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터 틸ㆍ블레이크 매스터스 지음|이지연 옮김|한국경제신문|252쪽|1만3500원
"사람들이 이미 아는 일은 다시 해봤자 세상은 1에서 n이 될 뿐이다. 익숙한 것이 하나 더 늘어날 뿐이라는 말이다. 그러나 뭔가 새로운 것을 창조하면 세상은 0에서 1이 된다."
미국의 전자결제시스템 페이팔 공동창업자로 유명한 저자의 말이다. '독과점'이 여론의 뭇매를 맞고 당국의 규제를 당하는 지금, 그는 오히려 "경쟁하려 하지 말고 독점을 추구하라" "경쟁 상황에 놓일수록 얻는 것은 줄어든다"고 주장한다. 다분히 도발적이다.
경제학 교과서들은 흔히 자본주의를 두고 시장 자유와 완전 경쟁에 기초하고 있다고 써놨다. 자본주의 경제 윤리에서 독점은 악(惡)으로 취급된다. 하지만 저자는 기업 간의 치열한 경쟁이야말로 소모적이라고 본다. 그는 "미국인들은 경쟁을 신성시하며 경쟁 덕분에 우리가 사회주의자들처럼 가난하지 않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본주의와 경쟁은 상극"이라며 "자본주의는 자본의 축적을 전제로 하고 있지만, 완전경쟁 하에서는 경쟁을 통해 모든 이윤이 사라져버린다"고 설명한다. 아주 큰 사업이라도 치열한 경쟁 속에 노출되는 사업은 나쁜 사업일 수도 있다는 뜻이다. 스타트업이라면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미국 항공사의 예를 보자. 항공사들은 매년 수백만 명의 승객을 실어나르며 수천억 달러의 가치를 창출한다. 하지만 2012년 평균 편도요금은 178달러인 데 반해, 항공사들이 승객 1인당 벌어들인 수익은 37센트에 불과했다. 반면 구글은 2012년 500억 달러를 벌어들였지만(항공사들은 1600억 달러), 매출의 21%가 이익이었다. 이익률로 따지면 그해 구글은 미국 항공사들보다 100배나 높은 수익을 냈다. 구글의 현재 기업가치도 미국의 모든 항공사를 합한 것보다 3배다 크다.
저자는 이처럼 독점이야말로 기업이 이윤과 혁신을 낳는 원천이라고 말한다. 경쟁을 통해 성공을 이루려는 사고 방식은 창조적이지 않다고 단언한다. 창조적 독점으로 시장을 지배하던 기업도 경쟁에 시선을 빼앗기면 새로운 성과를 낼 수 없다고 지적한다. 대표적 사례로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을 꼽는다.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와 에릭 슈미트의 구글은 신생기업이었을 땐 서로를 신경 쓰지 않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컴퓨터 운영체제와 사무용 응용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구글은 검색엔진을 만들었다. 그러나 두 기업 모두 점차 성장하면서 서로에게 관심을 돌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운영체제는 윈도우 대 크롬OS, 검색엔진은 빙 대 구글, 인터넷 브라우저는 익스플로러 대 크롬, 사무용 응용 프로그램은 MS오피스 대 구글독스, 태블릿 PC는 서피스 대 넥서스 구도가 만들어졌다.
그런데 두 기업이 경쟁을 벌이는 동안 홀연히 애플이 나타났다. 2013년 1월 애플의 시가총액은 5000억 달러로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를 합친 것보다 많았다. 저자는 마이크로소프트나 구글이 서로를 견제하지 않고 미래를 내다봤다면 둘 중 하나가 애플의 성과를 가져갔을 것으로 본다.
저자는 "그 누구도 컴퓨터 운영체제를 만들어서 제2의 빌 게이츠가 될 수 없고, SNS(소셜네트워크)를 만들어 제2의 마크 저커버그가 될 수 없다"고 말한다. 기존의 성공 회사를 모방해서 경쟁하려 하지 말고 새로운 것을 창조해 자기 분야를 독점하라는 얘기다. 이른바 '창조적 독점'이다.
기업가들이 흔히 쓰는 '파괴적 혁신'이란 말에도 딴죽을 건다. 그는 "신생 기업이 혁신을 통해 기존 시장을 파괴(지배)하겠다고 생각하면 그 자체가 구식업계로 편입하겠다는 뜻과 같다"며 "스타트업이 성공하려면 창조라는 활동 자체에 몰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저자가 2012년 미국 스탠퍼드 로스쿨에서 강의한 스타트업 수업 내용을 묶은 책이다. 논리가 명쾌하고 쉽게 읽힌다. 실리콘밸리의 창업 정신과 기업 운영의 논리, 미국 혁신가들의 번뜩이는 생각을 유감 없이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