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마지막 날인 지난 22일 서울 지하철 2호선 성수역 3번 출구로 나오자 낡은 창고와 자동차 수리 센터, 인쇄소 건물 등이 들어선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30년은 돼 보이는 낡은 건물 1층에는 붉은색 페인트로 멋을 낸 커피숍이 있었다. 카센터 건물 2층에는 구두를 제작하는 작은 공방이 들어서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성수역 인근 인쇄소 건물 1층에 들어선 카페 모습. 카센터 건물 2층에는 구두 공방 등이 자리 잡았다

서울 성동구 성수동이 중국 베이징 798예술구처럼 문화·예술의 중심지로 변신하고 있다. 베이징 798예술구는 원래 공장, 그것도 주로 냉전시대 무기를 만들어내던 공장과 창고가 있던 곳이다. 중국 정부는 2006년 798예술구를 문화창의산업 집중구로 지정하고 육성하기 시작했다. 이후 화랑, 카페 등이 빈 공장과 창고에 들어서기 시작했다. 현재 798예술구는 수많은 관광객, 세계적인 예술품 수집가와 거래상이 모여는 국제 미술의 메카로 성장했다.

798예술구의 버려진 창고와 공장이 중국 현대 미술을 대표하는 화랑이나 카페로 탈바꿈했듯 성수동의 빈 창고나 공장이 전시회와 패션쇼, 공연이 열리는 곳으로 변신 중이다. 인근 단독주택·빌라촌은 카페와 공방으로 바뀌고 있다.

경공업지역에서 문화 중심지로 변신 중인 성수동

서울 성동구 성수동은 한강변에 있고 시청 등 도심 진입이 편리하다. 또 성수대교를 이용해 강남으로 빠르게 이동할 수 있다. 하지만 오랜 기간 경공업지역으로 지정된데다 각종 공업시설이 아직 남아 있어 저평가 받아왔다.

최근 성수동에서 전시장 공방 등이 들어서고 있는 지역의 위치. 뚝섬역 인근 서울숲2길(위)과 성수역 인근 공장지대(아래)

성수동은 일본강점기 때부터 창고나 상점 등이 들어서 있었다. 한강변인데다 중랑천이 있어 뚝섬 나루터에는 농산물, 임산물, 목재가 모였다. 물자를 보관하는 창고나 상점 등이 들어섰다.

성수동이 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시점은 1960년대다. 1962년 도시계획에 따라 준공업지역으로 지정되면서 철공장, 염색공장, 도금공장 등이 들어섰다. 1970~1980년대에는 가발산업이, 1980년대에는 봉제 산업이 번성했다. 1990년대부터는 구두·인쇄 업체들이 자리를 잡았다.

하지만 성수동에 들어선 공장들은 2000년대 들어 쇠퇴하기 시작했다. 비싼 임금을 버티지 못하고 하나 둘 해외로 밀려난 것이다. 빈 공장과 창고가 늘었고 동네는 활력을 잃었다.

이런 성수동에 다시 활기가 돌기 시작한 시점은 2005년 서울시가 성수동에 서울숲을 조성한 다음이다. 서울시는 2352억원을 투자해 성수동 685번지 일대를 1.15㎢(35만평) 규모의 대형 자연공원으로 바꿔 놓았다.

이후 성수동은 낡은 공장 지대에서 고급 주택가로 변모하기 시작했다. 건설업체들이 공장부지를 재개발해 아파트나 아파트형 공장 등을 만들었다. 국내 최고가 아파트인 주상복합 갤러리아 포레가 대표적이다. 갤러리아 포레는 40억원 이상의 고가 아파트다. 가수 지드래곤, 탤런트 김수현 등이 거주한다.

서울숲 옆 단독주택 빌라 촌에 조성 중인 식당과 공방 모습

2010년을 전후해 성수동의 버려진 창고나 상가 등에 문화 예술 복합 공간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성수역 인근 성수2가1동 대림창고가 대표적이다. 약 662㎡(200평) 규모의 이 건물은 1970년대 초 지은 정미소였다. 1990년부터 20여년간은 창고로 썼다.

하지만 2011년부터 대림창고는 국내외 패션 브랜드의 패션쇼, 유명 록밴드의 콘서트, 클럽 파티장으로 쓰이기 시작했다. 지난달 미국 자동차 업체 포드는 이곳에서 스포츠카인 '올 뉴 머스탱' 신차 발표회를 열었다. 스포츠 브랜드 퓨마는 아스날FC의 새 유니폼 국내 발표 행사가 열린 곳도 대림창고다. 메스세데스 벤츠나 BMW같은 세계적 자동차 업체들이 중국 798예술구 건물을 임대해 신차발표회를 여는 것과 비슷한 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성수동 수제화 거리 상권 확장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대림창고 모습

대림창고 외에도 스튜디오 한랑채, 아포스튜디오 같이 낡은 공장이나 인쇄소를 리모델링해 쓰는 업체들이 많다. 낡고 을씨년스러운 건물이 촬영용 스튜디오로 변신한 것이다. 또 성수역 인근에는 카센터나 인쇄소, 일반 창고 등을 리모델링한 카페, 공방 등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새로 상권이 생겨 권리금이 없거나 낮고 임대료가 저렴한 것이 장점이다. 성수역은 3번 출구쪽에서 뚝도시장 방향으로 카페 등이 들어서고 있다. 서울숲 인근에는 이태원 경리단길이나 홍대입구 인근 상수동처럼 낡은 기존 주택을 리모델링한 카페나 공방이 계속 생기고 있다.

성수동 서울숲길과 성수역 중간쯤에 위치한 베란다 인더스트리얼 건물 모습.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해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사람 몰리고 카페 생기니 성수동 부동산 가격도 들썩

성수동이 서울의 798 예술구로 부각되면서 인근지역 부동산 가격도 강세다. 서울숲2길에선 카페나 공방으로 리모델링할 수 있는 단독주택·빌라가 특히 인기다.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부동산 경기가 악화하면서 3.3㎡당 2500만원까지 떨어졌던 이 지역 지가가 최근 1000만원 정도 올랐다. 인근 성수부동산 관계자는 "3.3㎡당 3500만원 전후에 시세가 형성돼 대지면적 165㎡(약 50평) 정도가 약 16억원 전후에서 거래된다"고 말했다.

성수동 상권의 임대료도 오를 조짐을 보이고 있다. 신사동 가로수길, 이태원 경리단길의 경우 카페 등이 들어서고 사람이 몰리면서 대기업 자본이 들어와 상권을 개척한 초기 세입자가 훌쩍 올라버린 임대료를 견디지 못하고 나가는 경우가 많았다.

'ㅁ' 부동산 관계자는 "서울숲2길 약 100㎡(35평) 반지하 카페의 임대료가 보증금 1000만원에 월세 40만~60만원 선으로 저렴한 데 최근 들어 건물주들이 너무 싸게 세를 줬다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고 말했다.

서울숲2길에는 리모델링이 진행 중인 건물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성수역 인근 한 공방 관계자는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것은 좋지만, 사람이 많이 몰려 임대차 재계약 때 임대료를 올려달라고 할 것 같아서 불안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