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의원은 2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특정재산범죄수익 등의 환수 및 피해구제에 관한 법률안'(이학수법)을 직접 당 동료의원들에게 설명하면서 서명을 요청했다. 서류에 '특정범죄수익 등의 환수 및 범죄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이라는 글자가 선명하게 보인다.

박영선 새정치연합 의원은 범죄행위로 불법취득한 이익을 국가가 환수하는 법안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이른바 '이학수법'(특정범죄수익 등의 환수 및 범죄피해 구제에 관한 법률)이다. 1999년 삼성SDS의 230억원 규모 신주인수권부사채(BW) 헐값 발행을 주도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이학수 전 삼성전자 부회장과 김인주 전 삼성선물 사장을 겨냥한 법안이다.

박 의원은 최근 범죄행위를 저지른 범인이나 공범이 아니더라도 범죄행위로 인해 불법이익을 취득하게 된 다른 사람의 이익도 환수하는 쪽으로 법안의 방향을 잡고 있다. 이 경우 BW 헐값 발행이라는 범죄 행동과 관련이 없더라도 그로 인해 이익을 거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 등 삼남매의 삼성SDS 상장차익도 환수대상이 된다.

'이학수법'이 '이재용법'으로 바뀔 수도 있는 것이다. 박 의원은 이번 법안의 근거 논리를 독일 형법에서 찾았다. 독일 형법에 이번 법안과 거의 똑같은 내용이 있는 만큼 대륙법(독일법) 체계를 따르고 있는 우리 형법에 도입하는 것도 별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박 의원은 최종적으로 법조인들과 법 발의안의 위헌 여부, 법 정합성 등 확인 작업을 하고 있으며 조만간 법 제정안을 공개할 계획이다. 이 법안은 삼성의 '아킬레스건'인 불법 승계 문제를 건드리는데다, 이재용 부회장 등 삼남매의 부당이득 환수로 삼성의 후계구도를 뒤흔들 수도 있기 때문에 삼성그룹에서도 관심을 갖고 법안 추진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자료:금융감독원 전자공시


독일 형법, 범죄로 본 이득…범인 여부 상관없이 박탈, 공소시효도 없어

3일 박영선 의원실에 따르면 최근 '이학수법'에 이재용 부회장 3남매를 포함시키는 근거는 독일 형법 제73조와 제 76조를 토대로 하고 있다. 두 조항은 '몰수와 박탈'을 규정한다.

독일 형법은 범죄행위의 생성물이나 수단을 귀속하는 '물건의 몰수'(Einziehung)와, 범죄행위로 취득한 이익을 국고에 귀속시키는 '재산적 이익의 박탈'(Verfall)을 구분한다.

우리나라는 '범죄수익은닉의 규제 및 처벌 등에 관한 법률(범죄수익은닉규제법)' 제8조에서 몰수만 규정하고 있다. 또 어떤 사유로 몰수가 불가능한 때는 그 가액을 납부하도록 하는 추징제도를 두고 있다.

법무부가 2008년 발간한 '독일형법' 자료에 따르면, 독일은 형법 제73조【박탈의 요건】1항에서 위법행위가 발생했고 정범 또는 공범이 범죄 행위를 위해 또는 범죄 행위를 통해 일정한 물건을 획득한 경우, 박탈 요건을 성립한다고 했다. 이 때의 물건은 범죄행위를 통해 취득한 동산, 부동산, 권리 이외에 급부, 이용권 등을 모두 포함한다.

주의 깊게 볼 것은 제73조 3항이다. 3항을 보면, 정범 또는 공범이 타인을 위해 (위법)행위를 하고 이로 인해 타인이 일정한 물건을 취득한 경우에는 제1항 및 제2항에 의한 박탈명령을 그 타인에 대해서도 적용한다. 이는 범죄 수익으로 이득을 본 사람의 범죄 여부 또는 기소 여부와 상관없이 박탈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또 독일 형법 제76조【사후 가액의 박탈 또는 몰수 명령】에서는 '박탈 또는 몰수' 명령 이후에도 제73조의 조건(범죄행위로 인한 이익 취득) 중의 하나가 새로 알려지게 되면 법원은 그 가액의 박탈 또는 몰수를 사후에 명할 수 있게 했다. 예전 판결에서 드러나지 않은 사실이 밝혀지면 '박탈 또는 몰수' 명령을 추가로 내릴 수 있는 것이다.

범죄행위로 인한 이익 환수는 범죄자의 사망 등으로 형벌을 내리는 게 불가능한 경우에도 할 수 있고, 공소시효도 적용되지 않는다. 제76조a 【박탈의 독립명령】에서는 '형의 선고가 불가능한 경우, 물건 또는 그 가액의 박탈이나 몰수 또는 폐기를 규정하거나 허용하는 기타의 조건이 존재하는 경우에는 독립적으로 이(박탈)를 선고해야 하거나 또한 선고할 수 있고, 각호를 두고 '범죄행위에 대한 공소시효가 완성된 경우'에도 준용한다고 돼 있다.

◆ '소급입법' 위헌소지, '일사부재리'에도 걸려…박영선 의원실 "극복 가능"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학수법에 이재용 부회장 삼남매를 포함시키는 것을 놓고 '범죄에 가담하지 않은 사람을 처벌할 수 있느냐'는 논란이 있는 게 사실이다. 삼남매를 뺀 이학수법에 대해서도, 한번 판결 받은 사건은 다시 심판하지 않는다는 '일사부재리' 원칙과 법 제정 또는 개정 전에 발생한 사건으로 처벌받지 않는다는 '소급입법 금지' 원칙에도 어긋난다는 지적이 있다.

특히 과거 행위에 대해 새로 법을 만들어 사적 재산을 환수하는 것은 '소급입법'으로 위헌 소지가 있다. 헌법 13조에는 '모든 국민은 소급입법에 의해 재산권을 박탈당하지 아니한다'고 돼 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재용 부회장 삼남매만 타깃으로 삼아 법을 제정하는 것도 표적입법으로 위헌 논란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박영선 의원실이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에 법 제정작업을 공동으로 하자고 제안했지만 경실련은 법 정합성 등 이유로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한 관계자는 "박영선 의원이 '민사적 몰수'라는 표현을 쓴 것은 '일사부재리'의 원칙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라며 "삼성 SDS 주식 헐값발행은 형사법으로 이미 처벌을 받은 것으로 형사적 처벌의 일종인 '몰수'를 적용하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형사적' 범죄수익 환수에 '민사적' 논리를 결합해 범죄수익의 소유권을 누구도 주장할 수 없게 만들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소급입법 논란에 대해서는 "친일재산을 국가의 소유로 한다는 내용의 '친일재산환수법'도 소급입법이지만 지난해 합헌판정을 받았다"며 "여론의 지지를 받고 있는 만큼 유병언 특별법이나 전두환 특별법처럼 정치적으로 돌파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