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은 재계에 순탄치 않은 한 해였다. 원화가 강세를 보이며 수출 환경이 악화한데다, 총수의 구속과 재판도 유난히 많았다.

박근혜 대통령은 규제 개혁을 외치며 기업 경영을 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고 나섰지만, 산업계는 어려움을 겪었다.

대표 기업인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이 급락했고, 현대차 역시 영업이익률이 하락했다. 철강과 조선, 건설, 화학 업계는 불황의 늪에서 여전히 헤어나오질 못했다.

다사다난(多事多難)한 한해를 겪으며 재계 주요 인사의 입에서도 여러 가지 발언이 나왔다. 특히 사주 일가의 잘못된 한마디가 기업과 가족을 위기로 몰아넣은 경우도 있었다. 올해 재계에서 화제가 됐던 발언들을 모아봤다.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

이승철 전경련 부회장 "액티브X를 액티브하게 엑스 쳐달라"

박 대통령은 "규제는 암 덩어리"라며 기업을 경영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규제 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비쳤다.

이런 가운데 전국경제인연합회 이승철 상근부회장은 지난 3월 열린 민관 합동 규제 회의에서 "인터넷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한국에만 있는 액티브X(금융거래 보안 프로그램)를 액티브하게(적극적으로) 엑스 해달라(없애달라)"고 주문해 화제가 됐다.

한국에서만 주로 쓰는 이 프로그램 때문에 해외에서 국내 인터넷 쇼핑몰을 이용하기 어렵고, 보안상 문제도 있어 대표적인 잘못된 규제라는 것이다.

정부는 최근 내년부터 액티브X를 사용하지 않는 방안을 실행에 옮겼지만, 여전히 대체 프로그램이 필요한 상황이라 논란은 가열되고 있다. 액티브하게 엑스가 쳐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정몽준 전 새누리당 대표

정몽준 현대중공업 대주주 아들 "미개한 국민"

지난 4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사흘째 되는 날 한 재벌가 3세가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이 도마에 올랐다.

세월호 유족의 행동을 비난하며 "국민이 미개하니까 국가가 미개하다"고 언급한 이 게시글은 인터넷을 통해 삽시간에 번지면서 비난을 면치 못했다.

당시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한 정몽준 후보는 아들의 이 글에 대해 즉각 사과했지만, 지지율은 급격히 떨어졌고 결국 박원순 후보에게 패배하고 말았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현대중공업은 대규모 영업적자를 내며 주가가 반 토막 아래로 떨어지는 상황을 맞았다. 대표적인 무파업 사업장이던 현대중공업 노조는 최근 파업을 시작했다.

현대중공업으로서는 나올 수 있는 모든 악재가 나온 해이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 "모범답안 외운 수험생 안타까웠다", "삼성 지분 팔겠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지난 4월 연세대 강연에서 "채용면접 때 지원자들이 자신의 소신을 말하지 않고 똑같은 대답만 해 안타깝다"며 "앞으로 인문학 소양을 갖춘 인재를 채용하겠다"고 말했다. 취업과외까지 성행하는 세태에 경종을 울린 것이다.

정 부회장은 또 12월 11일 삼성전자 지분을 팔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또 다시 화제의 중심에 올랐다.

정 부회장은 삼성전자 지분 0.2%(29만3500주)를 보유 중이다. 개인 주주로는 이건희 회장과 홍라희 삼성리움미술관장, 이재용 부회장에 이어 네 번째로 많다.

정 부회장이 시기와 방법, 이유를 밝히지는 않았지만, 재계에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나왔다. 이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가 수월해질 것이라는 분석부터, 다소 소원해졌던 양가의 관계가 개선될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정 부회장이 삼성그룹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완전한 홀로서기를 하려고 한다는 분석도 있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공든탑이 무너지는 느낌", "제2롯데월드몰 잘 될 것 같다"

지난 6월 롯데홈쇼핑의 납품비리 사건이 터지자 신동빈 회장은 "온 정성을 다해 쌓아온 공든탑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신헌 전 롯데쇼핑 대표가 롯데홈쇼핑에 재직할 때 납품업체들로부터 금품을 받은 사실이 적발된 것을 보고 한 말이다.

신 회장은 "이번 일을 부정과 비리를 발본색원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며 "부정·비리 재발방지 대책을 보완하라"고 지시했다.

하지만 신 회장은 편안하지 못한 연말을 맞은 것으로 보인다. 신 회장은 "제2롯데월드몰이 잘 될 것 같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지만, 잘 되기는커녕 이곳저곳에서 문제점이 발견되고 있기 때문이다.

신 회장의 공든탑이 하나만 무너지지 않는 모양새다.

최태원 SK 회장의 딸 최민정씨

최태원 SK회장 딸 최민정씨 "대한민국의 딸로 태어난 것이 자랑스럽다"

지난 8월 해군사관후보생에 합격한 최태원 회장의 딸 최민정씨가 훈련 도중 면회를 온 지인들에게 밝힌 소감이다.

최 씨는 훈련을 무사히 마치고 11월에 해군 소위로 임관했다. 재벌가 자녀가, 특히 딸이 장교로 임관한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아직 우리나라 재벌의 자녀는 남성들조차도 군대에 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선진국에서 사회 지도층일수록 국가에 대한 의무를 중요시하는 '노블레스 오블리주' 문화가 정착된 것과 비교가 되는 일이다.

SK그룹에서는 "나를 만든 것은 해병대"라고 말할 정도로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최신원 SKC 회장의 뜻을 이어받아 외아들인 성환 씨가 해병대에서 군 복무를 마친 예도 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 "정부 땅 산 것이라 마음이 가볍다"

현대자동차그룹은 지난 9월 서울 강남구 삼성동 한국전력 본사 부지를 10조5500억원에 인수하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렸다.

애초 3~4조원 수준이 거론됐던 것을 감안하면 엄청난 돈을 쏟아부은 것이다.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연구개발이 아닌 부동산에 과도한 투자를 한다는 우려가 나왔고, 주가도 급락했다.

더구나 입찰에서 경쟁했던 삼성그룹이 4조 원대를 써낸 것으로 알려지며, 상당수 임원이 옷을 벗을 수 있다는 책임론도 나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정 회장이 사기업이나 외국기업에 판 것이 아니라 큰돈을 써내면서 마음이 가벼웠다고 말하면서 그룹 내 책임론은 사그라졌다.

빚더미에 있던 한전이 빚을 상당수 털어내게 되면서 전기요금 인상 압력이 줄어든 것도 서민의 입장에서는 환영할 일이다.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 "나 낙하산 맞다", "반드시 복수하겠어"

지난 10월 한 방송사의 아침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조현민 대한항공 전무는 "2년도 안 되는 턱도 없는 경력에 대기업 과장으로 입사했는데 다 알 것 아니냐"며 "하지만 광고 하나는 자신 있어 오게 됐다"고 말해 화제가 됐다.

재벌가 자녀라 특혜를 받은 것을 인정하면서도 실력을 봐달라는 당당한 모습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두 달 후 조 전무는 언니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 회항' 사건이 터지며 이때의 발언까지 화제가 됐다.

이후 "모든 임직원의 잘못"이라며 책임을 회피하는 듯한 발언으로 또다시 구설에 올랐다.

12월의 마지막 날에는 "반드시 복수하겠어"라는 문자메시지를 언니에게 보낸 것이 알려지며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그것은 그 집 사정"

지난 11월 삼성그룹은 화학부문과 방산부문 계열사 4곳을 한화그룹에 넘기는 빅 딜을 단행했다.

재계 1위인 삼성그룹에 속했던 직원들이 한화그룹으로 옮기며 신분과 처우에 대한 불안이 많았던 상황. 이들이 노조 설립신고서를 내는 등 집단행동 조짐을 보이는 것에 대해 김 회장은 "그것은 그 집 사정"이라며 다소 거리감 있는 반응을 보였다.

반발이 커지자 한화그룹은 처우를 종전과 같이 유지하고 고용을 보장한다는 발표를 하며 진화에 나섰다.

사회봉사를 마치자마자 경영에 복귀한 김 회장이 다시 거침없는 행보를 보이면서 재계에서는 한화그룹을 다시 예의주시하기 시작했다.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 "너 내려"

올해 재계에서 가장 화제가 된 발언은 단연 조현아 대한항공 전 부사장의 "너 내려" 발언이다.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장녀인 조 전 부사장은 지난 5일(현지시각) 미국 JFK 국제공항에서 이륙 준비를 위해 출발한 대한항공 항공기를 돌려세웠다.

승무원의 땅콩 서비스가 잘못됐다며 사무장을 질책하고 비행기에서 내리도록 지시했기 때문이다.

비행기를 돌리라고 지시했는지를 떠나 비행기는 출입문으로 되돌아갔고 '땅콩 회항' 사건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사건으로 재계 2~3세들의 안하무인격 행동이 공분(公憤)의 대상이 됐다.

조 전 부사장은 결국 항공보안법 위반 등의 혐의로 30일 구속돼 매트리스를 깔고 첫날 밤을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