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곤 지음|사이언스북스|440쪽|1만7000원

"한가지 병이 겨우 나으면 한가지 병이 또 생기매."(세종)
"왕 노릇하다가 미칠 것 같다."(선조)
"오장이 불에 타는 듯하여 차라리 죽고 싶다."(현종)
"(너무 고통스러워서)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누누이 말하기 어렵다."(정조)

왕의 일상을 적은 기록에 고통을 하소연하는 말이 왜 이리 많은가. 모든 것을 마음대로 누릴 것 같은 왕의 삶. 하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행복’ 일색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오히려 실록은 왕이 토해내는 신음으로 가득차 있다는 게 한의학 박사인 저자의 얘기다. 마음의 고통만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다. 왕들 대부분이 스트레스로 인한 고질병이 있었다.

천재지변으로 나라가 시끄러울 때마다 왕은 도마 위에 올랐다. 골수 성리학자들은 왕의 평소 몸가짐과 마음가짐이 올바르지 못한 탓이라고 질책했고, 반대 당파는 공격의 날을 세웠다. 저자는 "영조 정도만이 자신의 건강을 지키며 80대까지 장수했다"고 말한다. 왕이란 천수(天壽)를 누리지 못하는 비운의 직업이었던 셈이다. 조선 왕들의 평균 수명은 47세였다.

질병으로 역사가 바뀌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숙종의 어머니인 명성왕후는 극성스러운 어머니였다. 아들의 독살을 걱정한 나머지, 임금에게 가는 음식을 모두 친히 장만했다. 신하들이 비아냥댔을 정도였다. 숙종이 병으로 누웠을 때는 무당까지 불러 점을 치게 했다. 무당은 명성왕후가 소복 차림으로 물벼락을 맞아야 낫는다고 했다. 명성왕후는 시키는 대로 엄동설한에 소복 차림으로 물벼락을 맞았다. 결국 자신이 병을 얻어 세상을 떴다. 이후 숙종은 명성왕후가 못마땅하게 여긴 장옥정(장희빈)을 궐에 들였고, 정권은 서인에게서 남인으로 넘어갔다.

조선시대 최고 군주로 꼽히는 세종은 병을 달고 살았다. 안질(눈병)과 임질(성병), 소갈(당뇨병), 풍습(관절염)으로 내내 고생했다. 말년에는 강직성 척추염으로 추정되는 병으로 괴로워했다. 끝내는 중풍으로 추정되는 심혈관계 질환으로 사망한다.

마치 종마(씨를 받기 위하여 기르는 말) 같은 비참한 신세로 비친 임금도 있다. 장희빈이 생모인 경종 얘기다. 허약 체질에 간질끼가 있었던 그는 비만이었다. 사향과 녹용, 공진단 같은 정력제 처방에도 후사를 잇지 못했다. 끊임 없이 이어지는 당쟁과 갈등, 빨리 후계자를 내놓으라는 독촉 앞에 경종의 심신이 어땠을까.

그나마 21대 임금 영조는 52년간 왕좌를 지키며 83세까지 장수했다. 그는 타고난 건강 체질이었을까. 저자는 아니라고 말한다. 영조는 조금만 찬 음식을 먹어도 배탈이 났다. 하복통 때문에 소변도 잘 못 본 체질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몸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매사에 무리하지 않도록 조심했다. 장수의 비결이었다. 즐겨 먹은 인삼도 그의 체질에 잘 맞았다고 저자는 해석한다.

반면 그의 뒤를 이은 정조는 인삼이 독이 된 경우다. 정조 독살설은 후대에 숱한 이야기거리를 낳기도 했지만, 저자는 인삼이 많이 들어간 경옥고의 과다 처방이 정조의 죽음에 큰 원인이 됐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정조 외에도 독살설이 제기된 왕은 수없이 많다. 저자는 하나하나 기록을 살펴보면 독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스트레스가 왕의 삶을 단축시킨 경우가 허다했다. 그러니 만병의 근원인 스트레스를 피하자. 이 책의 결론도 다른 건강서에서 많이 본 얘기로 귀착된다. 매일밤 침상이 땀으로 젖을 정도로 하루하루가 고통스럽다면, ‘왕의 밥상’도 속수무책이라는 얘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