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이 향후 4년간 사상 최대 규모인 80조7000억원 투자를 결단한 것은 '글로벌 판매량 800만대+α 시대'를 대비해 생산 능력과 R&D(연구·개발) 역량을 명실상부한 글로벌 메이커 수준으로 만들기 위함이다. 신흥국 경제 위기 재연 조짐이 보이고 원화 강세 같은 불안 요소가 많지만 적극적인 선제(先制) 투자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특히 전체 투자액의 4분의 3이 넘는 61조원을 국내에 투자해 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이달 2일 신년사에서 올해 경영 방침을 '투자 확대를 통한 미래 경쟁력 제고'라고 못 박으며 대규모 투자를 예고했다. 현대차 관계자는 "어려운 때일수록 남들이 예상하지 못하는 수준의 투자를 하고 공격적으로 나서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정몽구 회장의 평소 지론이 그대로 반영됐다"고 말했다.

親환경·스마트카 R&D에 역량 집중

현대차그룹은 향후 4년간 전체 투자액 중 85%인 68조9000억원을 현대·기아차, 현대모비스 등 주력 사업인 완성차와 부품 부문에 집중한다. 그중에서도 핵심은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미래 성장 동력으로 꼽히는 친환경차와 스마트카 R&D 투자다.

2018년까지 11조3000억원을 투입해 충전식 하이브리드 자동차, 하이브리드 및 전기차 전용 모델을 내놓기로 했다. 2018년에는 세계 최고 기술력을 갖춘 수소연료 전지자동차 후속 모델도 출시하기로 했다. 미국·중국·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서 연비(燃比) 규제 강화에 맞춰 일반 가솔린·디젤 자동차의 연비도 획기적으로 높인다는 방침이다. 이를 위해 울산·화성·서산에 차세대 엔진·변속기를 개발·생산할 수 있는 공장도 새로 짓는다.

구글·애플 등 글로벌 IT 기업들까지 뛰어들고 있는 무인(無人) 자동차 경쟁에도 2조원을 투입한다. 경기 화성 남양연구소에 연구 시설을 새로 짓고 자동차에 적용되는 IT와 전자 부품을 적극 개발하기로 했다.

시설 투자는 서울 삼성동 옛 한국전력 부지에 짓는 글로벌비즈니스센터(GBC)와 해외 신규 공장이 핵심이다. 부지 매입비 10조5500억원을 비롯해 기초 공사, 인허가 등과 관련해 총 11조원을 투입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서울시 인허가를 받으면 공사비 등 추가로 최소 수조원대의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 허베이(河北)성과 충칭(重慶)시에 짓기로 한 현대차 4·5공장과 멕시코 기아차 공장 건설에도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전망이다.

內需 활성화 효과 기대

현대차그룹은 이번 투자 계획이 내수 활성화에 이바지할 것이라고 기대한다. 전체 투자액 80조7000억원 중 76%인 61조2000억원을 국내에서 집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또 R&D 인력 7345명과 GBC 건립 관련 건설 인력 4225명 등 총 1만1600개의 신규 일자리도 만든다. 국내 투자 확대를 바라는 정부 방침에 적극 부응하는 한편 현대차가 1990년대 말 이후 국내에 신규 공장 건립이 전무(全無)했다는 비판을 불식(拂拭)시킬 수 있는 카드이다. R&D에 30조원이 넘는 투자액을 배정한 것은 한전 땅을 10조원 넘는 거액에 사들여 R&D 역량이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를 감안한 조치다.

박심수 고려대 기계공학과 교수는 "폴크스바겐그룹 등 글로벌 경쟁자들이 대규모 투자로 성장 동력을 만들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바람직한 결정"이라며 "투자가 일선 연구 현장에서 경쟁력 향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단기 수익성이나 비용에 구애받지 않는 과감한 조치가 뒤따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대규모 투자 발표에도 이날 그룹 주력사인 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주가는 크게 움직이지 않았다. 유가 급락과 미국 증시 폭락으로 전반적인 시황이 부진한 영향으로 현대차가 2.08%, 기아차는 1.54% 각각 하락했다. 서성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현대차가 작년 말 2020년까지 제품 평균 연비를 25% 높이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장기 투자 확대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며 "작년 4분기 실적과 배당 확대 여부가 결정돼야 주가(株價)가 움직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