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올해 마지막 규제 개혁 대책을 내놓았지만 핵심 덩어리 규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올해 규제 개혁을 위해 대통령 주재로 두 번의 규제개혁장관회의와 두 번의 무역투자진흥회의를 열었고, 그동안 대통령은 규제를 '암(癌) 덩어리' '원수(怨讐)' '단두대'라고 부르며 점차 수위를 높여 왔다. 정부는 28일 올해 마지막 규제 개혁 과제로 8개 경제 단체의 153개 규제 개혁 건의를 받아 114건을 개선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시장이 바라는 핵심 덩어리 규제는 이번에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국회와 이익단체의 벽이 높기 때문이기도 하다. 핵심 규제 개혁이 계속 미제(未濟)로 남으면서 체감되는 규제 개혁의 효과가 떨어지고, 자칫 정부 규제 개혁에 대한 기대감마저 떨어뜨릴 수 있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 청와대와 정부가 적극적으로 정치권과 이익집단을 설득·타협·돌파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호텔, 수도권 공장, 원격진료 규제 못 풀어

정부는 이날 규제 개혁 과제를 발표하면서 고용 및 수도권 관련 규제 등 23건은 추가 논의가 필요한 과제로 분류했다. 언제까지 논의하겠다는 일정은 내놓지 않았다.

28일 서울 광화문 정부 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 혁신을 위한 규제 기요틴 민관 합동 회의’에서 추경호(맨 오른쪽) 국무조정실장이 발언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 정부는 8개 경제 단체에서 건의한 153개의 규제 가운데 114개를 개선하겠다고 했다.

경기 동부 시·군의 숙원인 일부 자연보전권역 내 대규모 공장 신·증축 허용과 경제자유구역 내 국내 기업 공장 신설 시 수도권 공장총량제 적용 제외 등의 규제는 나중에 논의키로 했다. 종합적인 국토 정책 차원에서 다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정은보 기획재정부 차관보는 "수도권 규제는 수도권과 지방 간 이해가 다르다"며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고용 관련 규제는 대부분 추가 논의키로 했다. 사회적 대화가 더 필요하며, 일부는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될 예정이라는 이유에서다. 공공기관 급식 대기업 입찰 제한, 대형마트 영업 규제를 완화해 달라는 건의도 추가 논의 과제로 분류했다. 정부 관계자는 "정부 입장에선 각 이익집단의 이해관계를 따질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며 "이 때문에 요즘엔 정부가 기업들에 '규제 개선 과제를 내 달라'고 부탁해도 '됐다'고 대답하는 '냉소주의'가 보이기도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수용'하겠다고 분류한 규제 개선 과제 중에 그동안 해결하지 못한 해묵은 이슈도 적지 않다. 민영화 프레임에 갇혀 2년 반 동안 국회에서 제대로 논의조차 되지 못하고 있는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의사 단체들의 반발에 가로막힌 의사·환자 간 원격 진료, 학교 환경정화구역 내 호텔을 지을 수 있게 하는 법안 마련 등이 대표적이다.

수용 과제 68%는 법 개정 없이 풀 수 있어

모든 규제가 국회와 이익단체의 벽에 가로막혀 있는 것은 아니다. 정부가 이번에 규제 기요틴에 올려 해소하겠다고 한 114건 중 78건(68%)은 법률 개정이 필요하지 않다. 정부 부처가 해결 의지만 있었으면 진작 풀렸을 사안이 다수라는 얘기다. 예를 들어 산업단지 내 공원 면적이 1만㎡ 미만이면 직장 어린이집을 지을 수 없다는 규제를 내년 3월부터 완화하기로 했는데, 국토부가 시행규칙만 고치면 되는 것이다.

정부의 이번 발표에는 기업 투자 유도를 위한 규제 개선안이 포함되어 있다. 내년 상반기에 대기업 지주사의 증손(曾孫)회사 설립 규제를 완화할 계획이다. 예를 들어 현행법상 SK그룹 지주회사인 ㈜SK의 손자(孫子)회사인 SK하이닉스가 자신의 자(子)회사를 두기 위해선 지금은 100% 지분을 가져야만 하는데, 비상장 벤처·중소기업에 투자할 경우 50%만 출자해도 가능하게 된다. 또 정부는 지자체 소유의 프로 스포츠 경기장 장기(長期) 임대가 가능하도록 제도 개선에 나설 방침이다. 지금은 지자체별로 하루 대관(서울 목동야구장)에서 25년 임대(광주광역시 기아챔피언스필드)까지 천차만별이다. 정부는 내년 3월까지 스포츠산업진흥법을 바꿔 25년 범위에서 프로 스포츠 경기장의 장기 임대를 허용하고, 재임대도 가능하도록 지자체와 협의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경기장의 시설 보수가 활발해지고, 다양한 수익사업이 가능해질 것으로 정부는 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