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백령도행 배를 타다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 앞에서 아침을 먹고 7시 50분에 출발하는 배를 탔다. 소청도, 대청도를 들렀다가 백령도로 가는 배다.
인천항에서 백령도까지 뱃길로 228km, 실제로는 더 가깝고 직선으로 가면 인천에서 2시간만에 갈 수 있는 곳인데 분단의 영향으로 먼 거리로 돌아서 가야 하니까 4시간 넘게 걸리는 거다.

빨간 원 안에 있는 섬이 백령도. 바다 위에 표시된 선은 NLL이다. 백령도는 휴전선의 서해 최북단 섬으로 북한의 옹진반도를 지척에 두고 있다.

소청도, 대청도에서 사람도 내리고 짐도 내려야 해서 4시간 30분은 잡아야 한다. 군대에서 쓰는 물품들도 있고 섬이니까 부족한 것들이 있어 사람보다 짐 내리는데 더 시간이 걸렸다.
가는 배 안 승객의 절반은 해병대 군인들이었다. 군복이 달라 물어보니 휴가 나왔다가 돌아가는 고참들과 신병들이 복장이 달랐던 것이었다.입대한 지 8주 만에 자대배치 받아 가는 해병대 신병들, 아기들이다. 마음이 짠하다.

대동여지도에 나타난 백령도. 사진 왼쪽 위에 있는 섬이 백령도다. 백령도 오른쪽 아래로 대청도 소청도도 표시되어 있다.

◆ 바다는 낭만적인 곳이 아니다.
해병대 신병이야 심정이 복잡하겠지만, 인천대교 아래를 지나는 순간부터 나는 신이 나 있었다. 산골출신이라 바다만 보면 너무 좋다. 게다가 백령도라니.
바다가 호수 같았다. 2천톤급 배라서 그런가? 멀미도 안한다. 해안과 섬 답사할 체질인가. 바다와 섬을 보며 혼자 즐거워하고 있었다.

철없는 생각은 다음날 깨져 버렸다. 1박 2일의 일정을 마무리하고 백령도에서 인천가는 배를 기다리는데 선장이 배를 제대로 대지 못하는 거였다. 뒤로 배를 대려고 하는데 배가 바람에 떠밀려 가는 게 보인다. 뒤로 대지 못하니 결국 앞으로 배를 댄 후 차량은 내리지도 못하고 사람만 간신히 한 줄로 내리는 게 보였다. 배멀미로 고생한 사람들이 많아 구급차가 대기하고 있었고 들 것에 실려 나오는 사람들이 여러 명 있었다.

느낌이 안 좋았다. 한참 늦게 출발한 배에 앉았다. 처음에는 놀이공원 기구 타는 것 같더니, 나중에는 바다에도 비포장도로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대청도를 들렀다가 소청도 부근을 지나는데 배가 한번 기우뚱하더니 안내방송이 나왔다. 파도가 높아 백령도로 회항을 한다는 것이다. 연이어 안내방송이 나온다. 내일도 배는 출발하지 않는다고. 빨라야 모레 나갈 수 있다고.

배 탄지 1시간 30분 만에 소청도 부근에서 회항해 다시 1시간 30분 걸려 백령도로 돌아갔다. 누가 바다를 낭만적이라고 했나. 섬은 그런 곳이다. 함부로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는 곳이다.
그나저나 첫 휴가 나가는 해병대 신병들은 어떡하나 하는 생각을 하다보니 어제 묵은 숙소에 돌아와 있었다. 1박 2일 일정이 3박 4일로 바뀌게 되는 순간이었다,

◆ 백령도에서 NLL 너머 장산곶 인당수를 보다

그래도 백령도는 좋았다.
내가 백령도에 꼭 와보고 싶었던 건 북한 땅을 아주 가까이 볼 수 있는 곳이어서이다. 남북한의 경계선은 육지와 바다가 다르다. 서해 5도라 부르는 대연평도, 소연평도, 소청도, 대청도, 백령도는 육지의 휴전선보다 위도상으로 훨씬 더 북쪽에 위치한다. 이 중에서도 백령도가 가장 북쪽에 위치한다.

백령도의 효녀심청상. 심청상 뒤편에 보이는 곳이 북한의 장산곶이다. 심청상 왼쪽 장산곶 끝부분의 바다를 인당수로 생각한다.

백령도에서 가장 먼저 간 곳은 심청각이었다. 치마 둘러쓰고 바다에 뛰어드는 모양을 하는 효녀 심청 상(像)이 세워져 있었고 2층 건물 심청각이 세워져 있었다.

이곳에서 북쪽을 바라보면 길게 반도가 보이는데 장산곶이다. 백령도에서 거리는 17km 밖에 되지 않는다. 아주 잘 보인다. 장산곶과 백령도 사이에 북방한계선(NLL, Northern Limit Line)이 존재한다. 작은 섬이 하나 보였는데 북한 김정은 제1위원장이 2013년 3월에 목선을 타고 왔었다는 월내도(月乃島)이다.

장산곶 앞 바다에 보이는 섬이 월내도이다. 월내도와 백령도 사이가 NLL이다.

직접 충돌을 피하기 위해 NLL 근처에는 남북한 배들이 없기에 중국 어선들이 저인망식으로 싹쓸이한다.

사실, 심청전은 어린이들이 읽을만한 좋은 소설이 아니다. 공양미 삼백석을 내면 눈을 뜨게 해준다는 승려의 사기에, 인신매매에, 살인이 뒤엉킨 이야기이다. 비슷한 이야기가 전하는 곳은 심청이 자기 동네 사람이라 이야기한다.

인천에서 목포까지 답사를 하다보면 대부분의 지자체에서 서해안 시대의 중심도시, 중국 교역의 중심도시를 캐치프레이즈로 내세우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서해안 곳곳에 중국과 무역했다는 곳이 등장한다. 인천의 능허대도 중국으로 떠나는 배가 출발하는 지점이었고, 당진도 마찬가지. 당나라로 연결되는 진(津)이 당진(唐津)이 아닌가. 태안반도에서도 중국으로 가는 배가 떠났고, 나주의 영산포에도 중국에서 배가 들어왔고, 완도의 청해진도 중국과 무역하던 곳이었다.

심청 축제, 심청 이야기 마을, 심청한옥마을이 전라남도 곡성에도 있다. 그런데 왜 백령도에 심청이 동상과 심청각이 세워져 있는가? 백령도에서 마주 보이는 장산곶 끝 부분을 심청전에 등장하는 인당수로 보기 때문이다.

‘고려 초 황해도 황주 도화동에 성은 심이요, 이름은 학규라는 사람이 살았는데’ 이 사람이 심청의 아버지이다. 인당수에 빠졌던 심청이 연꽃을 타고 살아났다는 곳을 백령도 남쪽의 연봉 바위로, 심청을 태운 연꽃이 육지로 실어다 준 곳이 백령도 연화리로 본다.

국문학 전공자에게 황해도에 시각 장애인이 많았다는 이야기도 들은 적이 있다. 심봉사는 황해도 사람이고 황해도에서 중국으로 가는 배는 장산곶에서 출발했기에 인당수를 장산곶 앞으로 보는 것이다. 백령도에서 산동반도까지의 거리는 180km이다. 소설을 가지고 장소마케팅을 하는 것이다.

◆ 백령도의 절경 두무진

백령도 해안에는 곳곳에 절경이 있어 눈을 시원하게 해 준다. 대표적인 곳이 두무진이다. 백령도 서북쪽 해안인데 장군의 머리처럼 생겼다고 해서 두무진(頭武津)이라고 설명해 놓았다. 옛지도에는 두무진(斗武津)이라 적혀 있다.

동해안의 촛대바위(추암)를 가보고 정말 경치 좋다고 생각했었지만, 이곳이 훨씬 더 좋다. 뾰족한 바위들이 연이어 바닷가에 서 있었다. 과연 사진 동호인들이 단체로 와서 사진을 찍을만한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광해군 때 이대기가 귀양 와서 에 ‘늙은 신의 마지막 작품’이라는 말을 남긴 곳이다.

백령도의 최고 절경 두무진

백령도는 섬이지만 의외로 횟집이 적었는데, 두무진 가는 길에 횟집이 연이어 있었다. 관광유람선을 타고 백령도를 돌아보려면 두무진으로 와야 한다.

◆ 해안의 절경들

또다른 명승지로 북쪽 고봉포구의 사자바위를 들 수 있는데, 사자가 하늘을 향해 포효하는 모습을 딴 것이다.
섬 남쪽의 명승지로는 남포리 습곡구조와 용트림바위, 콩돌 해안, 사곶해변 등을 들 수 있다. 습곡구조는 지각변동의 결과를 생생히 보여준다. 콩돌 해안은 해안이 모래가 아니라 콩처럼 작은 크기의 돌로 이루어진 해안이다. 사곶해변은 천연비행장으로 사용하기도 했던 곳이다. 관광버스를 타고 이 곳을 지나가 보았는데 바퀴가 전혀 빠지지 않았다. 지금은 용기포구 선착장이 생기면서 퇴적되는 부분이 훨씬 적어졌다.

백령도의 대표적인 동물이 잔점박이물범이다. 백령도 동북쪽, 물범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을 물범바위라 이름 붙였다. 물범들은 내년에 다시 돌아오겠다는 메시지를 남기고 발해만으로 떠났다. 백령도에는 4월부터 11월까지만 산다. 그래서 우리는 만나지 못했다.

남북한이 군사적으로 대치하는 현실을 느끼고 싶다면 흑룡부대와 백령도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한 184m OP를 가보거나 끝섬 전망대에 가 보는 것을 추천한다. 서해 5도에서 일어났던 충돌을 잘 정리해 놓았다.

◆ 백령도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가

서울과 인천은 아주 추웠는데 백령도는 춥지 않았다. 연평균 기온은 11도, 1월 기온은 영하 1.8도, 8월 평균 기온은 23.4도. 딱 살기 좋은 곳이다.

섬이지만 대부분 주민들은 농업에 종사한다. 농사를 지으려면 저수지가 있어야 하는데 보이지 않는다. 연 강수량도 825.6mm 밖에 되지 않는다. 그러면 어떻게 농사를 짓느냐고 주민에게 물었더니 지하수가 풍부하다고 했다. 지하수를 뽑아 올려 농사를 짓는다고, 논마다 이 시설이 다 되어있다고 대답해 주었다.

백령도는 우리나라에서 14번째 큰 섬이었다. 백령도의 유일한 다리인 백령대교 너머에는 담수호가 보인다. 간척사업으로 많은 부분이 육지로 바뀌어 지금은 8번째로 큰 섬이 되었다.

백령도를 다니다 보니 교회가 많이 보였다. 주민의 90%가 기독교인이라고 한다. 다들 교회 가느라 문을 닫아서 예전에는 일요일에 외지인들이 밥 먹을 식당을 찾기가 어려웠다고 한다.

백령도 여러 교회의 모교회가 되는 곳이 1898년에 설립된 중화동교회이다. 중화동 교회 초대 당회장은 언더우드 목사였고 1900년에 중화동 교회 교인 7명에게 세례를 주기도 했다.
중화동 교회에서는 오래된 무궁화나무를 덤으로 볼 수 있다. 높이는 6.3m. 수령은 백년 정도 되었다. 천연기념물 제 521호이다.

백령도의 명물 까나리액젓을 담그는 고무통이 자주 보인다.

백령도를 다니다보면 큰 고무통이 보이고 그 위에 돌을 올려놓은 모습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까나리액젓을 담그고 있는 거다. 우리가 탔던 버스에는 까나리 여행사라고 적혀 있었다. 대표적인 특산품이 까나리 액젓이다. 이 동네 사람들은 삼겹살도 까나리 액젓에 찍어 먹는다. 염전은 화동염전 하나가 있었다. 여기서 생산된 소금으로 액젓을 담그는데 물량이 부족하여 다른 곳에서 소금을 들여오기도 한다.

까나리액젓 외에 다른 특산품으로는 고구마, 미역, 다시마, 쑥이 있다. 아이들 주려고 다시마, 쑥이 포함된 사탕과 젤리를 사왔다. 생선구이를 좋아하는 아내를 위해서는 반건조 놀래미를 샀다. 회가 아니라 놀래미를 튀겨 먹다니. 답사 가서 뭘 사와서 칭찬받기는 처음이다.

백령도는 과일 재배가 안 된다. 한 때 환금작물로 키위를 재배하기도 했으나 배로 싣고 나가야 하므로 유통비가 만만치 않아 가격 경쟁력이 없어 이 마저도 중단했다. 백령도 답사 갈 때는 선물로 과일을 사 가시라. 놀래미회로 보답 받을 것이다.

책상에 앉아 있는 지금도 백령도에서 바라본 장산곶이 눈에 선하다.

대동여지도의 백령도 보기
조선후기 지방지도의 백령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