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비트윈’ 깔았어.”

언제부턴가 젊은 커플들 사이에서 ‘비트윈을 (스마트폰에) 깔았다’는 말은 둘 사이의 관계가 어느 정도 진지해졌다는 의미를 갖게 됐다. 비트윈은 이성 친구나 부부가 짝을 이뤄 사용할 수 있는 폐쇄형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다.

둘만의 메시지와 사진·기념일을 공유할 수 있다. 한 대의 스마트폰으로 한 개의 계정만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동시에 2명 이상의 이성 친구와 같이 이용할 수 없다. 소위 ‘양다리’가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2011년 11월 출시된 비트윈은 어느덧 전세계에서 1050만건의 누적 다운로드 횟수를 기록한 인기 서비스다.

비트윈을 만든 VCNC의 박재욱 대표이사는 쾌활하고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었다. 어느덧 사업을 시작한 지 6년차에 접어든 청년 사업가지만 특유의 천진한 웃음소리는 10대 소년 같았다.

반면 회사에 초기 투자를 단행한 강동석 소프트뱅크벤처스 부사장은 조용하고 진지한 타입이었다. 철학적이고 문학적인 표현을 즐겨 썼다. 박재욱 대표는 강 부사장을 가리켜 “신선, 도사 같은 분”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두 사람은 소년과 신선.

강동석 소프트뱅크벤처스 부사장, 박재욱 VCNC 대표이사(왼쪽부터)


박재욱= 2010년 대학에서 마지막 학기를 보내고 있었어요. 부사장님이 학교에 와서 창업 동아리를 대상으로 강연을 하셨는데(두 사람은 서울대 선·후배 사이다) 친구 한 명이 다녀와서는 "나중에 창업할 생각이라면 한 번 연락해보라"며 부사장님 명함을 주더군요.
바로 메일을 보냈죠. 졸업한 뒤 창업할 생각인데 직접 찾아뵙고 조언을 듣고 싶다고요. 두 달 간 답변이 없으셨어요.

강동석= 그 땐 연말에 해외 사업 때문에 굉장히 바빴어요. 대표님이 하도 여러 번 얘기하셔서 저도 대체 언제 보냈던 건가 한번 찾아봤어요(웃음).
메일을 보니 '이제 사업을 막 시작하려고 하는데 인생의 선배로서 조언을 좀 해 달라'는 내용이었습니다. 그 과감함과 용기가 참 좋았어요.

박= 그 때가 비트윈을 만들기 전 태블릿PC용 앱을 만들고 있을 때였는데 결국 2개 서비스 다 '말아먹었어요'.
한 개는 뉴스를 모아서 보여주는 서비스였는데 언론사들을 만나서 콘텐츠를 소싱하는 영업 능력이 부족했고, 또다른 한 개는 전자책(e-book) 서비스였는데 아직 국내 전자책 시장이 충분히 크지 않아 시장이 성장하기까지 기다리기 어려울 거라고 판단해 접었어요.
실패하는 과정을 강 부사장님이 모두 지켜보셨죠. 저희가 걸어온 길을 다 보셨기 때문에 높게 평가해 투자까지 해주신게 아닐까 싶어요.

강= 그때도 얘기했지만 첫번째 서비스는 잘 안 될 것 같긴 했어요. "정 출시하고 싶으면 해보시라"고 했죠. 실패도 해봐야 배우는 거니까요.
그렇게 알고 지낸 지 10개월이 됐을 때 소프트뱅크벤처스에서 처음 10억원을 투자했습니다. 비트윈이 출시되기 직전이었죠.

박= “제가 만든 IT 제품과 서비스를 통해 사람들의 삶의 질이 높아졌으면 좋겠다”고 했더니, 부사장님이 “그건 소프트뱅크 정도 사이즈의 회사가 됐을 때 할 수 있는 일이고, 스타트업은 보다 뾰족한 비전이 있어야 된다”고 하셨어요. 그 말씀을 듣고 비전을 구체화하는 데 집중했습니다.

커플용 앱 '비트윈'의 실행 화면

당시 IT 창업을 하려는 사람들 중 80%가 소셜커머스에, 나머지 20%가 SNS에 뛰어들었어요. SNS 사업을 하려는 사람들 대부분이 페이스북·트위터처럼 개방적인 서비스에 관심을 뒀죠.

저는 반대로 폐쇄적인 서비스에 대한 필요성도 분명 커질 거라 생각했습니다. 모바일 세상에서 감성적인 커뮤니케이션을 가능하게 해 사람들의 실제 관계를 발전시켜야겠다는 비전을 세웠어요.

사람 간의 다양한 관계에 대해 고민하다가, 커플 간의 관계를 더 돈독히 하는 서비스는 아직 없다는 걸 깨달았죠. 그렇게 만들어진 게 비트윈이에요.

강= 소프트뱅크벤처스 내부에선 투자를 반대하는 목소리도 좀 있었어요. 시장이 너무 작은 거 아니냐고요. 그런데 비트윈이 나오고 나서 5개월 뒤에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카피캣(모방작)이 나왔습니다.

모방작이 나왔다는 건, 커플용 SNS가 ‘인류가 가진 보편 타당성’에 부합한다는 뜻 아닌가요? 저는 그렇게 주장했어요. 보편적으로 누구나 원하고 필요로 하는 종류의 서비스라는 건 증명이 됐으니, 이제 품질만 더 높이면 된다고요.

박= 부사장님 말씀대로 처음엔 사람들이 반신반의했죠. 2012년에 “1년 간 80만 다운로드를 기록하겠다”고 했더니, 어떤 벤처캐피털에선 그건 불가능한 일이라며 잘라 말씀하시더군요. 하지만 그 해에 200만 다운로드를 기록했어요.

비트윈의 특징이라 할 만한 건 현실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과 똑같이 설계해놨다는 점이에요. 만약 이용자가 사귀다 헤어지게 될 경우 두 사람 다 정보에 접근할 권한을 잃게 돼요.

30일 안에 재결합하면 데이터를 모두 복구해드려요. 이혼할 때도 조정 기간 4주를 드리잖아요. 데이터를 분석해보니 재결합할 커플은 보통 30일 안에 재결합하더군요.

실제로 비트윈을 쓰다 재결합하신 커플들이 결혼한다면서 편지와 청첩장을 회사로 보내온 적도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