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뇌에서 흘러나오는 전기신호인 '뇌파(腦波)'는 주파수 대역에 따라 델타(δ)·세타(θ)·알파(α)·베타(β)·감마(γ)의 5가지로 측정된다. 뇌의 어느 부위에서, 어떤 신호가 흘러나오는지에 따라 사람의 정서 상태나 특정 과제에 대한 몰입 정도를 알 수 있다.

뇌파측정 장비는 머리에 부착하는 전극(電極)의 개수(채널)에 따라 정확도가 갈린다. 보급형 측정기는 10개 미만이지만, 대학병원 등에서 쓰는 전문장비엔 64개, 128개까지 달려 있다. 현재 대당 2억원 안팎을 호가하는 64개 채널급 이상 장비를 보유한 곳은 서울대병원·세브란스병원 같은 대형병원이나 국립과학수사연구원 정도.

병원이나 수사기관도 아닌데, 이 장비를 갖추고 있는 기업이 있다. 경기도 판교에 위치한 게임회사 NHN엔터테인먼트다. 이 회사는 뇌파측정기 2대와 생체신호 측정기 4대, 구리로 차폐(遮蔽)된 실험실 등 총 5억원을 들여 작년 11월 '뉴로사이언스 랩(neuroscience lab)'이란 연구실을 열었다.

'퍼드덕' 괴물의 날갯짓 소리, 이렇게 녹음합니다 - 경기도 판교의 게임회사 엔씨소프트의‘폴리사운드’스튜디오에서 효과음 전문가가 가죽점퍼로 괴물의 날갯짓 소리를 녹음하고 있다.

음향이 얼마나 실제에 가깝게 입체적인지는 이른바 '채널'에 따라 갈린다. 최근의 블록버스터급 영화는 중앙과 앞쪽 좌우, 뒤쪽 좌우 등 5개 채널로 녹음해, 5개의 스피커와 1개의 서브우퍼(저음 전용 스피커)로 재생하는 '5.1채널' 방식이 주로 쓰인다. 이 정도 음향을 구현하려면 '5.1채널 믹싱룸'과 같은 첨단 스튜디오를 갖추고 있어야 한다. 국내에서는 영화음악을 만드는 전문 사운드프로덕션이나, SM엔터테인먼트·JYP엔터테인먼트 같은 대형 연예기획사 정도가 갖추고 있다. 게임회사 엔씨소프트도 이 설비를 보유하고 있다. 이 회사는 수억원을 들여 국내 게임업계 최초로 5.1채널 믹싱룸을 비롯해 효과음 제작 스튜디오, 리코딩 스튜디오 등 세 개의 음향시설을 마련했다.

게임회사가 종합병원급 뇌파·생체신호 측정기와,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이 가능한 음향시설을 갖춘 것은 최근의 글로벌 게임시장이 그 정도로 경쟁이 치열하다는 뜻이다. 단순히 심심풀이가 아니라, 과학을 바탕으로 사람의 뇌파를 초단위로 분석해 관심을 지속적으로 끌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환경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3.3㎡(한 평) 남짓한 NHN엔터테인먼트의 뉴로사이언스 랩에는 1인용 소파와 수십여개의 케이블이 주렁주렁 달린 장비가 놓여 있었다.

20대 여성 피험자가 의자에 앉아, 64개의 전극이 달린 얇은 천을 머리에 뒤집어썼다. 스마트폰으로 퍼즐게임인 '라인팝2'를 시작하자, 모니터에선 마치 수술실에서나 볼 법한 뇌파 그래프가 쉴 새 없이 그려졌다.

뇌파·땀·안면 근육·심장박동까지 측정 - 경기도 판교의 게임회사 NHN엔터테인먼트‘뉴로사이언스 랩’에서 20대 여성이 뇌파와 생체신호 측정기를 달고 스마트폰 게임을 하고 있다. 연구진은 땀의 양 등 측정 정보를 바탕으로 이용자가 어떤 부분에서 흥미와 지루함을 느끼는지 파악해, 게임 개발에 반영한다.

게이머의 땀, 심장 박동, 얼굴 근육 움직임 등 생체신호를 잡아내는 장비도 갖춰져 있다. 왼쪽 검지부터 약지까지 네 개 손가락과 얼굴 왼쪽 뺨에 전극을 연결했다. 데이터과학연구실의 신경순 박사는 "왼쪽 얼굴이 정서적으로 민감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게임을 시작하고 잠시 뒤, 게이머가 땀을 얼마나 흘리는지를 파악하는 '피부전도도' 그래프가 하강하기 시작했다. 신 박사는 "이 부분에서 게이머의 흥미가 떨어졌다는 것"이라며 "이 같은 데이터를 축적해 특정 부분에 대한 보완이 필요하다고 게임 개발팀에 전달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고 했다.

NHN엔터테인먼트는 사람의 뇌파와 생체신호를 게임을 비롯한 콘텐츠 제작에 반영하기 위해, 지금까지 500여 피험자의 생체신호 데이터를 축적했다.

내년 초에는 이를 바탕으로 연구논문도 펴낼 계획이다. 게임업계에서는 획기적인 시도로 평가하지만, 사회적으로는 이용자들의 게임 중독을 더 심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엔씨소프트의 스튜디오도 웅장하고 사실적인 음향을 만들기 위해 온갖 장비를 동원한다. 효과음을 제작하는 '폴리(foley)사운드' 스튜디오는 라디오 방송국 스튜디오 수준의 장비를 갖추고 있다. 승용차에서 떼어낸 문짝, 시커먼 군화, 빗자루, 여행용 가방, 나사못 등 수천여종의 물품이 그것이다. 폴리아티스트 박준오씨가 가죽점퍼와 스웨이드점퍼 두 장을 겹쳐 들고 흔들자 '퍼드덕퍼드덕' 하는 괴물의 날갯짓 소리가 났다. 변종혁 사운드실 팀장은 "영화나 광고제작 경험이 풍부한 국내 최고 수준의 사운드전문가 40여명이 모여 게임음악을 만든다"고 했다.

이 회사는 온라인게임 '아이온'을 만들 때 세계적인 작곡가 양방언씨, 런던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함께 게임 배경음악을 만들었다. '블레이드앤소울' 게임을 만들 때는 지상파 방송 등에서 일하는 국내 정상급 성우 100여명을 동원, 게임 속 800여 캐릭터의 음성을 일일이 녹음했다.

엔씨소프트 황순현 전무는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도록 음향·영상·빅데이터 등 다양한 분야의 기술 경쟁력을 갖춰나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