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아시아나그룹의 지주회사 격인 금호산업 매각 작업에 불이 붙고 있다. 매각 주관사인 크레디트스위스(CS)와 KDB산업은행은 지난 15일부터 주요 대기업과 사모펀드들에게 투자안내문을 발송했다. 매각 대상 지분은 채권단이 보유한 57.48%(1955만주)다. 30일엔 채권단 지분에 대한 매각 공고를 내고 입찰에 들어간다.
금호산업은 '금호아시아나→금호터미널→금호고속' 등으로 연결되는 지배구조의 꼭대기에 있는 그룹 내 주력 건설업체다. 2009년 유동성 위기를 맞아 기업재무구조개선(워크아웃) 절차에 돌입해 5년여 혹독한 구조조정을 거쳤다. 작년 10월 채권단은 "금호산업이 워크아웃 졸업 요건을 충족했다"는 판정을 내렸다. 단, 채권단의 금호산업 보유 지분 처분이 끝나면 워크아웃을 졸업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박삼구 금호그룹 회장은 "금호산업 경영권 확보는 그룹 재건의 최우선 핵심 과제"라며 인수 의지를 내보이고 있다. 박 회장에겐 채권단 보유 주식 '50%+1주'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이 있다. 우선매수권을 활용하면 경영권 인수 기준인 과반 지분 획득이 가능하다는 말이다.
하지만 인수 경쟁이 과열될 시 인수금액만 1조원이 넘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박 회장이 어떻게 자금을 조달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 삼성·신세계·롯데 등 대기업 참여설
금호산업은 금호그룹의 핵심 기업이다. 아시아나항공 지분 30.1%를 가져 최대주주다. 아시아나항공은 금호터미널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다. 금호터미널은 금호고속에 대한 우선매수권을 쥐고 있다. 금호산업을 틀어쥐면 고구마 줄기 엮듯 금호그룹 핵심계열사들이 따라오는 셈이다.
이에 많은 인수 후보들이 금호산업에 눈독을 들이는 것으로 전해진다. 매각주관사의 투자안내문은 40여개 대기업과 20여개의 사모펀드(PEF) 등에게 뿌려졌다. 삼성·현대차·LG·SK·신세계·롯데 등 그룹사들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업계에선 삼성의 참여 여부가 주의를 모은다. 항공 화물 국내 최대 화주(貨主)인 점과 임직원 20만명의 항공 이용을 고려할 때 항공사 지배력을 가진 금호산업에 관심을 가질만 하다는 것이다. 삼성 측에선 이 같은 사실을 부인하고 있다. 그러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장녀인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홍기택 산은 회장을 만나는 등 물밑 작업에 나섰다는 소문까지 나돈다.
이 같은 대기업 참여설은 '박삼구 적대 세력'이 흘린 뜬소문이라는 분석도 많다. 인수가를 높여 박 회장이 우선매수청구권을 행사 못하게 하기 위한 작전이라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광주광역시의 중견 건설사 호반건설 행보도 화제다. 호반건설은 작년 11월 금호산업 주식 6.16%를 사들여 단숨에 박 회장을 제치고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호남을 함께 기반으로 한다는 점에서 호반건설을 박 회장의 '백기사'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일각에선 호반건설이 재무적투자자(FI)들을 모아 금호를 먹을 수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그런데 호반건설은 지난 21~22일 돌연 금호산업 지분 34만8000주를 팔아치웠다. 이에 따라 호반건설의 지분율은 6.16%에서 4.95%로 떨어졌다. 주가가 두배 가까이 오르자 차익 실현을 했다는 분석과 금호산업 인수 포기를 간접적으로 드러낸 것 아니냐는 해석이 분분하다. 호반건설은 이번 매각으로 38억2730만원의 차익을 얻었고, 남은 지분가치는 366억원이 넘는다. 박 회장은 지난 24일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단 오찬에 앞서 "김상열 호반건설 회장과 사이가 좋다"고 말했다.
◆ 대상그룹·군인공제회 박 회장 우호세력으로 나설까
금호산업 매각엔 '최고가 판매' 원칙이 적용될 것으로 알려졌다. 경쟁 인수 후보가 제출한 가격을 보고 박 회장이 1원이라도 더 높은 금액을 내면 금호산업을 가져갈 수 있다. 박 회장은 "여론이 내가 금호산업을 인수하는 것이 맞다고 보면 잘될 것이고, 내가 인수하는게 안되겠다고 본다면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투자업계에서 예상하는 금호산업 인수가액은 5000억~8000억원이다. 시가 기준으로 4200억원 정도인데 경영권 프리미엄과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지배력 등 가치가 더해졌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인수 경쟁이 치열해질 경우 인수 금액이 1조원대를 넘어설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박 회장은 현재 금호산업 지분의 5.3%(176만446주)를 갖고 있다. 박 회장 장남인 박세창 금호타이어 부사장은 5.1%(169만57333주)를 보유 중이다. 박 회장이 금호산업을 되찾으려면 채권단이 보유한 지분 중 최소 39% 이상을 확보해야 한다.
박 회장이 동원할 수 있는 '실탄' 규모는 별로 알려진 바가 없다. 박 회장은 2011년 11월 보유 중이던 금호석유화학 주식 전량을 4090억원에 팔았다. 하지만 이 자금의 대부분을 금호산업과 금호타이어 유상증자 자금으로 써버렸다. 박 회장 일가가 보유한 금호타이어 지분 7.99%도 전부 채권단에 담보로 잡혀있어 자금화가 여의치 않다.
투자업계에선 박 회장이 재무적투자자들을 끌어들이는 방안을 모색할 것으로 점쳐진다. 하지만 2009년 대우건설 풋백옵션 미상환 사태로 재무적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은 상황이다. 게다가 금호고속 매각 과정에서 인수 희망자의 실사를 방해해 현재 금호고속 소유자인 'IBK투자증권-케이스톤파트너스 사모투자펀드(PEF)'(이하 IBK펀드)와 분쟁을 벌이면서 더욱 업계 인심을 잃었다는 평가다.
이런 가운데 대상그룹·군인공제회 등이 박 회장의 전략적 동반자로 거론된다. 임창욱 대상그룹 명예회장은 박 회장의 매제(妹弟)로, 여동생 박현주 대상홀딩스 부회장의 남편이다. 군인공제회는 2003년 금호타이어 지분 70%를 매입하는 등 박 회장의 우호세력으로 분류된다. 금융권 등에선 박 회장이 중국 쪽 재계 인맥을 활용해 자금을 마련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재무적투자자 확보 등 자금 마련 계획에 대해 박 회장은 "순리대로 되지 않겠나"라며 말을 아꼈다.
◆ 다른 계열사 인수 스케줄도 '빡빡'
박 회장으로선 워크아웃과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를 졸업한 주력 계열사들의 채권단 지분도 줄줄이 인수해야 하는 점도 부담이다.
당장 그룹의 모태(母胎)인 금호고속 인수 절차가 코앞에 닥쳤다. 금호고속 지분을 100% 보유한 IBK펀드가 3월2일까지 박 회장 측에 금호고속 인수 여부를 결론 지어달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상반기엔 금호산업을 인수하고 금호고속 인수는 그 다음으로 추진하겠다는 박 회장의 그룹 재건 구상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박 회장은 금호산업을 인수한 후 자산 매각과 유동화를 통해 금호터미널에 금호고속 인수 자금을 지원한다는 복안을 가졌던 것으로 알려졌다. 금호고속 인수가격은 5000억원 정도로 추정된다.
IBK펀드는 다음달 16일 금호고속에 대한 우선매수청구권을 가진 금호터미널에 인수 제안 공문을 발송할 예정이다. 제안을 받아들일 경우 금호터미널은 6월 초까지 인수대금을 완납해야 한다. 제안을 거절할 경우 우선매수청구권은 소멸된다. 금호터미널의 가용 자금은 2013년 광주신세계로부터 광주종합터미널에 대한 임차보증금으로 받은 5000억원 중 남아있는 3500억원 정도다.
박 회장은 향후 금호타이어 지분을 매입할 자금(7000억원대)도 마련해야 한다. 금호타이어는 작년 12월 5년만의 워크아웃을 졸업하면서 올해 상반기 매각 절차를 거칠 것으로 보인다. 우리은행 14%, 산업은행 13.5% 등 9개 채권기관이 가진 42%의 지분이 인수 대상이다.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 지분에 대해서도 우선매수청구권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금호산업까지 사들여야 하는 박 회장으로선 2조원이 훌쩍 넘어가는 자금이 필요해질 수 있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