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 IT기업들의 핀테크(Fintech)시장 진출이 본격화되자 국내 금융업계가 바짝 긴장하고 있다. 국내 금융사들은 그동안 엄격한 금융업 진출 규제 덕분에 한정된 경쟁자끼리 땅 짚고 헤엄치기식 영업을 해왔다. 하지만 글로벌 핀테크 기업들이 세력을 확장하고 국내 IT업계에도 핀테크 열풍이 불면서 정부도 인터넷전문은행 도입과 핀테크 활성화 등 각종 규제 완화 작업에 착수했다. 높은 규제 장벽의 보호를 받던 금융사들이 국내외 IT업체들과 수익원을 나눠 가져야 하는 상황에 맞닥뜨린 것이다. 전문가들은 이런 핀테크 열풍이 국내 금융사를 위협하고 있지만 오히려 새롭게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평가한다.

도전받는 금융산업… "비금융회사가 금융사 수익 빨대처럼 빨아갈 것" 경고

전문가들은 최근 불어오는 핀테크 열풍이 금융사의 수익원을 위협할 수 있는 거대한 파도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최근 출입기자단과의 송년 세미나에서 “그동안 은행들이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해 많은 돈을 투자했는데, 핀테크는 은행들이 구축한 네트워크를 이용해 수익을 빨대처럼 빨아간다”면서 “은행업이 점점 위기를 맞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실제로 핀테크가 걸음마 단계라는 평가를 받는 국내에서도 뱅크월렛카카오, 카카오페이, 라인페이, 네이버페이 등 포털 사업자들이 잇따라 금융 사업자들이 독식하던 지급결제망 사업에 진출하고 있으며 결제망에 참여한 금융사와 수수료 배분 등의 문제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정부가 규제 완화를 통해 점포없이 영업하는 인터넷 전문은행 허용을 심도있게 검토중이다. 금산분리 완화 등 해결과제가 만만치 않지만 인터넷 전문은행을 설립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 인터넷이나 모바일 트래픽을 장악한 기업들이 지급결제·스마트뱅킹 등 기존 금융업권이 독식하던 시장의 강자로 등장할 수 있다.

김영환 LIG투자증권 연구원은 “핀테크 사업에서는 미국 이베이나 일본 라쿠텐, 중국 알리바바처럼 이용자 트래픽을 장악한 회사들이 가장 큰 수혜를 본다”고 말했다. 국내에서는 최대 모바일 메신저 트래픽을 기록중인 다음카카오의 뱅크월렛카카오가 간편한 송금 방식을 통해 기존 스마트뱅킹 시장에 진출한 상태다. 향후 인터넷은행·클라우드펀딩 등이 허용되면 이러한 인터넷 또는 모바일 트래픽을 장악한 IT기업들이 국내 핀테크시장을 주도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국내 핀테크산업의 육성이 지연되면 글로벌 핀테크 업체의 국내 시장 침투가 빠르게 이뤄질 수 있다. 김종현 우리금융경영연구소 연구위원은 “구글과 아마존, 알리페이 등 글로벌 핀테크 기업들이 국내 PG사나 은행들과 제휴해 간접결제 서비스를 중심으로 국내 시장을 엿보고 단계임에도 직구족과 같은 국내 고객들은 수수료가 비싼 국내 신용카드보다 페이팔 등 원클릭 결제서비스를 선호하는 추세”라며 정부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김 연구위원은 “해외 핀테크 기업의 국내 시장 직접 진출이 현실화되면 국내 송금·지급결제 시장은 물론 금융자문업 경쟁력까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침체된 금융산업, 신기술 활용해 새롭게 도약할 기회"

핀테크 열풍은 저금리 장기화로 새 수익원 발굴에 어려움을 겪어온 국내 금융사에 새 도약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김우진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위원은 “IT기업들의 지급결제사업 진출로 전자금융거래는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면서 “오랜 기간 고객을 확보해 온 은행 등 금융사들이 안정적인 결제망과 고객의 신뢰를 바탕으로 IT기업들과 제휴하면서 더 좋은 사업기회가 많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장민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조정실장도 “최근 정보통신기업(ICT)들은 기존 금융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새로운 서비스에 나서고 있다”면서 “은행을 중심으로 한 상호보완적인 금융생태계가 조성되고 서로 협력하게 될 것으로 판단한다”고 밝혔다. ICT기업들이 금융사와 직접 경쟁하기보다는 협력을 통한 혁신을 꾀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핀테크 열풍을 새로운 사업기회로 만들기 위해 금융회사들이 적극적인 태도로 시장 변화에 대응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영환 LIG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알리페이 온라인 결제한도 축소 등으로 인터넷 금융을 견제했던 중국의 전통적인 은행들은 예금자들의 이탈을 막지 못했지만 시장 변화를 읽고 선제 대응에 나선 핑안보험 등의 금융회사들은 새 사업기회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 최대 보험사인 핑안보험은 과거부터 IT기업이 자신들의 경쟁자가 될 것으로 예견해 왔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2013년에는 알리바바·텐센트 등 비금융회사들과 합작해 온라인 보험회사를 설립했다. 이 온라인 보험회사는 전자상거래·모바일 결제 등과 관련된 분야에 특화된 보험사로 성장할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 연구위원은 “전통적인 금융회사 입장에서는 기존 사업분야를 IT기업이 넘보는 상황이라는 점에서 위협을 느낄 수 있지만, 장기간 저성장하던 산업이 가속 성장하는 시기가 다가오는 것은 긍정적”이라며 “소비자들의 새로운 필요와 신기술 덕분에 가능해지는 새 사업모델을 잘 파악하면 성장 가능성이 열릴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