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을 벗어나 행주IC를 거쳐 벽제를 지나면 구불구불한 시골길을 끼고 장원(粧源)기념관이 나타난다. '장원'은 아모레퍼시픽 창업자인 고(故) 서성환 선대회장의 호다. 장원기념관은 2003년 1월 9일 영면한 서 회장을 기리는 장소다. 두꺼운 철문을 밀어젖히고 5분여를 걸어 들어가자 언덕배기에 장원기념관이 나타났다.
"저쪽 능선부터 이쪽 능선까지 다 선대회장께서 사놓으신 땅입니다. 통일만 되면 개성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시면서 사셨데요. 여기가 북한에서 가까우니까."
장원기념관 관리인이 말했다. 9일 오전 10시 서성환 선대회장 12주기 추모식을 앞두고 내부가 분주했다. 11시부터 시작되는 추모식엔 서 선대회장과 아모레퍼시픽의 전신 '태평양'을 일군 원로 임원 33명이 참석했다. 서 선대회장은 1945년 태평양을 설립했다. 개성 송악산 밑에서 부모님을 도와 화장품을 만들던 경험이 바탕이 됐다. 이렇게 시작한 태평양은 어느덧 매출액 4조원을 바라보는 글로벌 화장품 기업 '아모레퍼시픽'으로 자랐다.
올해는 마침 아모레퍼시픽이 세워진 지 70주년을 맞는 해다. 11시 5분, 원로임원들이 하나 둘 자리를 채웠다. '퍼시픽 클럽' 회원들이다. 퍼시픽 클럽은 태평양 시절부터 아모레퍼시픽까지 이 회사를 거쳐 간 임원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분기마다 모임을 갖는다. 총 회원 수는 130여명. 오늘 추모식엔 그 중 사분의 일 정도가 참석했다.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회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일주일 전에 이미 현직 임원 50여명과 이곳을 찾았다고 했다. 이날 서 회장은 을지로 사옥에서 평소와 다름 없이 집무를 봤다.
추모식을 올리는 재실(齋室)은 금세 찼다. 원로 임원들의 얼굴에선 숙연함이 감돌았다. 추모식은 간결하게 진행됐다. 기업문화팀의 간단한 식순 설명 후에 바로 짧은 묵념이 이어졌다. 추모사는 별도로 낭독하지 않았다.
모두 밖으로 나와 서 선대회장의 묘소를 찾았다. 묘소는 기념관에서 도보로 채 3분 정도 거리였다. 잘 정돈된 봉분이지만 글로벌 기업 창업자의 묘소라기엔 소박했다.
"여기 이 소나무가 이렇게 컸네. 처음 심을 때만 해도 비리비리해서 잘 자랄까 싶었는데. 이게 서 회장님이 직접 심었던 걸 옮겨둔 거잖아."
한 원로임원이 묘소로 올라가는 길에 있는 소나무를 보고 말했다. 이들은 여기서도 짧은 묵념으로 서 선대회장을 기렸다.
영사실에 이르러서 엄숙함이 더해졌다. 장원기념관 영사실은 서 선대회장의 집무실을 그대로 본떠 만들었다. 벽면에는 서 선대회장이 받은 훈장들이 걸려 있고, 한쪽에는 서 선대회장의 흉상이 놓여 있었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이르기까지 함께 태평양을 키웠던 임직원 사진들도 보였다.
원로 임원들은 저마다 서 선대회장을 만났던 이야기를 풀어놨다. 그리고 곧 동영상이 시작됐다. 서 선대회장의 일대기를 요약한 10분 남짓한 동영상이었다. 원로 임원 모두가 일어나 동영상을 감상했다. 70~80대 노령이 많았지만 동영상이 끝날 때까지 자리에 앉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동영상 중간 중간에는 서 선대회장의 육성이 나왔다. 서 선대회장이 당시 글로벌 화장품 회사였던 '코티'의 프랑스 공장을 방문하고 나서 "그 공장을 보고 느꼈던 부러움이 우리 화장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사명이 된 거야"라고 말하는 장면에서 일부 원로임원들은 눈물을 훔쳤다. 모두 자신의 이야기라고 여기는 듯했다.
아모레퍼시픽이 운영하는 녹차 밭 '제주 서강다원'을 총괄했다던 한 임원은 "10분짜리 동영상을 봤는데 영화 '국제시장' 한 편을 다 본 기분이 든다"며 "선대회장께서 다시 태어나도 화장품을 할 것이라고 말했는데, 나도 그럴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