켄트 플래너리, 조이스 마커스 지음|하윤숙 옮김|미지북스|1004쪽|3만8000원

불평등은 인간 본성에서 비롯된 필연적인 결과일까.

한때 적지 않은 국가들이 평등 사회라는 이상을 꿈꿨다. 하지만 1989년 독일 베를린장벽의 붕괴와 함께 막을 내렸다. 공산주의 실험은 일당독재의 권력 집중과 사회적 비효율성만 확인하고 끝이 났다.

하지만 지금 세계는 다시 양극화로 신음한다. 그로 인한 사회 불안이 고조되는 상태에서 평등 사회의 꿈이 다시 고개든다. 그것은 실현 불가능한 이상에 불과한 걸까?

이 책의 밑바닥에는 이런 질문이 깔려있다. 인류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불평등의 기원과 역사적 과정을 추적해 나간다. 현대 국가 이전의 제국, 왕국, 부족사회, 씨족 사회, 대가족 등 인류 사회의 흔적을 찾아 수백만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저자들에 따르면 불평등 사회가 형성되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필수적이다.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 잉여 생산물이다.

적어도 빙하 시대인 기원전 1만5000년 무렵까지는 인간 사회에 불평등이 존재하지 않았다. 이 때는 인류가 대가족보다 작은 소집단을 이루며 식량을 찾아 다니던 시기다.

당시엔 잉여 식량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일개 구성원이 재산을 독차지하지 않도록 적극 억제했다. 일례로 한 부족은 사냥꾼의 화살을 서로 교환해주는 독특한 문화를 갖고 있었다. 사냥감을 잡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한 특정인이 사냥감을 독차지하는 일이 없도록 한 사회적 장치였다.

불평등 사회의 조건이 싹트기 시작한 때는 빙하 시대가 끝나고 농경 사회가 도래한 시점이다. 잉여 생산물이 생기자 야심을 가진 개인들이 사유재산을 축적할 수 있는 조건이 만들어졌다.

그 다음 단계는 축적한 사유재산을 세습하는 일이었다. 인류학자 조너선 프리드먼에 따르면, 한 가계가 다른 이들을 상대로 촌락 차원의 영혼이 자기네 가계 조상이라는 사실을 납득시킬 때 지위 격차를 인정받을 수 있었다.

이들은 구성원들에게 ‘탁월한 성공을 거둔 사람은 초자연적 존재와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전제를 납득시키면서 불평등을 세습해 나갔다. 이것은 사회가 커지면서 ‘상징’이라는 형태를 띄기 시작했고 종교적인 형태로 발전해갔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렇게 불평등을 제도화한 사회는 그렇지 않은 사회보다 강했다. 역사의 일정 시점에 이르러 고위 지도자들 사이에 치열한 경쟁이 벌어졌고, 그 결과 서아시아, 이집트, 아프리카, 멕시코, 페루 등지에 전제 왕국과 제국이 탄생했다.

세계 각지에서 건설된 최초 왕국은 족장 가계 간의 치열한 권력 찬탈의 결과물이었던 셈이다. 이런 흐름에 맞서 평등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도 존재했지만 모두 도태되고 오지로 밀려났다.

이 책은 불평등이라는 개념 자체에 대해 ‘옳다’ ‘그르다’ 가치 판단을 내리진 않는다. 불평등의 기원이 어디에 있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어떻게 발전해 나갔는지 고고학과 인류학의 접근법을 빌려 사실관계를 밝혀 내고 있을 뿐이다.

저자들이 머리글에서도 밝혔듯이, 전문 연구자뿐만 아니라 대중을 위한 교양서로 쓰인 책이다. 1000쪽에 가까운 분량이 부담스럽긴 하지만 친절한 설명과 무난한 번역 덕분에 그렇게 어렵지는 않다. 책에서 다룬 세계 각지 원주민 사회의 사례와 고고학적 연구 결과들은 읽는 내내 상상력을 자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