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성가공(塑性加工)은 척박한 국내 뿌리기술 업계에 핀 꽃이다. 국내 소성가공 기술력은 주물·금형·용접 등과 달리 세계 4위권이다. 규모도 일본·독일·미국에 이어 네 번째다. 소성가공은 매출액 기준 전체 뿌리기술에서 차지하는 비율(15.5%)이 세번째로 높다. 국가뿌리산업진흥센터에 따르면 지난해 소성가공 매출액은 14조82억원 수준이다. 총 5만5000여명이 5300개 업체에서 일한다.

충청남도 서산 소재 포메탈의 소성가공 작업장 모습.

소성가공은 물체 소성(외부의 힘을 받은 물체가 힘을 제거한 이후에도 원래 형태로 돌아가지 않으려는 성질)과 압력을 이용해 일정 형태의 제품을 만드는 기술이다. 단조·압출·압연·신선·파금·전조 등이 해당된다. 주로 금속 가공에 쓰였지만 최근엔 알루미늄, 세라믹 등 여러 재료에 응용된다.

자동차 한 대를 만들 때 소성가공을 거치는 재료·부품은 60%가 넘는다. 원가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최소 35% 이상이다. 차체 섀시(뼈대), 스티어링 휠(핸들), 범퍼 빔 등 구조물·부품은 전부 소성가공을 거친다. 자동차뿐 아니라 항공기, 선박, 철도, 건설장비, 중공업, 발전소, 휴대폰, TV 등 거의 모든 산업기기·부품에 활용된다.

◆ 바쁜 한국…일본 따라잡고 중국 견제해야

소성가공 기술 세계 1위는 일본이다. 일본은 이미 수십 년 전 ‘모노즈쿠리(ものつくり) 국가비전 전략‘을 세우고 고도화법을 만들었다. 일본 정부는 제조업의 기본이 되고 숙련기술이 필요한 20개 업종을 선정했다. 인재양성과 연구개발(R&D)도 아끼지 않았다. 일본 소성가공 기술력은 제조업 강국 독일을 훌쩍 뛰어 넘었다는 평가다.

한국생산기술연구원은 뿌리기술 각 부문 기술력을 100점 만점으로 환산했다. 부족한 분야를 보완하기 위해서다. 소성가공 부문만 보면 일본은 100점, 독일(유럽)은 98.4점이다. 한국은 2011년(84.2)보다 지난해(85.1) 소폭 상승했다. 이근안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성형기술연구실용화그룹장(수석연구원)은 “한국과 일본의 생산기반 분야 기술 격차는 과거(2.4년)보다 현재(1.65년) 줄었다”며 “특히 일본은 소성가공·금형·열처리·표면기술 부문에서 두각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중국이다. 중국은 지난 2009년 ‘10대 산업 진흥계획’을 수립했다. 중국 정부는 기계장비, 자동차, 조선 등 제조업 부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소성가공도 예외는 아니다. 중국 소성가공 기술력은 일본의 60% 수준이었지만, 지난해 74%까지 치솟았다. 한국은 일본·유럽을 따라가며 중국과의 경쟁도 챙겨야 하는 처지다. 중국이 후발자로 급성장하며 동시에 기술보호 장벽은 심화된 탓이다.

자유단조·현단조 등 소성가공으로 만든 자동차 부품들.

◆ 육체노동과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이 걸림돌

전문가들은 소성가공이 사양산업이나 3D산업으로 인식돼 그 가치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유승목 한국생산기술연구원 박사는 “기술력을 갖춘 인재가 부족하다. 석·박사급 연구자가 거의 없고, 인력의 고령화가 빨리 왔다”며 “육체노동과 중소기업에 대한 일반인의 인식도 문제다. 기술 경쟁력을 약화시키는 악순환이 올 수 있다”고 분석했다.

실제 국내 대학교들은 수년전부터 소성가공 연구와 인력 양성 투자를 줄이고 있다. 이근안 그룹장은 “대학 정책의 변화가 있었다. 전보다 IT, 신소재, 바이오 부문 투자는 늘렸고 소성가공 등 뿌리기술 지원은 줄었다”며 “정부 지원은 전체 국내총생산(GDP) 대비 작은 규모가 아니지만, 소성가공의 고급인력은 많이 부족하다”고 말했다.

소성가공도 주조처럼 대부분 중소기업이 도맡아 한다. 산학연 중심으로 연구·투자하지 않으면 기술 개발이 어렵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전문인력 양성·채용을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박병수 포메탈 부사장은 “인력 부족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어렵게 외국인 근로자를 구해 교육해도, 비자 문제로 3년 내 떠나야 하는 상황”이라며 “국가기술자격제도를 만들거나 작업장 자동화 사업을 진행해야 한다. 젊은 인재들이 뿌리기술 기업에 좋은 이미지를 갖게 하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포메탈은 지난 1969년 설립된 단조 및 소성가공 전문 기업이다. 이 회사는 지난 수년간 공장 라인에 부분적으로 로봇을 설치했다. 노후된 장비는 새 것으로 교체해 간이 자동화를 이뤘다.

◆ 환경·에너지 규제 대응해야

소성가공도 세계적 흐름에 맞춰 연구·투자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다수 전문가가 새로운 트렌드로 꼽은 것은 환경 규제 강화, 에너지 부족 심화, 고령화 등이다. 자원 고갈에 대응하기 위한 기술·공정 개발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근안 그룹장은 “국가 성장동력 산업의 신제품 동향을 철저히 분석하고 신소재·신기술 개발의 기반을 마련해야 한다”며 “선도기술은 중소기업 주도로 개발하기 어렵다. 정부가 이를 이끌고, 중소기업은 상용화가 시급한 단기 기술개발에 초점을 맞춰야한다”고 덧붙였다.

소성가공을 거친 부품으로 만든 공기압축기(air compressor). 자동차·중장비·운송기 등의 공조 장치에 들어간다.

독일은 2006년부터 미래형 제조기술개발에 힘 쏟고 시장지향형 구조로의 산업 전환을 진행했다. 이를 위해 17대 기술 분야를 지원하는 ‘독일 하이테크 전략’을 수립했다. 10개 뿌리산업 첨단 클러스터를 운영하며 2009년까지 총 2억5000만유로(약 5200억원)를 투자했다. 일본도 마찬가지다. 뿌리기술을 포함한 모노즈쿠리 기술 고도화, 인재육성, 글로벌 브랜드화 등 3대 과제를 제시했다. 설비·설계·구매·생산·판매 등을 지원하고 해외진출도 돕고 있다.

유승목 박사는 “경영진의 기업가 정신이 중요하다. 독일은 해외시장 개척에 매우 적극적인데, 이게 사업 지속의 핵심”이라며 “세계 최고 수준의 경쟁력은, 결국 현장의 숙련된 기술자가 만드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그룹장도 “소성가공이 자동차·휴대폰·생활가전 등 제품에 적용돼도 사람들은 모른다”며 “정부 탓만 할 게 아니라, 업계가 나서 소성가공의 중요성을 알리는 방법을 깊게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용어설명

단조(鍛造) : 재료를 가열하고 두드려 하는 가공.
압출(壓出) : 재료를 거푸집에 넣고 구멍 밖으로 밀어내 막대나 관을 만드는 과정.
압연(壓延) : 돌고 있는 2개 롤 사이에 재료를 통과시키는 가공.
신선(伸線) : 틀에 재료를 통과시켜 선이나 관을 만드는 과정.
판금(板金) : 판을 굽히거나 표면에 무늬를 내는 가공.
전조(轉造) : 재료를 거푸집에 넣어 나사·기어 등을 만드는 과정.
자동차 섀시 : 동력원, 동력전달·제동장치 등을 포함한 핵심 부분.
자동차 프레임 : 자동차 하부나 틀을 이루는 것으로 섀시의 기본 골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