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성 금융부장

'금융은 사회를 부리는 주인이 아니라 사회를 섬기는 종복이어야 한다'

케인스학파 태두인 영국 경제학자 존 메이너드 케인스가 남긴 명언입니다. 제가 금과옥조로 여기며 복잡다단한 금융의 세계를 바라보는 절대 기준이기도 합니다.

아시다시피 금융의 출발점인 화폐(돈)는 인간 생활의 편의를 위해 물물 교환의 수단으로 탄생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떤가요. 금융이 인간의 탐욕을 하수인으로 부리며 괴물로 자주 변신합니다. 금융이 인간세상을 이롭게 만들도록 하는 게 경제 기자로서 저의 꿈중의 하나입니다.

'너만의 터(토대, 근본)를 이루거라' 할아버지께서 세상과 소통하는 접점인 저의 이름에 이런 의미를 부여해 주셨습니다. 터 기(基), 이룰 성(成). 그래서인지 저는 어려서 유달리 땅따먹기 놀이를 좋아했습니다.

한국일보 서울경제신문이 첫 터전이었습니다. 서울경제 입사 이후 산업부에서 멀티미디어·전자, 철강, 자동차, 중공업, 섬유 업종을 출입하면서 경제기자로서 주춧돌을 놓기 시작했습니다.

IMF(국제통화기금) 환란 전후로 무너져 내린 한보철강, 삼미, 기아자동차, 대우자동차 등의 출입 2진으로 하루 종일 정말 박박 기었습니다. 그 당시는 6.25 전쟁 이후 최대 위기였던 터라 하루 하루의 취재 과정이 지옥 같을 정도로 힘들었지만 돌이켜 보면 저에겐 고농축 자양분과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두번째 터전은 온라인 경제매체의 선구자중 하나인 이데일리였습니다. 선후배 기자 19명이 뭉쳐 2000년초 이데일리를 만들 때 창간 멤버로 참여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중의 하나는 첫 출입처였던 증권시장(코스닥)을 취재할 때 였습니다. 벤처 거품이 정점을 치고 내려오는 시점이었습니다. 호재성 기사를 쓰면 해당 기업의 주가가 상한가로 치솟고, 악재성 기사를 내면 관련 기업의 주가가 하한가로 곤두박질치는 일이 비일비재했습니다. 손 떨려서 기사 못쓸 정도였다면 이해가 가실지요.

2000년 초반만 해도 우리나라 증권시장의 정보 비대칭은 매우 심각했습니다. 그런 시기에 속보를 쏟아냈으니 주가가 춤을 췄던 겁니다. 이데일리와 머니투데이가 온라인 매체로서 자리잡을 수 있었던 배경입니다.

그 이후 산업부를 거쳐 드디어 금융부에 입성했습니다. 저는 사실 일복이 많은 편인데, 그 때도 그걸 비켜가지는 못했습니다. 2003년 터진 카드사태를 온몸으로 안았습니다. 국제부와 경제부에서도 재미있게 일했습니다. 특히 기획재정부 1진으로 출입하면서 거시경제의 안목을 키우는 즐거움을 맛봤습니다.

조선비즈는 세번째 터전입니다. 2011년 입사해 산업팀장, 경제부장을 거쳐 지난해말부터 경제부에서 분리된 금융부를 맡고 있습니다. 평기자 때를 포함해 어느덧 금융만 7년째입니다. 어느 집에 숟가락 몇개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는데, 글쎄 올해 복병을 만나고 말았습니다.

다름 아닌 핀테크 입니다. 금융과 IT가 결합한 핀테크가 훅 들어오면서 머리속이 복잡해졌습니다. 새로 공부해야 하니까요. 그래도 막강 금융부 후배들이 있어 즐겁기만 합니다. 케인스의 명언이 우리사회에 투영되도록 조선비즈 금융부는 열심히 그리고 잘 하겠습니다. 지켜봐 주십시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