 응용 분야보다는 공학의 기본(fundamental)을 가르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기술은 빠르게 변하기 때문에 응용 기술은 유행이 지나면 쓸모가 없어진다. 학생들이 기본을 바탕으로 다양하게 응용할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줘야 한다.

앤서니: 공학 교육과 함께 대학이 가르쳐야 하는 것은 사람들과 교류하는 사회적인 상호작용(social interaction) 기술이다. 산업 현장에서 다른 이들과 잘 의사소통하고 협업할 수 있는 것도 엔지니어에게 필수적인 기본 소양이기 때문이다.

이건우: 대학에서 소프트웨어(SW) 프로그래밍을 가르쳐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내가 대학생일 때는 포트란(컴퓨터 프로그램 언어)을 배웠고, 모든 공대생은 프로그래밍을 할 줄 알았다. 그런데 지금 학생들은 전혀 할 줄 모른다. 이 점에 대해선 어떻게 생각하나.

앤서니: 어떤 특정 언어를 가르치는 것보다는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고 설계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논리(logic)와 그 진행 과정을 가르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천정훈: 한국의 소프트웨어 역량이 약하다는 것은 단순히 프로그램 코딩 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프로그램 전체를 기획·설계할 수 있는 전문 개발 인력인 '아키텍트(architect)'가 부족해서다. 이런 고급 인력 풀(pool)이 있다면, 단순 작업은 인도의 인력에 맡기는 것이 더 효율적으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이다.

벤치마킹에서 혁신으로

이건우: 한국은 반세기라는 짧은 기간에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뤘지만, 최근 정체기를 겪고 있다. 이런 상황을 해결할 수 있는 제조업의 부흥에 대한 제언이 있다면.

자우어: 한국이나 독일은 미국·중국에 비해 매우 작은 경제다. 작은 경제 속에서 성공하려면 오직 혁신밖에 없다. 특히 반도체, 디스플레이 패널처럼 한국이 강점을 가진 영역을 더 강화하고 차별화를 꾀해야 한다.

하트: 정부 차원에서 인재들이 최신 제조업에서 일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한다면, 지난 반세기와는 상당히 다른 결과를 낳을 것이다.

색스: 혁신을 꾀할수록 중요한 것은 지식재산권에 대한 보호 정책이다. 개발한 신기술이 시장에서 활성화되려면 시간이 필요한데, 그동안 기술을 보호해야 혁신이 촉진되고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은 정부의 보호 때문에 특허와 같은 지식재산권이 미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런 문제는 심각하다.

이정동: 한국 산업의 아킬레스건은 축적된 경험 지식이 없다는 것이다. 후발 추격 국가로서 남의 기술을 빠르게 흡수해서 적용하는 데 특화돼 왔기 때문이다. 산업 기반을 빨리 마련하는 데는 유용했지만 산업을 심화하는 지금 단계에서는 반드시 넘어야 할 장벽이다. 한국에 강력한 제조업의 기반을 구축해 경험적 노하우를 쌓지 않으면, 더 이상 중국과 같은 후발국에 경쟁력 우위를 지킬 수 없다.

천정훈: 한국은 이제 벤치마킹 모드에서 이노베이션(혁신) 모드로 탈바꿈해야 한다. 한국의 혁신 분야를 담당하는 장관도 60대가 아니라 40세 정도의 젊은 사람을 임명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