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회장님의 글쓰기'의 저자 강원국

초등학교 2학년 때 엄마가 돌아가셨다. 그해 어머니날을 맞아 담임선생님이 글짓기 숙제를 내줬다. 주제가 어머니 은혜였다. 이야기를 지어 썼다. 그야말로 글짓기였다. 선생님이 학교 행사에 엄마를 모셔 오랬는데 ‘엄마 없다’는 소리를 못하는 내가 방황하는 내용이었다.

어머니날, 학교 운동장에서 조회가 열렸다. 담임선생님이 나는 교실에 있으라고 했다. 교장선생님 연설이 방송으로 들리는데, 내가 쓴 ‘작문’이었다. 읽으면서 연신 울먹이셨다. 아, 처음으로 글맛을 알았다.

초등학교 3학년 때 백일장에 나갔다. 지역 신문이 주최한 꽤 큰 규모의 대회였다. ‘즐거운 우리 집’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 냈다. 덜컥 최우수작에 당선됐다. 겁이 났다. 이번에도 지어서 썼기 때문이다. 다음날 신문에도 글이 실린다고 했다. 웬걸. 아버지가 칭찬을 해주셨다. 거짓말을 문제 삼은 게 아니라 ‘창의력’으로 보신 거다. 글이 꼭 논픽션일 필요는 없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대학 졸업 후에는 기자 시험을 봤다. 하지만 떨어졌다. 대우증권에 입사해 홍보실을 자원했다. 신문을 맘껏 볼 수 있겠다는 계산에서였다. 마침 그해가 창사 20주년. 사사(社史) 제작 임무가 떨어졌다. 퇴역 언론인 작가를 보조하는 게 내 일이었다. 하지만 이 작자가 다른 회사 사사를 베끼다가 탄로났다. 결국 내가 대신 써야 했다. 괴발개발 썼다. 고급 장정에 컬러사진을 잔뜩 넣었다. 다들 잘 만들었다고 했다. 글을 본 것 같지는 않았다. 하루아침에 나는 ‘글쟁이’가 됐다.

김우중 대우 회장이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이 되면서, 나도 따라갔다. 회장비서실에서 연설문 작성을 도왔다. 그 인연으로 김대중 대통령 연설비서실에 들어갔다. 3년 후에는 노무현 대통령 정부에서도 연설비서관으로 일했다. 5년을 함께했다. 나와서는 당시 전경련 회장인 조석래 효성 회장의 연설문을 도왔다.

25년 직장 생활의 9할을 ‘권력자의 스피치 라이터’로 산 사람. 이만하면 ‘글쓰기의 달인’이라 해도 좋을까. 지금은 출판사 주간이면서 강연과 저술로 먹고 사는 강원국(52) 작가. 올 2월 ‘대통령의 글쓰기’(메디치미디어)에 이어 지난달 ‘회장님의 글쓰기’. 힘의 정점에 있는 사람들을 걸고 쓴 두 책을 보면 그리 불러도 무방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목차만 봐도 웬만한 글쓰기 요령은 다 들어가 있다. 거기에다 달필, 달변으로 유명했던 두 대통령에 관한 깨알 같은 일화들과 자신의 회장님 모시기 무용담을 잘 묶고 엮었다. 마치 글은 이래야 읽히는 법이라고 시연이라도 한 것 같다.

책이 나온 뒤로 다시 강연에 바쁜 그와 경복궁 옆 허름한 카페에서 얼굴을 마주했다. 왠지 그에게 어울리는 분위기였다. 책에서 본 정련된 문장과는 달리, 조근조근한 말에는 비문(非文)이 많았다. 그래도 귀에 쏙쏙 잘 들어왔다.

-이력이 특이하다. 작가도 아니고, 힘 있는 사람들 연설문 써주는 일로 20여년을 살았다. 정작 대학 전공은 외교학과였는데?

어릴 때 외할머니 밑에서 컸는데 너는 외교관 하라는 얘길 많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왠지 그쪽으로 끌려서 갔다. 하지만 막상 입학해서 보니 학과 동기들이 전주 시골 출신인 나와는 ‘물’이 달랐다. 그래서 따로 놀았다. 주로 고등학교 동문 친구들과 거의 4년을 같이 지냈다. 매일 낮술이었다. 그때 친구들이랑 개똥 철학 논한 게 나중에 청와대 가서 글 쓰는 데 도움이 됐다. 책은 사놓기만 하고 읽지는 않았다. 어쩌다 4학년 때 일찍 결혼을 하게 됐다. 장모님이 어딘가 적을 두는 게 좋겠다고 해서 회사를 들어갔다. 막연한 꿈은 기자였는데, 4년간 따로 공부는 안 했던 터라 일반 회사에 들어가서 준비할 생각이었다. 대우에 가서 홍보실에서 일했는데 눌러앉게 됐다.

그러다 김우중 회장이 전경련 회장이 되면서 스피치 라이터로 회장 비서실에 가서 한 3년 일했다. 그러다 대우가 문닫고 회장실 없어지면서 대우증권으로 복귀했다. 그때 마침 청와대에서 불러서 가서 3년 일했다. 노무현 정부 때 다시 5년 일했다. 그 후 청와대에서 나와서는 효성 그룹 조석래 회장이 불러서 연설 담당 상무로 갔다. 그분이 연설에 관심이 많았다. 하지만 좀 안 맞는 부분이 있어서 두 달만에 그만두고 한참을 놀았다. 그때는 내가 그 나이에 완전히 사회에서 도태가 되는 것 아닌가 걱정했다.

-청와대에 있다가 나오면 오라는 데가 많지 않나?

아니다. 정권이 바뀌니 오히려 사람들이 기피하더라. 당시만 해도 MB가 뒷조사도 했다. 검찰에서 내 전화 내역을 조사했다고 사후에 통보해줘서 알았다. 언제부터 언제까지 통화 감청했다고 하더라. 관공서는 물론 기업도 눈치를 보는 상황이니 취직이 어려웠다. 나는 중소기업이라도 아무 데나 갈 의향이 있었다. 하지만 불러주는 데가 없었다. 그 무렵 어느날 TV 뉴스에서 실업 이야기가 나왔다. 경기가 침체하면서 실업률이 높아질 거란 뉴스였는데, 내가 그때 그런 뉴스를 처음으로 관심있게 봤다. 그때가 겨울이었는데 내게도 공포처럼 다가오더라. 아, 내가 완전히 취업도 못하고 살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 몇 군데 사람 뽑는 데에 이름도 올렸는데도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가 누군가 벤처기업을 소개해줬다. 막 코스닥에 상장해서 돈이 들어와 본격적으로 사세를 키워보려는 참인데, 테크니컬 라이터(TW)가 필요하다고 했다. 자사 제품과 기술을 글로 표현하는 일이었다. 그 회사가 보유한 기술이 10가지인데 7가지밖에 안 알려져 있다면서, 직원을 다섯 명이나 붙여줬다. 3년간 그런 일도 했다.

-특이한 글쓰기 직종이다.

나도 그때 처음 알았는데, 그런 일로 밥먹고 사는 인구가 굉장히 많다. 사용설명서 브로셔 같은 데 들어가는 글쓰기다. 이걸 일반 회사 직원이 쓰겠나, 광고회사가 쓰겠나. 기술 개발자도 못 쓴다. 따로 쓸 사람이 필요하다. 회사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한둘은 있다. 그게 스피치 라이터와 비슷하다. 이런 글의 경우에 그 안에 ‘자기’(필자의 개성)는 없는 게 특징이다. 연설문의 경우에도 연설자의 생각을 잘 헤아려서 그 사람 어법으로 써주면 된다. 많이 알 필요도 없고 글을 개성있게 잘 쓸 필요도 없다. 자기 문체로 자기 생각을 쓰면 안된다. 설명서 경우에도 개발자나 기술자에게 가서 내용을 듣고 그대로만 쓰면 된다. 이 경우에는 연설자가 아니라 소비자의 눈높이를 생각해서 쓴다.

그런 게 나한테는 잘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이 있거나 하면 못 쓰는 게 그 일이다. 일종의 백지 상태에서 스폰지처럼 흡수해서 그 글의 목적에 맞춰서 써주는 일이다. 이런 경우에는 문학이나 예술이 아니다. 쓰는 사람의 목적에 맞춰서, 마음을 제대로 읽고 무엇을 원하는지 맞춰서 써주면 되는 글이다.


-두 대통령 밑에서 각각 3년과 5년, 모두 8년간 연설비서관으로 일했다. 두 대통령의 공통점과 차이점이라면?

정치 권력이건 경제 권력이건 힘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어느 정도 마키아벨리즘에 빠져있는 사람이다. 내가 대학 4년 내내 국제정치학을 통해 그런 걸 공부하다 보니, 나도 모르게 그런 관점이 생긴 것 같다.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 같은 경우는 다른 수단 없이 말과 글로써 권력을 행사해야 했다는 점에서 이전 정부와는 달랐던 것 같다. 특히 둘 다 오랜 야당 생활을 하는 동안 설득력 있는 말이 아주 중요했다. 말로써 사람을 규합하고 설득하고, 자기 편을 만들어 자신의 정책이나 이념을 실현해야 한다는 점에서 어느 누구보다 말과 글에 대한 고민이 깊었던 분들이다.

내가 맡은 업무가 대통령의 많은 부분 중에 딱 그 부분을 보좌하는 입장이었다. 두 대통령의 차이를 말하자면, 노 대통령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했고, 김 대통령은 국민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찾아서 하려고 한 스타일이었다. 김 대통령은 지방에 가서 연설할 기회가 있으면 항상 사전에 사람을 보내 민심 파악을 다 했다. 지방 기자들이나 공무원들 만나서 현안이 뭔지 물어서 그걸 연설문에 담도록 했다. 반면 노 대통령은 그런 것이 없었다. 또 어떤 자리에서 사전 준비된 말을 그대로 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현재 관심 갖고 있는 현안, 어젠더를 던지곤 했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어떤 경우에는 (그 자리의 청중이) 듣고 싶은 게 아닌 말을 하게 되고 거기서 오해가 생기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은 그런 걸 하는 사람이 지도자라고 생각했다. 새로운 어젠더를 던지고 국민들에게 제시하는 것, 생각하게 하는 것이 리더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할지 안 할지 판단은 국민이 하되, 지도자는 그런 걸 먼저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반면, 김 대통령은 절대 반 발짝만 앞서가라, 국민의 손을 놓치 마라고 했다. 그런 차이에서 모든 게 달라졌다고 본다.

또 다른 점은, 김 대통령은 역사를 굉장히 의식하고 말을 하고 글을 썼다. 그게 다 기록으로 남는다는 생각을 늘 했다. 노 대통령은 현장의 청중과 현재의 국민을 보고 말을 하고 글을 썼다. 그러다 보니 김 대통령은 반복을 굉장히 중시했다. 같은 사안에 대해서는 같은 말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기록으로 남는데 이렇게 저렇게 달리 나오면 대통령의 생각이 도대체 뭐냐 이렇게 되고 마니까, 지겹도록 같은 말을 반복했다. 그리고 업적을 강조했다. 반면에, 노 대통령은 똑같은 사안도 가급적 현장에 맞춰 다르게 전달하려 했다. 가령, 혁신도시 여러 곳에 가서 기공식을 하면, 가는 곳마다 그 의미를 어떻게든 달리 이야기하려고 했다. 어제 원주에 가서나 다음날 전주에 가서도 같은 얘기를 하면 해당 시민들이 성의없게 생각할 수 있다고 여겼다. 어떻게든 현장의 사람들을 배려한 말을 하려고 했다. 그게 혼선을 빚기도 했다. 도대체 대통령의 생각은 뭔가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었다. 그런 점에 분명이 차이가 있었다.

또 하나. 김 대통령에 대해서는 사담(私談)이 없다. 시대적으로 이야깃거리가 많은 분임에도 불구하고, 사적인 은밀한 이야기를 접해본 사람이 없다. 반대로 노 대통령은 주변에 사람들이 서슴없이 접근할 수 있었다. 나 같은 사람도 편하게 가서 볼 수 있었고, 나보다 낮은 행정관도 언제든지 만날 수 있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가서 만났다. 그 결과 많은 사람들이 글로도 써서 남겼다. 지금 기록으로 남은 것은 노 대통령쪽이 김 대통령보다 훨씬 풍부하다.

김 대통령 때만 해도 시대가 여전히 권위주의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주변 사람들이 에워싸니까 접근이 어려웠다. 지금 보면, 똑같이 두 분의 5주기가 지났는데 노 대통령에 관한 책은 올해만 마흔몇 권이 나왔다고 하는데, 김 대통령 책은 없다. 가까이서 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내 생각에는 앞으로 권력자들은 이야기를 남겨야 한다. 그러려면 누군가를 가까이에 두고 보게 해야 한다. 그러면 쓰게 돼 있다. 과거 예수나 공자 할 것 없이 제자나 곁의 누군가가 글을 쓰지 않았나. 그건 노 대통령이 잘한 것 같다. 5년 내내 사람들에게 다 보고 기록을 하라고 했다. 사적으로 밥 먹으면서 한 이야기까지 기록하라고 했다.

그렇게 한 이유가 세 가지 있었다. 첫째, 다음 정부에서 반면교사로 삼게 했다. 또 하나, 그런 기록이 본인에게 필요했다. 퇴임 후에 책을 쓰고 싶어했다. 자기 생각을 체계적으로 써서 궁극적으로는 사상가가 되고 싶어했다.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책을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기록이 필요했다. 본인이 말을 하면서 생각이 발전한 분이었다. 누군가 듣고 기록으로 남겨야지, 본인이 말하면서 메모까지 할 수는 없으니까. 그분은 진짜 말하면서 새로운 생각들을 했다. 끝으로 결정적인 이유는, 자기 자신을 그런 식으로 통제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기록으로 남는다고 생각하면 내가 누굴 만나서 얘기하든 경계를 하지 않겠나, 허튼 말을 하지 않고 어떤 나쁜 짓을 하지 않을 것 아닌가 했다.

얘기를 하다 보니 노 대통령만 부각되는 것 같은데, 그만큼 내가 김 대통령은 잘 몰라서 그렇다. 따로 만나서 한번 얘기해 본 적도 없고, 잘 모르니까 말을 잘 못하겠다. 그러다 보니 내 책에서도 노 대통령 얘기가 많고 시선도 따뜻한 편이다.

-실제 업무 기간도 김대중 정부 때는 3년이었고, 참여정부 때는 시작부터 끝까지 일했다.

그렇다. 노 대통령 때는 연설비서관을 했고, 김 대통령 때는 고도원 연설비서관 밑에서 행정관 일을 했다.

-청와대 연설비서관 직제는 어떻게 돼있나?

김 대통령 때는 연설비서관이 공보수석 밑에 있었다. 그 전에도 쭉 그랬다. 대통령 밑에 비서실장 밑에 공보수석 밑에 연설비서관 밑에 연설행정관이었다. 나를 포함해 연설행정관이 4명이었다. 분야별로 정무, 경제, 외교안보, 사회예산 담당이 있었다. 공보수석 밑에 있을 때는 언론 관련 글도 다 썼다. 사설이나 칼럼에 대한 반론문도. 그리고 대통령 회견할 때 말씀 자료나 답변 자료도. 노 대통령 때 와서 달라진 것은 내가 연설비서관이 되면서 대통령이 직속으로 올라오라고 했다. 그때부터는 직제상으로 위에 비서실장과 공보수석이 없어졌다. 근무지도 청와대 본관으로 갔다. 그전에는 비서동에 있다가. 본관으로 간 게 우리 때가 처음이었다. 본관 2층 대통령 집무실 옆방이 국무회의장인데 그 옆방이었다. 본관에 있는 비서관은 연설비서관과 1층의 의전비서관뿐이었다. 그 다음 비서관급으로 부속실장이 대통령 집무실 방에 붙어있고. 그 세 사람 말고는 전부 비서동에 있었다. 비서동에는 40명 가까운 비서관들이 일한다. 다 비서실장과 수석 산하 직원들이다. 대통령이 회장이고 비서실장이 사장이라면 수석비서관이 본부장이고, 그 밑에 비서관들이 4-5명씩 붙어있는 식이다. 경제수석 밑에 금융 비서관, 산업 비서관이 있는 식이다. 이들이 부서장이고 그 밑에 부서원으로 행정관이 있다.

-그전 역대 대통령들 스타일은 어떤가?

김영삼 대통령은 감이랄까, 판을 읽는 능력, 그걸 한줄로 요약하는 능력이 뛰어났다. 그러다 보니 연설도 간결한 편이었다. 노태우 대통령은 연설 완성도 면에서 제일 좋았다. 완벽하게 연설비서관에게 맡긴 모양이다. 당시 이수정 공보수석이나 필사들이 정말 자기가 가진 글재주를 가지고 연설의 100%를 다 썼던 것 같다. 당시엔 대언론 업무는 정무수석이 했고 공보수석은 글만 썼다. 들어보니, 그 밑의 연설비서관은 자료를 챙겨주고, 공보수석이 원고지에 글을 막 쓰다가 첨삭하면 그 부분을 가위로 오려 붙이는 일을 했다. 김대중 정부 때 박지원 공보수석이 오면서 바뀌었다. 박 수석이 공보 일을 하면서 연설은 연설비서관이 쓰게 됐다.

-최고 연설을 꼽는다면?

노무현 대통령이 한일관계와 관련해서 국민에게 드리는 글을 발표한 적이 있다. 특별한 계기도 아니었는데, 고이즈미 일본 총리 이후에 계속 역사를 왜곡하고 독도 영유권을 주장한 데 대해 본인이 직접 쓴 글이었다. "독도는 우리 땅입니다"로 시작하는 글인데, 진짜 명문이라고 생각한다. 대통령이 주면서 검토한 후에 춘추관에 갖다주라고 했는데 문서를 열어보고 감탄했다. 이 정도 쓰니까, 우리가 쓴 연설문 갖고 계속 그렇게 몰아붙였구나 싶었다.

-노 대통령은 설화(舌禍)가 많았다.

아까 얘기한 대로, 현장의 청중을 중시하는 그분의 스타일이 그런 식으로 작용한 측면이 하나 있고, 다른 하나는 대통령 본인 생각이 대통령의 언어로 연설을 하면 품위있고 매끄러워 좋긴 한데 그렇게 하면 전달이 잘 안되고 뇌리에 박히지 않는다는 생각이 있었다.

-너무 의례적인 것은 싫어한 결과였다는 얘긴가?

그렇다. 그래서 노 대통령은 연설을 하나 하면서도 무슨 한 줄을 남길까 어떤 단어 하나를 기억에 남도록 할까를 고민했다. 그러다 보니 좀더 자극적인 단어나 표현을 선택하게 됐다. 연설 준비는 누구보다 열심히 하면서도 현장 분위기가 다르면 그걸 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설화에도 많이 올랐다. 어떤 설화는 의도적인 것도 있었다. 그렇게라도 뜻을 전달하기 위해서였다.

-책에서도 언급했지만, 노 대통령은 자살하기 전 유서에서, "책을 읽을 수도 없고 글을 쓸 수도 없다"고 했다. 왜 그랬다고 생각하나?

기본적으로 나는 그 글에서 말한 게 죽음을 택한 이유라고 본다. 본인이 퇴임 후에 하려고 했던 유일한 일이 책을 쓰는 것이었는데 그게 어렵게 됐다고 본 거다.

-자신의 입장을 글이나 책으로 써서 해명할 수도 있지 않았나?

도덕적 신뢰가 무너졌다고 생각한 것 같다.

-글의 기반 자체가 무너졌다고 생각했다는 얘긴가?

그렇다. 그 당시로서는 자신이 무슨 글을 쓰고 무슨 책을 쓴 들 과연 누가 관심있게 보고 읽겠는가 싶은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항상 본인이 그런 말을 했다. “내가 가진 유일한 것은 도덕적 신뢰다. 그것 말고 내가 뭐가 있나”라고. 그런데 그때 그게 훼손된 부분이 있지 않았나. (다시 검찰 수사가 진행됐던 수뢰 혐의의) 사실 여부를 떠나서 어찌 됐든. 그 부분을 깊이 생각한 것 같다.

-지금 박 대통령은 불통이란 소리를 많이 듣는다. 연설 스타일은 어떤가? 평가에 앞서, 객관적으로 이전 대통령과 다른 게 보이나?

모든 걸 떠나서 따뜻하게 느껴지나? 어디 가서 강연을 갔더니 박 대통령 연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더라. 나는 안 들어서 모른다고 했다. 광복절 축사 같은 것 나오면 기자들도 전화로 묻곤 하는데, 안 들어서 모른다고 한다. 회의 때도 써온 걸 읽는다고 하던데, 준비해온 걸 그냥 좍 읽고 말면 그건 토론을 하겠다는 생각이 아니지 않나. 회의나 토론의 목적에는 배치되는 거다. 하지만 내용을 명확히 전달하기 위한 거라면 그게 꼭 문제된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이렇게 강연에서 얘기했더니, 어느날 그 강연을 했던 도서관에서 연락이 왔다. 어느 분이 나를 '대통령 무슨 죄'로 뭘 하겠다고 하니, 빨리 사과를 하라고, 안 그러면 이런 사람 초청해 강연 시킨 기관장도 문제 삼겠다고 했다고. 내가 뭘 잘못했다고 그러느냐고 했더니, 대통령이 TV에 나올 때 채널 돌렸다고 한 게 대통령 모독죄라고 하더라. 그래서 내가 방송 채널 돌린 것까지 죄송하다고 사과해야 하냐고 했더니, 이게 복잡하니 전화만 해달라고 사정을 했다. 나도 그분 입장에서 가급적 무마해 드리고 싶은데, 정말 할 말이 없어 그렇게 넘어간 적이 있다. 그 뒤로는 누가 그런 질문을 해도 답을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이 당시 보고 들은 걸 나와서 글로 쓰는 데 제한은 없나?

그런 것은 딱히 들은 게 없다.

-보안 차원에서 어떤 제한이 있을 줄 알았는데.

있다는 얘긴 못 들었다. 실제로는 있는지도 모르겠다. 사실 우리가 그런 부분이 취약하다. 참여정부가 임기 끝난 후 이지원이 청와대 기록을 복사해서 나간 것도 전혀 문제가 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왜냐면 전직 대통령은 100% 자료열람권이 있다. 그래야 자신이 그것을 토대로 회고록 같은 것도 남길 수 있으니까.

-그래도 절차가 있지 않나?

봉화에 내려가서 자료 열람 때문에 매번 서울에 올라올 수는 없고, 어차피 열람권은 갖고 있다는 생각에서 복사를 했을 것이다.

-외국의 경우 공직에 있었던 사람이 나와서 책 쓰는 게 일이다. 그게 돈도 되지만, 드문 경험을 공유하고 기록으로 남긴다는 의미도 있다. 그런 면에서 우리도 퇴임한 공직자들의 그런 저술이 많았으면 하는 바람도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공개에 어떤 제한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떤 제한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모른다. 내가 쓴 것은 엄청난 비밀도 아니고, 업무 상 그렇게 숨기고 털어놓고 할 만한 고급 기밀을 아는 것도 아니다. 대개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외부에 말하기 위한 내용들이지, 나랑 은밀하게 상의하거나 한 게 아니니까.

-청와대 있다가 나와서 금단 현상 같은 것은 없었나?

그 생각을 청와대 떠나기 한두 달 전부터 했다. 내가 여기에 다시는 못 오겠구나, 그런 생각을 하니 애틋하고 그렇더라. 또 청와대에 있다가 나가면 갑자기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거나, 시선이 완전히 달라지는 것은 아닐까 걱정도 됐다. 하지만 막상 나오니까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것도 한순간에 잊게 되더라. 정말로. 그래서 실제로는 전혀 그런 것을 못 느꼈다. 오히려 곧바로 효성에서 일하면서 거기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청와대에서 일하긴 했지만 밖으로는 드러나지 않고 막후에서 일을 해서 그런가?

그렇지. 어디 가서 위세 부리거나, 누굴 만나서 권력을 행사하는 것도 아니고, 매일 하는 일이 글 쓰고 대통령한테 혼나는 거였으니까. 행사 당일까지 고치고 혼나는 과정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매일 기죽어 사는데 금단 현상이랄 게 있나. 오히려 끝나고는 ‘만세, 해방이다’ 싶은 거지. 그래도 그런 걱정은 좀 했다. 동창회 같은 데서 알게 모르게 동창들이 대우해 주는 게 있지 않나. 그런 데서 시선이 바뀌는 것 아닌가, 그렇더라도 내가 감내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소급해서 묻자면 청와대에 처음 들어갈 때는 어떤 느낌이었나?

처음 들어갈 때는 당연히 그런 게 있었다. 책에도 썼지만, 청와대가 어딘지 몰라 택시를 탔는데 “청와대 가자”는 말이 입에서 안 나왔다. 그게 벌써 내 마음 속에 ‘내가 드디어 권부 중심에 가는구나’ 이런 기대와 설레임 같은 게 있었던 거다. 하지만 막상 들어간 후에는 그 안에 파묻혀 살면서 그런 느낌은 잊게 된다. 다른 사람이 자기를 그렇게 본다는 것도 1년이 지나니까 의식을 않게 되더라.

사람들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 청와대는 무슨 대단한 의사결정구조가 있고 체계적으로 업무가 처리되는 줄로 아는데, 어림없는 소리다. 오히려 일반 회사가 더 체계적이다. 5년에 한번씩 정권이 바뀌고 하니, 운영 시스템도 연결이 안되고, 업무 노하우도 축적이 안 된다. 새판에서 계속 다시 시작하는데, 집권 1년은 해매지, 3년 하다가 마지막 1년은 대충 흐지부지하게 된다. 3년 정도 일을 하다가 나가는데, 말이 청와대지 뻥뻥 뚫리는 게 당연하다.

-그런 시행착오가 반복되는 걸 알면 뭔가 연속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를 마련해두지 않나?

대표적인 예가 있다. 70년대 박 대통령 때 지은 비서동 건물이 있다. 사실 재건축을 해야 한다. 개판이다. 그런데도 아무도 못한다. 그걸 시작하면 자기 임기 동안 그거 하다가 끝난다. 비서들을 청와대 밖으로 내보낼 건가? 못한다. 그것과 똑같다. 길게 볼 수가 없다. 대통령이 자기 임기 동안 안되더라도 5년, 10년 후 내다보면서 뭘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렇게 안 되는 구조다.

-청와대 인력은 정권 교체 때마다 어느 정도가 바뀌나?

98% 정도가 바뀐다. 왜 그러냐면 청와대 들어올 사람이 자기 도와준 사람들 챙겨야 하니까. 그런 사람들이 청와대 정원의 몇 십배가 밖에서 대기하고 있다. 그 사람들한테 어떻게든 혜택을 줘야 하니까.

-기능적인 연속성 차원에서 시스템의 골간에 해당되는 사람은 유지가 돼야 하지 않나?

집권 1년차까지 그대로 남는 인력은 청와대 인력 전체의 5%다. 정말 유지보수에만 필요한 정도의 인력이다. 최소한의 연계성을 갖기 위해서. 하지만 그마저도 마지막까지 남는 인력은 0.몇%일 거다. 왜냐 하면 그만큼 들어올 사람들 압력이 워낙 세니까. 어떻게든 다 솎아낸다.

-유지 인력과 교체 인력이 최소한 2대 8이나 3대 7은 되는 줄 알았다.

유지 기능을 하는 게 직업 공무원들이다. 가령 의전비서관실은 외교부에서 나오고 경제비서관실은 경제부처에서 나오는 식으로 각 부처에서 한두 명씩 파견 나온다. 그 사람들은 어느 정도 업무 연계성을 갖는데 문제는 이들은 별 발언권이 기한이 있어서 2년 이상 안 한다.

-결국 상주 직원은 없는 셈이네.

없다. 총무비서관실에 건물 유지 관리 한두 명이 상근으로 계속 근무하는 정도다.

-미국의 정치 드라마 '웨스트윙'을 보면 연설 참모들이 굉장히 멋있게 나온다. 역사를 바꾸는 주역이다.

실제로 미국은 그런 역할을 하지. 대통령을 당선시키는 과정부터 핵심적인 역할을 맡아서 한다. 슬로건도 만들고, 그 사람들이 백악관에 함께 들어가서 다 한다.

-청와대는 다른가?

나는 그럴 역량이 안되고. 미국에서는 참모진이 대통령을 리드해가는 역할이지만, 우리는 그야말로 대통령을 따르는 역할이었다. 특히 김대중, 노무현, 두 대통령은 누가 리드를 할 수가 없다. 이명박 대통령 때는 류우익 수석 같은 분이 그런 역할을 했겠지만.

-뉴욕타임스를 보면 대통령이 국정 연설을 하면 전문을 올리고 거기에 주석을 달기도 한다. 거기에 비하면 우리 사회는 연설에 대한 주목도가 낮다.

다들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도 별 관심을 안 갖는다. 심지어 기자들도 그렇다. 그만큼 우리나라는 과거부터 대통령 말의 값어치를 높게 보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말이 요식행위였다. 과거에는 대통령의 자질 중 하나가 ‘말로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지도자는 말이 많으면 안되는 줄 알았다. 김영삼 대통령 때까지도 쭉 그랬다. 그런 상황에서 연설이 중요했겠나. 그때는 대통령에게 다른 권력의 수단도 많았다. 오히려 두려움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생각했다.

-청와대에서 어떤 사건에 대한 발표문을 작성해야 한다고 했을 때, 작업 과정은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나?

해당 비서실에서 사실 관계만 보내 온다. 그 사실 관계를 갖고 할 수밖에 없다. 청와대가 대처해야 할 일은 뉴스에 다 나오고 난 후에 하는 게 아니다. 세월호의 경우에는 한참 뒤였지만. 그러니 관련 정보를 검색을 한다고 해서 별 도움은 안된다. 사실 관계를 토대로, 평소 대통령이 유사한 계기에 했던 말의 톤 같은 게 중요하다. 보통은 대통령이 한두 마디를 준다. 사태를 보는 입장 같은 것이다. 그걸 가지고 쓴다. 이것저것 많이 찾다 보면 정작 중요한 것은 거기에 녹아서 드러나질 않게 된다. 이것저것 뒤져보기보다는 대통령의 과거 언행에 집중한다. 평소 대통령과 계속 접해오는 과정에서 얻은 느낌을 유추한다. 그런 맥락을 아는 게 중요하다. 그걸 알면 내가 대통령에게 완전히 빙의가 돼서 쓴다.

-써놓고 뒀다가 한참 뒤에 다시 고치고 한다고 썼던데.

100% 그렇게 한다. 쓰고 난 자리에서는 고칠 게 하나도 안 보인다. 산책이라도 하고 와서 다시 보면 내가 왜 이렇게 썼지 싶은 게 보인다. 그래서 나는 계속 간격을 두면서 고치고 딴 일 하고 다시 보고 고치곤 했다. 그게 굉장히 중요하다.

(이쯤에서 그의 책에 나오는 청와대 일화를 소개한다)

“청와대 생활 8년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과민성대장증후군까지 생겼다. 2002년 국장 진급 임명장 받는 날이었다. 과천에서 경복궁까지 지하철로 출퇴근하던 나는 그날도 넉넉하게 집을 나섰다. 하지만 긴장 탓인지 배에서 신호가 왔다. 급한 나머지 신용산역에서 내렸다. 화장실은 만원이었다. 줄 서서 기다렸다. 도저히 안되겠다 싶어 칸칸마다 두드리며 호소했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물 내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시간이 없었다. 급한 대로 바지를 내리고 소변기에 앉았다. 사람들도 혼비백산했다. 들어왔다가 나가는 사람도 있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남자 소변기가 이렇게도 쓰일 수 있다는 것을.

2007년 2차 남북정상회담 때도 걱정이 태산 같았다. 육로로 평양까지 동행해야 하는데, 또다시 화장실이 문제였다. 생각만 해도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출발 하루 전 관장약을 먹었다. 그러고는 먹지 않았다. 꼬박 서른 시간 가까이 지나서야 평양에서 식사를 했다. 나는 지금도 과천에서 청와대 가는 길에 어떤 건물의 화장실 문이 열려 있고, 어느 지하철 역 화장실이 깨끗한지 모두 꿰고 있다.”

-책 어딘가에서 '오늘날의 힘은 말과 글의 종합판'이라고 했다. 펜이 칼보다 강하다는 말을 믿나?

칼이 없어진 시대다. 모든 일에서, 특히 일반 회사에서도 이제는 말과 글이 중요하다. 말과 글 이전에 생각이 있는데, 그 생각이 표출되는 것이 결국 말과 글이다. 말과 글로 모든 업무가 이뤄진다. 지시든 보고든, 회사 일이라는 것 자체가 말과 글이다. 요즘 소통의 중요성을 이야기하는데, 그 도구가 말과 글이다. 나는 소통을 통한 회사의 유토피아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왜 유토피아에 대한 꿈 같은 게 있냐면, 정말 나는 스테레스에 약하다. 신입사원 때부터 그랬다. 그런 스트레스에서 벗어나는 길이 없을까 고민했다. 그게 결국 말과 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현실을 보면 괴리감이 너무 크다. 회장이 생각을 제대로 전달하지 못하면 조직에 재앙이 된다. 거기서부터 소외가 생기고 벽이 생긴다. 회사 가기가 싫어지고 사내 공기도 답답하고, 모든 문제가 거기서 비롯된다. 그걸 풀어야 하는데. 내가 청와대에서 연설비서관 할 때 그걸 한번 구현해봤다. 그게 나는 일반 회사 조직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중요한 게 최고경영자의 의지이고 그 사람의 성향에 달려있다.

-말과 글이 힘이라고 했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권력이나 재력을 우선한다. 글은 여전히 그 밑에서 봉사하는 것 같다.

내 말은 권력을 잡기 위한 과정에서도 말과 글이 필요하고, 권력을 잡고 난 후에는 더더구나 권력 행사의 수단으로 지금은 말과 글만 한 게 없다는 뜻이다. 오늘날 상황에서는 설득력이 유일한 힘인데 그게 말과 글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이번에 대한항공의 ‘땅콩 회항’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렇게 힘들게 재력을 쌓고 권력의 정점에 섰는데 자기 말이 씨알도 안 먹히면 어떻겠나. 특히 요즘 젊은 사람들은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안된다. 우리 때와 다르다. 예전엔 지시하면 복종하고, 심지어 조직을 위해 자기 희생도 하고 했지만, 요즘은 진짜 자기 마음이 동해야 움직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결국 말과 글을 갖고 씨름할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는 요즘 정치인보다 혁신적인 기업가들의 연설이 더 화제가 되곤 한다. 스티브 잡스의 스탠퍼드대 졸업 축사가 대표적이다.

과연 우리 기업인 중에는 자기 연설을 자기가 쓰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내가 보기엔 없는 것 같다. 다들 바쁘기도 하겠지만, 우리 기업인은 그만큼 말과 글의 중요성을 무겁게 생각하지 않는다. 미국에서는 어릴 때부터 누가 써줘서 읽는 것은 자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할 거다. 그래서 자기 글은 자기가 써야 한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 차이가 크다. 우리는 회장이 무슨 연설 하면 기획실에서 써주는 줄 안다. 그게 마음에 와닿겠나. 그런 건 영혼이 없는 소리이고, 시간 낭비다. 월례 조회니 사보에 내고 하는 그런 것은 그만해야 한다. 한마디를 해도 자기 말을 해야 한다. 우리 기업인들도 아무리 바빠도 그런 데 시간을 할애하고 고민해야 한다. 젊은 기업인들 중에는 그런 사람이 많이 나올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에 대한항공 사건 보면서, 만일 자신이 회장의 사과문을 작성해야 했다면 어떻게 했겠나?

첫 일성이 아주 중요하다. 문제는 기업 회장과 대통령이 다르다는 점이 있다. 정치인은 표가 중요하니까 늘 듣는 사람을 의식한다. 평생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사람이다. 반응을 생각한다. 하지만 회장은 그런 것에 둔감하다. 자기가 설사 입장이 떳떳하고 사실관계에 잘못이 없어도 국민 정서를 헤아릴 줄 알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정서적으로 동떨어진 얘길 하게 된다. 무난한 게 뭐냐면, 상대가 기대하는 것 이상으로 잘못에 대해 사과하는 것이다. 그런데 대부분은 잘못을 인정하는 데 소극적이다. 모면하고 봉합하려 하고 거기서 빠져나가려고만 한다. 대한항공이 그랬다. 진짜 잘못하는 거다. 대한항공의 참모들이 한 것을 보면 자기 총수를 무덤으로 넣는 격이었다.

-그런 위기 상황을 실제로 겪기도 했을 텐데.

예전에 KG그룹 사장이 한 말이 있다. 건설업의 경우 인명 사고가 나는데, 그럴 때는 경영자가 피해자 가족한테 따귀를 맞는 게 제일 좋은 위기 관리법이라고 했다. 그만큼 정서적인 대응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걸 머리로 굴리고, 굴려도 자기 총수만 생각하면 자기 무덤을 파게 된다.

-"정직이 최선의 정책"이라는 교훈으로는 부족하다는 얘긴가?

그렇다. 정직하기만 해서는 안된다. 자기는 아무리 정직하다고 생각해도 상대로부터 반응을 못 얻어내면 실패한 거다. 그럴 거면 말을 왜 하나. 가령, 자기 소개서를 정직하게 쓰면 100% 떨어진다. 소개서의 목적은 자기를 드러내는 게 아니라, 합격 아닌가. 그렇다면 채용하는 사람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읽고, 거기에 부응할 줄 알아야 한다. 마찬가지로 국민에게든 직원들에게든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할 때는 그런 관점에서 봐야 하는 거다.

-그 말은 아슬아슬한 조언처럼 들린다. 자칫하면 화를 더 키울 수 있다는 생각에서 나온 금언이 '정직하라'는 말인 것 같은데. 상대에게 맞추다 보면 나중에 더 큰 화를 부를 수도 있지 않나?

그 말은 팩트를 확인하고, 팩트에 기반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팩트만 발표해서 진정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부글부글 끓어오른 민심 앞에서 팩트의 전달만으로 안된다고 생각하면, 팩트 이상으로 더 나가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상황을 잠재우는 게 목적이라면 현명한 수사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청와대에서도 그런 일을 많이 했을 것 같다.

예를 들면, 김대중 대통령 5년차 때 아들 홍일씨 벤처비리 사건이 났다. 그때 우리가 고민한 것은 대통령이 사과문에서 어떤 단어를 써야 하는 것이었다. 가장 간단한 ‘유감’부터 시작해서 ‘죄송’ ‘참담’까지 숱한 단어를 늘어놓고 고민했다. 그럴 때는 유사어도 다 검색해 본다. 너무 낮은 수위로 하면 오히려 불을 지르는 게 되고, 그렇다고 대통령을 생각하면 너무 과도해서도 안되고, 국민 정서도 봐야 하고, 그 접점을 찾아서 무마하려고 노력했다. 그렇다고 해서 무슨 고도의 생각이 있었던 건 아니고.

-'회장님의 글쓰기'에는 조직내 처세술 이야기도 많다. 마치, 사내 마키아벨리즘이랄까 손자병법을 얘기한 것도 같다.

다 내가 직접 보고 겪은 것이다. 사례들이 너무 현실적이어서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특히 회장은 신과 같은 존재다. 그렇지만 정작 본인은 한없이 소탈하게 보이고 싶어한다. 그 사이에서 아랫사람들은 계속 천당과 지옥을 왔다갔다 한다. 그 판단을 잘못해서 한방에 훅 가기도 한다. 진짜 회사 내 처세는 어렵다. 그래서 가급적 자신이 없으면 회장 가까이에 안 가는 게 좋다. 내가 그런 일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회장에게 진언이랍시고 했다가 한방에 면직 신세가 된 적도 있다. 회장의 비서실장 비슷한 자리에 있을 때였는데, 술먹고 그 자리에서 회장에게 진언했다가 그 다음날 면직됐다.

그런 조직 내 생리를 아무리 말단 사원이라도 제대로 알 필요가 있다. 궁극적으로는 모든 사원이 회장의 참모니까. 본부장이나 부장이라고 해서 자기가 보스이고 자기 휘하에 직원이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24시간 회장을 바라보면서 참모로서 자기 역할을 하려고 할 때 그 일도 잘할 수 있다. 회장이 무슨 생각을 하고 어떻게 결정을 할까 끊임없이 그런 생각을 해야 한다. 자기가 보스라고 생각하는 순간 잘못된 길로 갈 수 있다.

가장 좋은 보고서는 윗사람의 생각을 잘 헤아려서 옮겨놓는 것이다. 회장도 사실은 자기 생각에 대한 확신이 없을 수 있다. 거기에 근거를 더해 “당신 생각이 옳습니다” 그렇게 보고하면 “그래 맞아” 하면서 오케이가 난다. 나는 윗사람 생각은 바꿀 수 없다고 생각한다. 내가 해 보니까 안 바뀌더라. 그 상사의 생각을 얼마나 잘 다듬고, 논리적으로 설득력있게 하고, 각종 사례와 살을 붙여서 만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회장의 생각을 바꾸려는 시도는 다 실패한다. 오히려 회장한테 아픈 상처로만 남는다. 이게 내 경험의 결론이다.

-너무 조직 순응적인 것 아닌가. 생존에만 급급한.

단순히 내가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다. 바뀔 가능성이 없는 회장에게 이견을 들이대는 것은 결국 회장과의 불협화음을 낳고, 회장의 사기만 떨어뜨리는 결과만 초래한다. 그 사기라는 게 대단히 중요하다. 특히 돈 있는 사람들에게는. 정말 겉으로는 허심탄회하게 “너는 야당 역할만 잘하면 돼”라고 하지만, 그 말 믿고 좔좔 이야기했다가는 그 사람에게 상처만 준다. 그런 사람들은 상처를 쉽게 받는다. 요만한 일을 굉장히 과장되게 받아들인다. 그러니 그런 데 에너지 낭비할 게 아니라, 회장의 생각을 어떻게 하면 잘 다듬어줄 건지 고민하는 게 낫다. 그게 훨씬 더 생산적이고 잘 되는 길이다.

-연설문의 달인이었지만, 이제 다른 글쓰기에 대한 욕심은 없나? 문학이나 논픽션이나 저널리즘 쪽으로.

지금도 기자 일은 선망의 대상이다. 순수문학은 재능이 없는 것 같다. 그건 감히 도전할 생각을 못한다. 혹시라도 내가 강연할 때 글쓰기를 너무 기능적인 기술 정도로 얘기하는 것을 문인이 듣고 따귀를 때릴까 걱정이다.

-아무리 기능적인 글쓰기라고 해도 오래 하면 어떤 경지에 이를 것도 같은데.

그래도 문학은 전혀 다른 장르다. 그쪽은 예술에 가깝다. 내가 말하는 글쓰기는 기술이고. 그런 점에서 기자가 쓰는 글은 이쪽에 가깝다. 팩트에 관계된 것이니까. 무슨 고도의 상상력과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일은 아니니까.

-책 속에 글쓰기 실무에 도움이 되는 팁이 산재해 있다. 내가 보기에 거의 다 망라한 것 같은데. 본인은 글쓸 때 구체적으로 어떤 과정을 거치나?

시중에 글쓰기 책들이 많이 나와있는데, 실제로 회사에서 실무를 겪어본 적은 없으면서 기획서나 보고서 작성 요령에 대해 쓴 게 많다. 나는 회사에서 그런 글만 써서 월급을 받았던 사람으로 실무 요령을 얘기했다.

나는 글을 쓸 때 제일 중요한 것으로, 첫 줄부터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생각 나는 걸 써내려가라고 한다. 두번째는 고치는 게 중요하다. 생각나는 걸 먼저 쓰고, 그걸 고치는 작업이 글쓰기의 기본이다. 또 하나 더 있다면, 글은 자기 생각 10%에 나머지 90%는 남의 생각을 갖고 쓰는 거라고 말하고 싶다. 자료를 잘 찾고 요약을 잘하는 사람이 글을 잘 쓴다. 글쓰기의 승부처는 거기에 있다. 하지만 요약의 기술이라는 게 쉽지 않다. 자기 나름의 프레임이랄까, 자기 기준이 있어야 한다. 그게 갖춰지면 글을 잘 쓸 수 있다.

말하기도 똑같다. 자기 소개를 할 때, 먼저 자기 이름 이야기하고, 어떻게 오게 됐는지 얘기하고, 잘해 봅시다, 이 세 가지를 이야기하지 않나. 이걸 알고 있으면 갑자기 하더라도 당황하지 않는다. 독후감 경우에도 지은이와 줄거리 소개, 자신의 느낌, 이런 기본 틀을 아니까 누구나 쓴다. 일기도 자기가 그날 한 일과 느낌을 쓰면 되는 줄 아니까,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자료를 요약하는 나름의 기준이 머리 속에 있으면, 요즘은 자료 찾는 게 너무나 쉬우니까 잘 찾아서 요약을 잘 하면, 누구나 잘 쓸 수 있다.

그 전 단계에서 일단 생각하는 걸 쓰는 게 중요하고, 거기에 자료를 덧붙이면서 계속 고쳐나가는 거다. 고치는 과정에서 그 자료가 자기 걸로 거듭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남의 생각을 그냥 붙여놓은 게 되고 만다. 대통령 연설도 처음 초안을 써서 올리면 그때부터 계속 고친다. 그러다 보면 초안은 형해화된다.

처음에 자기 생각이 풍성하면 할수록 좋다. 그건 경험에서 비롯되기도 하고, 성찰에서 나오기도 한다. 자기 생각을 얼마만큼 깊이 있게 쓸 수 있느냐는 것은 결국 평소 생각을 많이 하고, 독서하고, 학습하고, 토론하고, 관찰하고, 메모하는 수밖에 없다. 글쓰기도 기술적인 것 같지만, 따지고 들어가면 자기 생각을 만드는 과정이어서 어렵고, 더 나가서는 결국 자기 삶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한다. 삶이 개판인데 좋은 글이 나올 수는 없다. 그래서 결국 잘 살아야 좋은 글을 쓸 수 있다.

간디가 자기 묘비석에 “나의 메시지를 알려면 내가 살아온 삶을 봐라. 내 삶이 메시지다”라고 했는데, 그 정도가 돼야 글이 의미가 있는 거다. 글을 재주로 기교로만 쓰는 것은 한계도 있고, 감동도 못 준다.

-처음엔 스피치라이터의 일이 기능적이어서 순문학과는 다르다고 했지만, 결국 지금 얘기는 양자가 맞닿는다는 것 같다. 작가 김연수가 최근에 쓴 '소설가의 일'을 보면, 글 쓰는 과정에서 자신이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난다고 했다.

그렇다. 하지만 보통 회사에서 글쓰기를 고민하는 실무 수준에서는 그런 정도까지 갈 필요는 없이 기술적으로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먼 옛날 구전(口傳)에서 문자 시대로, 요즘은 다시 말이 부활한 것 같다. 강연이나 동영상이 인기다.

당연히 그렇게 될 것 같다. 나는 글도 말처럼 쓰는 것이 제일 좋다고 본다. 글의 장점도 많이 있지만, 글을 쓰는 과정에서 도식화되고 형식화되는 측면이 많다. 가령 보고서의 경우에도 써서 갖고 오면 오히려 이해가 안된다. 그러면 직원을 다시 불러서 말로 해보라고 한다. 그러면 이해가 더 잘 된다. 글도 그렇게 써야 한다. 뭔가 욕심을 내서 자기가 아는 것을 멋있게 쓰고 싶은 생각에서 여러가지를 개입시키다 보면 왜곡이 된다. 이해가 더 어려워진다. 연설문 같은 경우도 사실은 말을 위한 글이다. 어떤 경우에는 그냥 말을 해보고 그걸 녹음해서 받아 써보기도 한다. 예를 들면, 어떤 사람에게 자기 생각을 글로 써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생각을 옆 사람에게 말로 얘기하고 들은 대로 써보라고 한다. 두 글을 비교해 보면 후자가 훨씬 생생하다. 글보다 말로 전달할 때 훨씬 쉽고 명료하게 한 거다. 다만 말이라는게 다듬어지지 않고 여러가지 논리적으로도 안 맞는 여백들이 많다. 그런 걸 고치는 과정에서 메꿔나가면서 글의 완성도를 높여야 한다.

-'인생의 책' 한 권을 꼽는다면?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다. 유토피아는 내 영원한 숙제이기도 하다. 내가 한때 대우증권에 다닐 때는 기업문화에 심취해서 평생을 기업문화 전문가가 되려는 생각도 했다. 조직이 생산성도 있고 효율적으로 돌아가면서, 동시에 직원들도 행복한 조직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조직의 문화와 소통이 중요하다. 말과 글의 소통뿐만 아니라 정보나 감정의 소통이 다 중요하다. 소통의 최고 경지는 공유다. 정보와 감정의 공유를 통해 사람들은 참여하면서 주인이 되고, 주인이 되면 직장 생활이 행복해진다.

-대통령과 회장님의 글쓰기를 차례로 썼는데 다음 책은?

강연을 다니면서 대학생들이 글로 고민을 많이 한다는 걸 알게 됐다. 만약에 쓴다면 대학생 대상으로 한 글쓰기 책을 써보고 싶다.

강원국 작가 추천

첨삭 지도: 글은 실전에서 익혀야 한다. 주변에 글쓰기 멘토를 찾아라. 그에게 보여주고 고쳐달라고 해라. 그 방법이 가장 좋다.

함께 쓰기: 멘토를 찾기 어려우면 뭉치는 수밖에 없다. 회사 동료도 좋고 친구도 좋다. 쓴 글을 놓고 품평한다. 모임에서 가장 잘 쓰는 사람 수준으로 상향평준화된다.

흉내 내기: 스승도 동무도 없으면 혼자 하는 것도 방법이다. 좋아하는 작가나 칼럼니스트를 정하라. 한 작품을 집중해서 반복해 읽어라. 왜 이렇게 썼을까 생각하면서 읽어라.

반론 쓰기: 논조가 자기 생각과 맞지 않는 신문 하나를 정한다. 비위가 틀리는 칼럼이나 사설이 보이면 반론을 쓴다. 비판적이고 논리적인 글쓰기에 도움이 된다.

편지 쓰기: 편지는 대상이 분명한 만큼 내용이 생생하고 진솔하다. 한 줄도 훌륭한 편지다. 좋은 점은 받는 사람이 반드시 읽어준다는 점이다. 독자가 감동 받으면 번외 소득이다.

요약하기: 매일 칼럼 하나씩 요약한다. 줄일 수 있으면 늘일 수 있다. 글에서 핵심을 뽑아내는 훈련을 거듭하다 보면, 핵심 메시지에서 출발해 긴 글을 쓸 수 있게 된다.

SNS 활용하기: 글은 주기적으로 써야 는다. SNS는 지속적으로 글을 쓰는 데 적합한 매체다.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남 눈을 의식할 필요는 없다. 개성껏 쓰면 된다.

시 쓰기: 시를 못 쓰면 산문을, 그도 안되면 비평을 한다고 했다. 비유는 인간의 가장 위대한 지성이다. 쓸 수만 있다면 시를 쓰는 것이 글쓰기 연습의 정수다.

묘사하기: 글쓰기의 기본은 묘사다. 지하철에서 만난 사람, 사무실 풍경 등을 있는 그대로 묘사해본다. 설명하지 않고 보여주는 것이다. 그러면 독자는 상상한다.

3분 스피치 쓰기: 말과 글을 함께 연습할 수 있는 이점이 있다. 언제 어떻게 닥칠지 모르는 상황에서 써먹을 수 있는 실효성이 있다. 자기소개부터 시작하자.

무엇보다 백론(百論)이 불여일작(不如一作)이라 했다. 글은 써야 잘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