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이천공장의 대관업무팀 김형주 수석(부장에 해당)은 지난달 30일 통장에 찍힌 숫자를 보고 가슴이 벅찼다. 연봉의 절반에 해당하는 돈이 들어와 있었다. 작년 실적에 대한 '이익 분배 성과급(PS·profit sharing)'이었다. 회사의 성과급 한도 규정(연봉의 40%)까지 초과한 금액이었다. SK하이닉스는 지난해 창사 이래 최대 실적인 5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올렸다. 워크아웃과 구조조정을 반복하며 20년 가까운 악전고투 끝에 거둔 실적이었다. 회사는 한도를 초과한 성과급을 전 직원들에게 지급하며 고통을 분담해온 직원들에게 보상했다.
김 수석은 "우리의 목표는 언제나 정상(正常)이 되는 것이었다"며 "그런데 이제는 정상(頂上)을 바라보고 있다"고 말했다.
◇1식5찬에서 1식3찬으로
2012년 SK그룹이 인수하기 전까지 하이닉스는 줄곧 위기 상황이었다. 1983년 현대전자산업주식회사로 시작해 창업 32년째를 맞았지만 순탄하지 않은 길을 걸었다. IMF 외환 위기 때 정부 빅딜 조치로 덩치를 키웠지만, 덩달아 불어난 부채(17조원)를 감당하지 못해 2001년 채권단 공동관리(워크아웃)에 들어갔다. 사명(社名)도 하이닉스로 바꿨다. 2000년대 초·중반 반짝 실적이 호전된 적도 있었으나, 누적 손실 규모가 커서 회사가 안정화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하이닉스 임직원들에겐 '생존' 자체가 최대 화두였다. 글로벌비즈센터 이행렬 수석은 2001년 9월 초순 어느 날을 아직 기억하고 있었다. "총무과 직원이 제 자리로 오더니 볼펜·사인펜 한 자루씩만 남기고 다 수거해 가는 겁니다. 비용 절감 차원에서 개인 사무용 필기구를 1~2자루로 제한한다고. '이 정도까지 해야 하나' 싶었죠."
패키지&테스트센터 전영철 수석은 "그 당시 구내식당 반찬 가짓수도 줄었다"고 했다. 그전까진 밥 한 그릇에 국을 포함해 5가지 반찬(1食5饌)이 나왔는데, 밥·국·김치·반찬처럼 1식3찬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전 수석은 "반찬을 담는 두 칸이 텅 비어 있는 식판으로 식사를 했다"며 "1회용품을 줄인다고 식당에 종이 냅킨도 없었다"고 말했다. 이들이 겪었던 비용 절감 조치는 엘리베이터 격층 운행, 사무실 전등 절반 끄기, 여름철 에어컨 가동 중단 등 부지기수였다.
직원들에게 가장 고통스러웠던 순간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친 직후다. 반도체 경기까지 급락하며 회사는 1조9200억원에 달하는 적자를 냈다. 독일 반도체업체 키몬다는 결국 파산하고 말았다. 하이닉스도 위기감이 극한에 달했다. 더 이상 쥐어짤 것도 없는 상황에서, 결국 전 직원을 대상으로 순환무급휴직을 실시했다. 당시 입사 2년차였던 수익성분석실의 최창근 선임은 "결혼을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는데 갑자기 무급휴직을 가라고 해 '장가를 못 가나' 싶어 걱정이 태산이었다"며 "그래도 '일에 집중해야 회사가 산다'는 생각에 휴직 기간에도 회사에 출근했다"고 말했다.
당시 부장이었던 회계관리실 사택진 상무는 "2009년 1분기 차입금만 8조3000억원에 달할 정도였으니 회사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며 "누구도 강요하지 않았지만 휴직 상황에서도 출근해 묵묵히 일했던 직원들의 애사심이 오늘의 하이닉스를 만든 원동력일 것"이라고 말했다.
◇고통을 이겨낸 뒷심이 경쟁력으로
뼈를 깎는 내핍 속에서도 빛나는 성과가 적지 않았다. 2002년엔 사용연한이 지난 노후 장비로 기존 0.25미크론(1미크론은 1000분의 1㎜) 공정을 0.13미크론까지 끌어내리며 정밀도를 2배 가까이 높이는 신기술을 개발했다. 급기야 2007년 한때는 D램 반도체 수율(收率·완성된 제품 비율)에서 삼성전자를 앞지르기도 했다. 삼성전자의 5분의 1도 안 되는 투자를 하면서 이룬 성과였다. 이 때문에 이건희 회장이 삼성전자 반도체 부문 임원들에게 격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이닉스 임직원들의 이런 악전고투는 SK그룹 인수 후에 날개를 달았다. 2조원이 넘는 유상증자 자금이 들어오면서 연구·개발에 숨통이 트였기 때문이다. 특히 SK그룹은 2011년 하이닉스 인수 당시 세계 반도체업계가 극심한 불황 속에서 일본의 엘피다가 파산하는 상황이었지만 오히려 4조원 가까운 돈을 설비에 투자했다. 이런 과감한 투자와 임직원들의 열정이 결합돼 작년 연말 최대 실적으로 나타난 것이다.
총무팀 최계철 수석은 "요즘 사정이 좋아져 업무 환경을 개선하겠다고 하자 직원들이 먼저 '우리가 언제부터 돈 벌었다고 그런 데다 돈을 쓰느냐. 필요한 장비를 더 사라'는 항의가 들어올 정도"라며 "오랜 시련을 겪었기에 또 위기가 닥치더라도 우리는 이겨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