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정산 파동이 ‘증세 없는 복지’ 논란으로 번지면서 복지를 축소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늘어나는 복지 수요를 감당하려면 증세가 불가피하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 곳곳에는 아직도 눈 먼 돈이 많다. 정부 예산이나 기금 지출에 대한 감시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국민의 세금이 엉뚱한 곳으로 흘러 들어가는 것이다. 세금을 더 걷거나 복지를 축소하기 전에 이런 눈 먼 돈부터 없애는 게 순서다. 다양한 형태로 우리 사회에 퍼져 있는 눈 먼 돈의 실태를 파악해 봤다. 이번 ‘[눈먼 돈] 시리즈’는 이번이 시즌1이다. ‘[눈먼 돈-1]’로 표현했다. 앞으로 시즌2, 시즌3 등으로 계속 이어진다. [편집자주]

영광군의 A 회사는 산업단지내 기업이전 입지지원보조금 교부신청을 하면서 이미 근저당이 설정돼 있는 공장을 담보물로 제출했다. 담보가치가 없는 공장이었지만 영광군 공무원 a는 이 회사 대표이사의 부탁을 받고 근저당 사실을 숨긴 채 결재를 받았다. A 회사는 5억6960만원의 보조금을 부당하게 받았다.

B 영농조합 대표는 저온저장고를 신축하는 것처럼 서류를 꾸며 10억원 상당의 정부 보조금을 타냈다. 이 영농조합은 시공업자와 짜고 저온저장고 신축에 필요한 자기부담금을 이미 부담한 것처럼 서류를 꾸며 청원군과 괴산군에 제출했고, 10억원 규모의 건축보조금을 받았다. 청주지검은 영농조합 대표와 시공업자 등을 구속했다.

◆ 국고보조금 선정부터 사후관리까지 다 뚫렸다

50조원이 넘는 국고보조금을 악용해 부당하게 보조금을 빼먹는 사례가 늘고 있다. 국고보조금 규모는 2008년 34조7000억원에서 2013년 50조5000억원으로 빠르게 증가하고 있지만, 관리 실태는 부실하기 짝이 없다. 특히 국고보조금의 민간보조금액을 주인 없는 돈으로 인식하는 민간보조 사업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한 상황이다. 국고보조금의 민간보조금액은 2008년 9조8000억원에서 2013년 12조7000억원으로 증가했다.

대검찰청과 경찰청은 2013년 12월부터 지난해 12월까지 1년간 국고보조금 관련 비리를 집중 단속해 5552명의 비리 사실을 적발했고, 이 중 253명이 구속됐다. 부당지급되거나 유용된 사실이 밝혀진 국고보조금 규모는 3119억원에 이르렀다. 정부는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방지대책을 내놓으며 연간 1조원 규모의 재정 지출을 절감할 수 있다고 밝혔는데, 바꿔 말하면 매년 1조원 정도의 국고보조금이 부실한 관리로 줄줄 새고 있다는 의미다.

국고보조금 연도별 추이.

대검찰청과 경찰청, 감사원 등의 국고보조금 비리점검 결과를 종합해보면 신청단계에서부터 집행, 결산까지 모든 과정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특히 지방 토호 세력과 공무원이 손을 잡고 국고보조금을 유용하려 들면 사전에 막을 방법이 사실상 없었다.

춘천지검 원주지청은 지난해 위탁급식업체 임직원 3명을 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병원 소속 영양사나 조리사를 고용하지 않고 병원 소속으로 허위 등재해 환자나 국민건강보험공단으로부터 50억원 상당의 식대가산금을 편취했다. 처음부터 식대가산금을 노리고 의도적으로 접근한 것이다. 이렇게 국고보조금 신청 단계에서부터 보조금 부정수급을 목적으로 접근하는 이들이 많았다.

아예 브로커까지 끼고 조직적으로 국고보조금을 타낸 경우도 있었다. 수원지검 평택지청은 고덕국제신도시 개발지구 내에 있는 분묘 100여기를 허위로 이전하는 방식으로 3억5000만원의 분묘 이전보상금을 챙긴 브로커와 장묘업자, LH공사 직원 등을 구속했다. LH공사 직원들은 고덕국제신도시 개발지구 내에 연고자 등록이 안된 분묘 정보를 브로커들에게 넘기고 금품·향응을 제공받았다. 브로커들은 가짜 유족을 모집해 무연고 분묘를 파헤쳐 유골을 꺼내 화장한 후에 분묘 이전 보상금을 타냈다.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유형.

지자체나 중앙부처 공무원이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감시에 소홀하거나 아예 한통속인 경우도 많았다. 청주지검 제천지청은 지난해 9월 축사시설 현대화 사업 관련 국고보조금 3억7500만원을 편취한 혐의로 제천지역 축산업자를 구속 기소했다. 이 축산업자는 시공업체로부터 돈을 받은 뒤 그 돈을 다시 시공업체로 보내서 자부담 내역을 가장했다. 이를 감시해야 할 제천시청 공무원은 지인인 축산업자를 위해 오히려 허위 공문서까지 작성해줬다.

국가 재정을 책임지고 있는 기획재정부도 국고보조금 관리에 손을 놓고 있다. 기재부는 2009년 한국경제교육협회를 경제교육 주관기관으로 지정하고, 2014년 1월까지 경제교육 활성화를 위한 명목으로 국고보조금 268억원을 교부했다. 하지만 경제교육협회는 처음 경제교육 주관기관에 지정될 때부터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곳이었다. 경제교육 주관기관 지정신청서에 따르면 2009년 사업비 30억원 중 17억600만원은 주관기관의 자체 재원으로 부담하고 나머지 12억9400만원은 국고보조금을 교부받아 수행하도록 돼 있었다. 하지만 경제교육협회는 자체 재원 조달 방안이 없었고 결국 국고보조금만으로 2009년 사업을 수행했다. 경제교육협회는 특정업체와 공모해 견적가격을 부풀려 계약을 체결하고 차액을 횡령하기까지 했지만, 기재부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감사원 관계자는 “국고보조금의 민간보조사업은 일부 사업자의 도덕적 해이에도 불구하고 감사 사각지대로 방치돼 있었다”고 말했다.

◆ 소 잃기 전에 외양간부터 고쳐야

정부도 국고보조금 부정수급을 막기 위한 대책을 계속 내놓고 있지만 이렇다 할 효과는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2011년 국고보조금 일몰제를 도입해 구조조정에 나서겠다고 밝혔지만, 국고보조금 규모는 2011년 43조7000억원에서 지난해 52조원까지 늘었다.

국고보조금 비리 신고 포상금 제도도 2011년 도입됐지만, 제도 도입 이후 포상금이 집행된 경우는 단 한 건도 없다. 전혀 집행이 되지 않는 제도인데도 기재부는 지난해 12월 국고보조금 부정수급 방지 대책을 새로 발표하면서 포상금 한도만 1억원에서 2억원으로 높였다. 한 지자체 공무원은 “국고보조금 부정수급은 지방 토호세력을 중심으로 아는 공무원이나 전문가들이 짬짜미하는 경우가 많아 신고포상제도가 유명무실할 수밖에 없다”며 “포상금을 높이는 건 전혀 대책이 될 수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사후 적발 위주의 대책으로는 한계가 있다며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주문한다. 김희삼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은 “국고보조금의 정책 목표가 실제 지원받아야 하는 사람이 아니라 경제적 지대를 누리려는 사람들에게 잘못 맞춰져 있다”며 “어느 정도 수준에서 보조금을 받지 않고 졸업해야 하는 사람들도 계속 보조금을 받으며 남아 있으려고 하는 피터팬 신드롬도 보조금 부정수급 문제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이런 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가 보조금 정책을 설계할 때 정책목표를 명확히 해서 누수를 차단하고, 불필요한 국고 지원을 받는 것이 불법이라는 인식을 사람들이 가질 수 있도록 교육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