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키호테'를 완역한 안영옥 고려대 서어서문학과 교수

“우리는 흔히 엉뚱한 괴짜나 황당한 사람을 두고 ‘돈키호테 같다’고 하지요. 하지만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돈키호테 원작을 제대로 읽고 나면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없어요. 처음엔 낄낄대며 웃지만, 마지막 장을 덮고 나면 울게 되는 책이지요.”

안영옥(56) 고려대 교수의 목소리는 확신에 차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안 교수가 남들 눈에는 돈키호테로 비칠지도 모른다. 스페인의 문호 세르반테스의 대작 ‘돈키호테’ 1, 2권을 5년 넘게 매달린 끝에 우리말로 완역했다. 번역서로 모두 1600쪽이 넘는다.

원작은 세르반테스가 인생의 온갖 오욕을 다 겪고 난 후 쉰여덟에 출간했다. 우리에게는 흔히 '풍차를 향해 돌진하는 정신 나간 기사의 터무니없는 무용담' 정도로 기억되는 이 소설. 그러나 서양 문학에서는 가장 뾰족한 봉우리로 평가받는다.

‘인류의 바이블’(생트 뵈브), ‘근대 소설의 효시’(알베르 티보데), “돈키호테 이후에 쓰인 소설은 돈키호테를 다시 쓴 것이거나 그 일부를 쓴 것”(르네 지라르), “전 세계를 뒤집어 봐도 ‘돈키호테’보다 더 숭고하고 박진감 있는 픽션은 없다”(도스토예프스키)…. 찬사는 끝도 없다. 2002년 노르웨이 북클럽에서 세계 54개국 저명한 작가와 비평가들을 상대로 ‘역사상 가장 의미있는 문학 작품’을 두고 벌인 설문 조사에서도 1위가 돈키호테였다.

안 교수는 돈키호테에 매달리는 동안 아들이 “그러다 엄마가 돈키호테 되겠다”고 하더라며 웃었다. 표정에는 ‘드디어 마쳤다’는 안도감과, ‘마침내 해냈다’는 자부심이 함께 빛났다. 서울 광나루역 근처 카페에서 만나, 오랜 번역 과정의 사연과 작품의 의미, 작가의 기구한 생애 같은 것들에 대해 두루두루 물어봤다. 가까이 있는 집에서 걸어나온 안 교수는 메모도 없이 앉은 자리에서 열변을 토했다. 풍차를 향해 돌진할 때의 돈키호테 모습, ‘자발적 광기’에 가까운 열의가 내 코끝까지 느껴졌다.

-어떻게 번역에 손을 대게 됐나?

돈키호테는 스페인 문학을 하는 사람으로서는 꼭 한번 도전해 보고 싶은 작품이다. 세계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 작품인데 왜 안 그렇겠나. 스페인 문학 전공자로서 관심을 안 갖는다면 오히려 직무유기다. 하지만 교수로서 강의하고 논문 쓰다 보면 이런 대작을 번역할 여유가 부족하다. 이번에 도화선이 된 것은 출판사 의뢰였다. 기존 번역서들을 살펴보고는 필요하다고 판단해서 내게 맡겨온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30년 넘게 스페인 문학을 공부하면서 이 작품이 국내 독자들에게 제대로 소개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오던 차였다. 그래서 제의를 수락하게 됐다.

-그 전의 번역들은 어떻길래?

남의 작품을 함부로 이야기하기가 조심스럽다. 평가는 독자들에게 맡기고 싶다. 다만, 옛날 것은 영어나 일어에서 중역한 것이 많다. 스페인어 원문에서 직접 옮긴 것은 두 종이 있는데, 하나는 전편만 번역돼 있다. 그것도 뒷부분은 아주 허술하다. 다른 한 종은 전후편 완역한 것이고, 다 좋은데 본인의 문체로 의역을 많이 했다. 스페인 문화를 반영하기보다 한국식으로 바꾼 게 많다. 나는 이번에 다른 번역은 보지 않았다. 영향을 받을까 봐. 돈키호테는 소설로서는 특이하게 맨앞에 서문이 있다. 거기에 저자가 주인공들에 대한 설명을 해뒀다. 거기에 맞게 충실하게 인물을 반영하는 언어와 표현을 썼다. 번역은 그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언어만으로는 안된다. 스페인 문화를 충실하게 반영하는 번역본이 되도록 최대한 애썼다.

가령 돈키호테는 적어도 표면적으로는 당시 유행하던 기사 소설의 권위를 무너뜨리기 위해 패러디했다. 그래서 기사로서는 맞지 않는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고 성립될 수 없는 조건들을 작품 속에 배치했다. 그런 걸 놓치면 안된다. 당시 스페인 법전을 보면 기사 요건이 나온다. 거기 보면 미친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에게 기사 서품을 줘서는 안 된다. 그런데 작품 1장에 주인공이 뭘 먹는지 나온다. 가난한 기색이 역력하다. 엥겔 지수로 보면 수입의 4분의 3을 먹는 데 쓴다. 돈키호테가 개종한 유대인이라는 사실도 나온다. 당시 스페인 정부는 기독교로 개종한 유대인이나 무슬림의 진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토요일마다 특정 음식을 먹게 했다. 돼지고기가 든 달걀 요리였다. 유대인들에게는 돼지고기가 터부니까. 오죽하면 음식 이름이 ‘고뇌와 탄식’이었다. 그런 것 하나하나가 번역에서 굉장히 신경을 써야 할 것들이다.

-그래선지 각주가 840여 개나 된다.

작품 속에 속담이 아주 많이 나오고 중요한 역할을 한다. 산초가 ‘속담 보따리’인데, 이 속담들을 한국 속담으로 옮겨놓으면 맛이 사라진다. 그래서 내 책에서는 스페인 속담을 살려 이해할 수 있게 옮기되, 문맥 속에서 이해가 어려운 것은 각주를 달아 부연 설명했다.

프랑스 화가 폴 귀스타브 도레가 그린 '돈키호테' 삽화

-돈키호테는 어떤 인물인가?

우리는 흔히 돈키호테를 두고 허황된 꿈을 꾸다가 현실에서 망가진 사람이라고 한다. 아니다. 이 사람은 결국에는 정신을 되찾고 현실로 돌아왔지만, 현실에 패배한 것이 아니라 현실을 변화시켰다. 돈키호테는 가난한 약자를 돕고 불의를 바로잡고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나갔는데, 결국 자기는 무너졌다. 하지만 자신이 변화시킨 산초에 의해 유토피아가 이뤄진다. 산초는 본래 욕심 많고 먹는 것만 알던 사람에 일자무식이었다. 하지만 돈키호테를 따라다니면서 변한다. 나중에 바라타리아 섬의 통치자가 된다. 통치가 완벽했다. 사람들이 그를 우롱하려고 통치자를 시켰는데 그들이 오히려 우롱당한 격이다.

미겔 데 세르반테스(Miguel de Cervantes·1547~1616년)

-돈키호테가 작가 세르반테스의 분신이라는 말도 한다. 그의 실제 삶은 어땠나?

참 기구한 삶을 살았다. 1547년 6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할아버지는 종교재판소 변호사였고. 아버지는 외과 의사였다. 요즘 변호사, 의사라고 하면 와- 하겠지만, 그때는 변호사라는 게 문서 작성 업무를 보는 수준이었다. 의사도 피를 뽑거나 땀을 흘리게 해서 환자를 고치는 수준이었다. 그런 일은 이발사도 했다. 당시 스페인은 순수 기독교 집안 혈통을 중시했다. 따라서 의사나 변호사, 세금 징수원 같은 일은 주로 개종한 유대계가 했다. 보수는 적고 사회적으로 멸시를 받았다. 아버지는 청각에 문제가 있었던 데다, 경제적으로 좀 더 나은 삶을 찾아 왕실을 옮겨 다니느라 가족들이 스페인 여러 곳을 떠돌았다. 빚 때문에 옥살이도 했다. 세르반테스의 유년 시절은 가난과 비참함과 부끄러움으로 얼룩졌다.

그의 학력도 불분명하다. 대학은 밟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1568년 당대 최고 지식인 후안 로페스 데 오요스가 낸 수필집에 그의 시 네 편이 실린 적이 있다. 돈키호테 전편 제 9장에 나오는데, 길거리에 떨어져 있는 찢어진 종이라도 주워 읽는 열렬한 독서광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1569년 9월 왕이 머무는 궁정이나 성채 등에서 싸우면서 무기를 꺼내서는 안된다는 법을 위반해, 오른손이 잘리고 10년 간 마드리드에서 추방당하는 벌에 처해진다. 이를 피해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이탈리아로 도망갔다. 로마에서 먼 친척뻘 되는 고위급 사제 도움을 받고, 훗날 추기경이 되는 다른 사제 수행원으로도 일하면서 르네상스 문학을 섭렵했다.

그러다 1571년 카를로스 1세의 아들이 터키군에 맞서 결성한 전투함대 휘하 부대에 자원 입대한다. 추측컨데, 기사소설 영향으로 모험심에서 그런 게 아닌가 싶다. 레판토 해협에서 대승했지만, 이 때 총상을 입고 왼손이 불구가 된다. ‘레판토의 외팔이’라는 별명도 얻게 됐다. 그때가 24세였다. 군 생활을 계속하다가 1575년 9월에 귀국하는데 탄 배가 태풍에 휩쓸리고 터키 해적의 습격까지 받아 포로가 된다. 노예 신분으로 5년간 포로 생활을 하다가, 가족이 모은 돈으로 몸값을 지불하고 천신만고 끝에 간신히 풀려났다. 그때가 33세였다. 그때 자유의 중요성을 절감했을 것이다. 돈키호테의 주제 중 하나가 자유다. 인간이 어떻게 인간을 구속할 수 있나 묻는다.

집에 돌아왔지만 가세는 더 기울어 있었다. 1569년 첫 번째 소설 ‘라 갈라테아’를 출간했지만, 생계를 위해 포르투갈로 가서 왕실 업무를 봤다. 당시 꿈의 대륙인 중남미 파견을 청원했지만 불발에 그쳤다. 아마 집안이 개종 유대인이라서 그랬을 걸로 추측한다. 1587년부터 1600년까지 무적 함대에 납입하는 군사식량 조달원으로 일했다. 그런 중에도 교회 소유 밀을 징발했다고 파문당하고, 당국 허락 없이 밀을 팔았다는 죄목으로 투옥되기도 했다. 1597년에는 세금 징수원으로 일했다. 그때 안달루시아 지방을 돌아 다니면서 겪은 일들이 작품에 녹아있다. 인생에서 버릴 자투리가 없다. 주어진 삶도 충실히 살면 언젠가는 거름이 되어 인간을 더 성숙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다 자신이 거둔 세금을 맡겨둔 은행이 파산하고 착오가 겹치면서 억울하게 7개월 옥살이를 했다. 이 때 ‘돈키호테’가 잉태된 것으로 추정한다. 1605년 1권이 나와서 인기를 끌었다. 그러자 1614년에 다른 작가가 무단으로 돈키호테 속편을 출간했다. 1615년 자신도 돈키호테 속편을 내고, 이듬해 4월 당뇨와 간경변 끝에 집에서 눈을 감았다.

-책이 출간될 당시는 어떤 시대였나?

16-17세기는 스페인이 대제국으로 부상했다가 다시 쇠락하던 시기였다. 극한 부침의 시기였다. 스페인은 유럽 다른 나라와 달리 711년부터 800년간 아랍인 지배를 받았다. 1492년에 기독교도가 아랍인을 다 내쫓고 다시 이베리아 반도를 회복했다. 물리적 통일 이후 정신적 통일을 해야 한다며 스페인 땅에서 유대인과 무슬림을 내쫓았다. 유대인은 1300년간, 아랍인은 800년간 살아온 삶의 터전에서 하루아침에 쫓겨나게 된 거다. 스페인에 남은 사람은 개종한 유대인이나 무슬림이거나 순수 기독교인들이었다. 그때부터는 조상 때부터 순수 기독교인이었느냐가 중요해지는 순혈주의로 치닫았다. 과거 이슬람교도들은 스페인의 척박한 땅을 관개해 농업을 활성화했고, 유대인은 유통을 통해 상업 경제를 일궜다. 둘이서 기독교인들을 먹여 살렸다. 그런데 이제 와서 몰아냈다.

종교 재판에 의한 검열도 엄청났다. 스페인에는 1482년부터 종교재판소가 맹위를 떨치다 1822년에 없어졌다. 유럽 다른 나라에서 계몽주의가 꽃필 때 스페인은 종교재판에 묶여있었다. 그때 종교재판에 회부된 사람이 34만이 넘었다. 그런 시대를 살았다. 부모가 개종 유대인이었다. 그때 유대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네 가지밖에 없었다. 성직자나 왕궁의 신하가 되거나, 군에 입대하거나 아니면 거지였다.

그러니 스페인 경제가 어찌 되겠나. 거대한 식민지를 경영했지만 외국에서 들어오는 금은보화는 해외 물산 수입하는 데 썼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대제국이었지만 100년 만에 나라가 망했다. 편협한 종교 정책 때문이었다. 조금이라도 로마가톨릭에 반하는 내용이 있으면 검열에 걸렸다. 종교 재판소가 국가 차원에서 세워진 최초의 나라가 스페인이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가 지동설 주장했다가 종교 재판에 회부된 것도 스페인 종교재판소가 로마에 의뢰해서 열린 것이었다. 국가 차원에서 종교 재판소를 운영하면서 이교도적인 요소를 탄압했다. 심하면 화형이나 교수형에 처해졌다. 돈키호테를 보면 화형에 처해질 만한 내용도 나온다. 단지 웃음이라는 걸로 위장했던 거다.

-영국의 셰익스피어와 활동 시기가 겹치는데.

시대가 겹친다. 물론 셰익스피어도 위대하다. 인간 심리 묘사가 탁월했다. 하지만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가 더 우위에 있다고 보는 사람이 많다. 특히 국내에는 셰익스피어가 많이 알려진 데 비해, 돈키호테는 너무 모른다. 다 읽은 사람도 드물고 제대로 이해한 사람도 적다. 평가를 제대로 못 받고 있다.

-스페인에서는 현재 돈키호테를 어떻게 평가하나?

지금도 스페인에서는 책의 날인 4월 23일이면 돈키호테 읽기 대회가 열린다. 마을마다 릴레이로 독회를 한다. 스페인 대도시나 시골 구석구석 마을에도 타일(아랍에서 전수받은 전통 문화)에 돈키호테의 명문구가 적혀 있는 걸 볼 수 있다. 스페인 마드리드에 가 보면 시내 스페인 광장에 제일 높은 동상이 세르반테스이고 그 양 옆으로 돈키호테와 산초가 있다. 스페인 심장부에 그런 동상이 있다는 것은 국가 아이콘이라는 뜻이다.

-번역에 5년이 걸렸다고 했다. 이런저런 어려움이 많았을 것 같다.

번역 작업에 착수한 게 그렇고, 작품이야 그전에도 수도 없이 읽었다. 안식년이던 2010년부터 방학 때면 스페인에 한두 달 체류하면서 답사했다. 돈키호테의 모든 여정을 다 따라가 봤다. 그 지방 문화를 느껴가며 아주 재밌게 했다. 라만차에 갔을 때는 돈키호테 번역하고 있다고 소개했더니 할머니가 전화로 몇 사람을 부르더니, “이 사람도 돈키호테고, 저 사람도 돈키호테야. 맨날 꿈만 꾸고 살아”라고 했다. 이 소설의 큰 줄거리가 자신의 꿈을 찾아서 펼치려는 삶을 그린 것이다. 작품 속에서 산초도 “편력 기사만큼 멋진 직업이 없다”고 말한다. 아주 매력적이다. 밥 먹을 때도 돈키호테 얘기를 하다 보니 우리 아들이 나보고 “그러다 엄마가 돈키호테 되겠다”고 할 정도였다.

-돈키호테와 스페인 문학에는 언제부터 관심이 있었나?

나는 원래 어릴 적에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아버지가 마케팅을 전공한 교수여서 외국에 갔다가 올 때마다 화보 책자를 갖다 주시곤 했다. 한번은 스페인 화가인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세비야의 물장수’라는 그림을 보고 빠져들었다. 그 뒤로 스페인에 대한 막연한 동경심에서 스페인어과를 가게 됐다. 다른 대학도 장학생으로 갈 수 있었지만, 내가 입학할 당시엔 스페인어과가 외대밖에 없었다. 막상 스페인어과에 들어가서 보니 내가 바라던 게 충족이 안 됐다. 스페인 정부 장학금을 받아놓고 아버지한테 유학을 가겠다고 했다. 당시로서는 스페인에 여자 혼자 간다는 게 예사로운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그날 새벽 4시까지 못 주무셨다. 그래도 보내주셨다.

유학 가서도 하나도 힘든 줄 몰랐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했기 때문이다.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면 그렇다. 결과는 뒤따라 오는 것이다. 공부를 마치고 귀국해서 대학 전임이 되기 전까지도 하나도 슬프거나 우울하지 않았다.

돈키호테는 초등학교 시절 교과서에 풍차 모험 이야기가 실려 있었다. 하지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대학 들어가서였다. 그 두꺼운 책을 머리맡에 두고 오랫 동안 읽었다. 너무 감동이 커서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막 울었다. 그냥 우스꽝스런 미치광이 편력 기사의 모험담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인간애가 절절하게 묻어있는 책인가 싶었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너무나 완벽하게 돼 있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그것만 봤다.

-박사 학위는 정작 오르테가 이 가세트(스페인 철학자·1883~1955)로 썼는데.

1914년에 나온 그의 첫 책이 ‘키호테에 대한 성찰’이다. 돈키호테를 자기 사상의 출발점으로 삼은 것이다. 그걸 보는 순간, 이건 돈키호테 이야긴데 싶어서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돈키호테 안에 ‘조망주의’(perspectivism·모든 사상은 특정 관점에서 나온 것으로 보는 입장)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그걸 이론으로 정립한 사람이 오르테가 이 가세트다. 귀국해서 보니, 오르테가 이 가세트 책 중에 유일하게 번역된 것이 ‘예술의 비인간화’라고, 영어본으로 번역한 얇은 게 있었다. 내가 그의 두꺼운 ‘미학론’도 번역해 냈다.

-돈키호테 번역서가 출간된 직후 고대에서 강연을 하면서 ‘죽기 전에 꼭 읽어야 될 책’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그 정도인가?

비단 나만의 얘기가 아니다. 프랑스와 스페인은 사이가 안 좋은데, 프랑스 문예 비평가인 생트 뵈브는 ‘돈키호테’를 ‘인류의 바이블’이라고 했다. 삶의 표본으로 삶을 만한 권위있는 작품이란 뜻이다. 플로베르는 ‘돈키호테’ 속에서 자신의 근원을 발견했다고 했고, 르네 지라르는 “돈키호테 이후에 쓰인 소설은 돈키호테를 다시 쓴 것이거나 그 일부를 쓴 것”이라고 했다. 알베르 티보데는 근대 소설의 효시로 꼽았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전 세계를 뒤집어 봐도 ‘돈키호테’보다 더 숭고하고 박진감 있는 픽션은 없다”고 했다. 2002년 노르웨이 북클럽에서 세계 53개국의 저명한 작가와 비평가에게 문학 작품을 10편 꼽아달라고 했더니 1위가 돈키호테였다.

돈키호테가 그렇게 호평 받는 이유는 뭐냐. 형식과 내용 두 가지에 걸쳐 있다. 우선 형식 면에서는 그 안에 근대적 맹아가 다 들어있다. 17세기 초 작품인데 상호텍스트성, 작가의 죽음, 독자비평 같은 것들이 다 나온다. 내용에서는 우리가 인간이기를 잊을 때,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제 모습을 잊을 때, 우리는 다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메시지를 준다.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우리를 둘러싼 환경, 정치는 사법체계는 경제는 어때야 하는지 돌아보게 한다. 지금 우리 사회도 여러 면에서 방황하고 있지 않나. 이 책으로 거울을 삼을 수 있다. 성경은 엄숙하지만 이 책은 굉장히 재미있다. 유쾌한 해학이 넘친다. 발간됐을 당시 스페인 국왕인 펠리페 3세가 어느 벤치의 젊은이가 깔깔 웃고 있는 걸 보고는 “저 친구는 미쳤거나, 돈키호테를 읽고 있을 것”이라고 했을 정도다. 하지만 마지막 장을 닫을 때는 울게 된다. 마침 내년은 돈키호테 하권이 출간된 지 400주년이어서 한층 의미가 있다.

-돈키호테에 대한 평가가 시대별로는 어땠나?

맨 처음 스페인에서 출간됐을 때는 그냥 기사소설을 패러디한 재미있는 소설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하지만 당대에도 의식 있는 일부 지식인은 “경의와 두려움을 표한다”고 했다. 그 후 세르반테스가 죽고 난 뒤 17-18세기 동안 스페인에서는 별 언급이 없었다. 다시 역사에 등장한 것은 독일 낭만주의자들이 재조명하면서였다. 현실과 이상의 불일치라는 관점에서 돈키호테를 깊이 읽기 시작했다. 이어 영국에서 세르반테스의 자서전과 작품이 재평가되기 시작했다. 그 후 20세기 들어 실존주의가 등장하면서 인간 존재와 실존, 언어의 역할 같은 주제를 돈키호테에서 읽어내기 시작했다. 19세기말 20세기초에 나온 철학 이론도 그 속에서 맹아를 찾았다.

-‘최초의 근대 소설’이라고 평한 사람도 있다. 어떤 의미인가?

그전의 기사 소설은 전지전능한 3인칭 시점에서 이야기를 묘사해 나갔다. 반면 돈키호테에서는 등장인물이 대화로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그전에는 주인공의 이름이 정해져 있었다. 그 사람의 운명이 알려져 있었다는 얘기다. 하지만 돈키호테는 작중 주인공이면서 자신을 창조해 나간다. 자신이 신의 입장이 된다. 작품 도입부에 라만차 마을에 이달고가 살고 있었다고 소개하고는, 그의 이름이 불분명해 ‘키하다’ ‘케사다’ ‘케하나’ 여러가지로 불렸다고 나온다. 주인공이 기사로 나서기로 결심하면서 열흘 간 고민 끝에 스스로 지어준 이름이 돈키호테다. ‘돈’은 경칭이고, ‘키호테’는 갑옷의 허벅지 보호 장비 이름이다. 자기가 말 이름도 정한다. 로시난테다. ‘그 전에는 비쩍 말랐지만 지금은 어느 말보다 뛰어난’ 말이이라는 뜻이다. 기사에게 필요한 귀부인도 이웃집 여인 알돈사를 상상의 여인 ‘둘시네아’로 부른다. 자기가 자기 삶을 만들어 가기 위해 이름을 부여한다. 유대인 스콜라 철학에 보면 호칭이 정체성을 바꾼다고 나온다. 이름이 불명이던 사람이 자기 삶을 살기 위해 자기 이름을 정한다. 그리고 행동한다. 인간은 가문이나 혈통의 자식이 아니라, 자기 행위의 자식이라고 선언한다. 실존이 기능을 결정짓는 게 아니라 기능이 실존을 결정한다는 거다. 하이데거가 망치질을 통해 망치가 비로소 존재 의미를 얻는다고 한 것과 같다.

데카르트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고 했지만, 돈키호테는 “행동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말한다. 돈키호테가 풍차를 거인으로 보고 돌진하고, 양떼를 군대로 보고 싸운다. 그가 싸운 괴물의 정체는 당시 스페인의 억압적인 정치 종교 체제다. 주인공을 광인으로 설정한 것도 검열이나 법적 구속에서 자유롭기 위한 장치였다고 볼 수 있다. 또 웃음으로 모든 권위를 해체시킬 수 있었다.

책 마지막 부분에는 돈키호테가 죽고 난 후 그의 묘비명이 나온다.

“그 용기가 하늘을 찌른/ 강인한 이달고 이곳에 잠드노라./ 죽음이 죽음으로도/ 그의 목숨을 이기지 못했음을 깨닫노라./ 그는 온 세상을 하찮게 여겼으니,/ 세상은 그가 무서워/ 떨었노라. 그런 시절 그의 운명은/ 그가 미쳐 살다가/ 정신 들어 죽었음을 보증하노라.”

(안 교수는 돈키호테 2권 423번 각주에 이렇게 써놨다. “돈키호테가 미쳐서 살다가 제정신을 찾고 죽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이 대목은 우리에게 심오한 삶의 교훈을 준다. 이성의 논리 속에서 이해관계를 따지며 사는 것이 옳은 삶인지, 아니면 진정 우리가 꿈꾸는 것을, 그것이 불가능한 꿈이라 할지라도 실현시키고자 하는 것이 옳은 삶인지를 말이다.”)

-우리는 스페인 하면 흔히 레알마드리드의 프로축구, 피카소와 달리의 그림, 요즘은 가우디의 건축 정도를 떠올린다. 하지만 문학은 잘 모른다. 스페인 문화는 어떤 것인가.

풍경이 영혼을 지배한다. 돈키호테 작품에는 ‘영혼의 혀가 펜’이라는 말이 나온다. 유럽을 가 보면 피레네 산맥을 넘어가면서 풍경이 싹 바뀐다. 오 이런 세상이 있나 싶을 정도다. 스페인은 아프리카 대륙과 14킬로미터밖에 안 떨어졌다. 비가 많지 않아 건조하다. 태양이 무척 강하다. 17개 자치지역으로 돼 있는데 지역마다 특색이 다 다르다. 북쪽은 유럽화돼 있지만, 중남부는 고유한 색채가 굉장히 강하다. 아랍인들이 800년간 지배했기 때문에 동양의 색이 남아있다. 우리는 유럽 하면 프랑스와 영국, 독일 문화에 익숙해져 있어서, 스페인을 이질적으로 느끼는 거다.

-그러고 보면 우리가 서양 문화에 대한 이해도 치우친 감이 있다.

귀국해서 보니 우리가 서구 문화에 대해 너무 편식한다는 게 보였다. 스페인의 유명한 17세기 극작품인 칼데론의 ‘인생은 꿈입니다’를 번역했더니 출판사들이 출판을 꺼렸다. 독자들이 잘 모르고, 경제성이 없다는 이유를 댔다. 내가 전공한 스페인 문학에 대한 모독이라는 생각에 직접 출판사를 차렸다. 직원도 없이, 서점에서 의뢰 오면 택배로 부쳤다. 책방에 진열했다가 도장이 찍힌 채로 반품이 돼온다. 그건 다시 못 판다. 그러니 마이너스다. 그래도 했다. 6종을 냈다. 시간이 지나니까 우리 문화의 인식 수준도 조금 높아졌는지 출판사에서 스페인 책도 내주는 곳이 생겼다. 한국번역원도 생겨서 숨은 텍스트 발굴해서 지원도 해주고 해서 출판사 일은 그만뒀다.

국내에 소개된 스페인 문학 책은 프랑스나 독일, 미국, 일본보다 훨씬 적다. 중세 텍스트는 말할 것도 없다. 가령, 돈환만 해도 우리는 그저 난봉꾼으로만 안다. 다른 나라를 통해서 아는 것이다. 하지만 처음 원전이 나온 곳이 스페인이다. 서양 문학사에서 5대 원형으로 꼽는 게 돈키호테, 햄릿, 돈환, 라 셀레스티나, 파우스트인데, 그 중 세 개가 스페인에서 나왔다. 돈환은 그냥 바람둥이가 아니다. 우리가 아는 이태리의 카사노바는 바람둥이면서도 여자와 사랑에도 빠진다. 하지만 돈환은 여자를 보는 순간 밤에 농락하고 그냥 버린다. 신의 계율까지 넘어서는 초인적인 절대적 힘을 행사하는 인물이다. 이런 인물이 다른 나라에서 차용되고 변형되면서, 카사노바보다 못한 인물로 그리고 있다. 우리가 정치경제 논리에 문화가 따라가다 보니 너무 한쪽 문화에 길들여진 감이 있다. 스페인 문학은 아주 사실적이고 솔직하다. 영화만 봐도 사람들이 놀란다. 어떻게 저런 걸 화면에 담나, 충격을 받는다. 프랑스 영화만 봐도 안개에 쌓인 신비로운 분위기인데, 스페인은 그대로 까발려놓는다. 우리가 편식 때문에 한쪽으로 길들여져 있어서 이 맛을 제대로 못 느낀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들은 대단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굳이 스페인 문학이나 문화를 알아야 할 이유는 뭘까?

우선 돈키호테 시대의 종교 정책은 타산지석이다. 닮아서는 안된다. 당시 스페인이 대제국에서 역사의 주변부로 물러난 것도 그 때문이었다. 반면 종교적 전통 때문에 좋은 점도 있다. 스페인 사람은 남에 대한 배려가 많고, 물질욕이 그렇게 많지 않다. 현재 주어진 삶에 만족할 줄 안다. 스페인이 유로화로 통합되기 전만 해도 경제가 지금 같지는 않았다. 그때는 정이 넘쳤다. 유로화로 통합되면서 갑자기 커피가 2배 이상 뛰었다. 다른 나라와 경쟁에 노출되면서 각박해졌다. 내가 매년 갈 때마다 조금씩 변해가는 걸 느낀다. 그래도 우리와는 다르다. 이번에 안달루시아 지방을 다니다가 무리해서 응급실로 실려갔다. 피 뽑고 링거를 맞는데 의료비를 걱정했다. 하지만 나오는데 돈을 안 받았다. 우리가 지금 스페인 경제 상황이라면 어느 예산부터 줄일까. 이 얘기를 하니까 경영학 교수가 “그러니까 못 살지”라고 했다. 우리는 경제 수치로 나라를 쉽게 평가하는데, 인간답게 사는지가 중요한 것 아닌가.

-요즘 ‘인구론’이란 말이 유행이다. ‘인문계 졸업생 90%가 논다’는 말의 약어다. 인문계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어떤 생각이 드나?

오늘 신문에도 고등학교에서도 문과가 줄고 있다는 기사를 봤다. 취직을 못하니까 그렇다. 우리 삶의 모든 게 취직과 연결돼 있다. 대학도 직장 가기 위한 과정이다. 명문대도 수능 점수도 그런 기준에 맞춰져 있다. 정작 하고 싶은 것은 뒤로 밀린다. 돈키호테는 하고 싶은 것을 한 사람이다. 하고 싶은 것을 하면 실패에 대한 의식도, 좌절에 대한 의식도 없다. 그냥 행복하다. 자존감이 넘친다. 우리는 금력 권력에 경도돼 있다. 좋은 대학 가고 좋은 회사 취직하는 데 관심이 집중돼 있다. 남의 인정을 받으려는 것도 사실은 자기 내면의 부족을 남의 평가로 메우려는 거다. 자기가 좋아서 하는 일은 남의 인정이 필요 없다. 나는 수익성 없는 출판사 만들어 책 내고 돈 안되는 작품을 번역해도 행복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했고, 그걸 남에게 줄 수 있어서 행복했다. 나는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정말 열심히 하다 보면 길은 보인다고 믿는다. 왜냐하면 하고 싶어 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기 에너지를 100% 쏟게 된다. 그러면 결과물도 좋게 나오게 돼 있다. 수능 점수에 의해 모든 것이 결판이 나는 사회는 문제가 있다. 사람들마다 성장의 시기가 다를 수 있다. 초등학교때 크는 아이가 있고 중고 시절에 크는 아이가 있듯이, 50대가 돼서 완숙해지는 사람도 있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에 도전하고 그것을 용납해주는 사회, 그런 부모가 됐으면 좋겠다.

-그래도 생계를 걱정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일자리가 우선 아닐까?

정말 좋아하는 일을 찾아 전력을 다하면 그것으로 먹고 살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얘기를 하면, 학생들은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게 뭔지 모르겠다”고 한다. 그걸 알려주는 게 부모 역할이다. 어릴 때 가능한 한 많은 환경에 노출시켜 줘야 한다. 거기에 한계가 있기 때문에 간접 경험인 독서가 중요하다. 나도 중학교 시절 헨렌 켈러를 키운 설리번 선생 이야기를 읽고 너무나 가슴에 와 닿았다. 남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려는 생각을 그때 했다. 교수가 되려고 했던 게 아니다. 교수가 되는 과정에서도 고생을 많이 했다. 번번이 꿈과 현실이 부딛혔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을 꾸준히 했다.

-불편한 질문이 될지 모르겠다. 안 교수만 해도 환경이나 여건이 좋았던 것 아닌가?

나는 오남매 중 셋째, 막내딸로 태어났다. 감사하게도 부모님은 내게 공부를 강요한 적이 한번도 없었다. ‘뭘 해라’가 아니라 옆에서 지켜만 보고 계시다가, 내가 관심을 보이는 게 있으면 지원해 주셨다. 그런 점에서는 환경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세르반테스는 어떤 사람이었나. 정말 어릴 때부터 비참한 생활에 시달렸다. 군대 가서 ‘외팔이’가 되면서도 끝내 세상에서 가장 훌륭하다고 평가받는 작가가 됐다.

좋은 환경에 타고 나면 될 것 같지만, 그걸 갖고도 이용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오히려 남에게 신세 지고 폐 끼치는 사람이 많다. 내가 스페인 시 수업 중에 학생들에게 우리 시도 포함해서 각자 인생의 시를 적어내 보라고 했다. 그리고 왜 그게 인생의 시가 됐는지 써서 내라고 했다. 몇 년에 걸쳐 원고를 모았다. 그걸 보면 눈물 나는 애들이 너무 많다. 고려대 학생 같으면 다 유복한 줄 알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나는 그런 줄 몰랐다. 어떤 학생은 부모가 이혼하고 병든 엄마 밑에서 크다가 자기가 부양하다시피해서 대학에 들어왔다. 그래도 이 학생은 엄마가 나를 버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다. 외부의 장학금 신청을 하는데 영어 점수가 있어야 한다며 고민하길래, “너는 인생이 네 스펙이다. 그걸 써서 찾아가서 제출해라”고 해서 결국 장학생 선발이 됐다.

나는 뜻이 있으면 길이 있고, 노력하면 된다고 믿는 편이다. 학생들이 제출한 시와 원고를 가지고 출판사에 얘기했다. 책으로 내서 수익은 여건이 안돼 공부 못하는 학생들 장학금으로 주고 싶다고 했다. 한 출판사는 고대 학생들 얘기에 너무 편중된 것 아닌가 하고, 다른 출판사는 시인들 저작권이 걸려 있어서 허락을 받거나 어떤 사람은 돈을 요구한다고 했다. 실망스러웠다. 이게 출판되면 그 시인도 영광 아닌가. 자기 시를 읽고 인생의 위로와 지침이 됐다는 건데. 아뭏든 환경을 탓하면서 주저앉는 것은 핑계다. 그렇게 보면, 돈키호테라는 사람은 맨날 우롱당하고 뺨을 맞는 광대였다. 하지만 다시 일어나고 또 일어났다. 왜? 자기 꿈이 있으니까 그랬다. 돈키호테는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새로운 자신을 만들어낸 인물이다. 그래서 스펙과 돈에 매달리는 지금 우리 사회에서 ‘돈키호테’는 꼭 읽어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대학 안의 인문학 사정과는 별개로 밖에서는 인문학이 열풍이다.

“인문학적 감성은 어렸을 때부터 많은 걸 접하면서 자란다. 인문학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남에 대한 배려다. 남을 생각할 때 사회에 정의가 이뤄진다. 인문학은 인간에 대한 이해다. 그게 한 권의 책으로, 한 번의 강의로 이뤄지기는 어렵다. 그런 류의 책들을 나도 읽어봤다. 그 책을 읽고 내가 바뀔 수 있을지. 그런 책을 통해 지식을 얻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마음을 감동시키지는 못한다. 당부하고 싶다. 다양한 책을 읽어라. 사람을 이해하는 눈을 키워라. 그러면 세상을 읽는 통찰력도 자란다.

안 교수는 ‘돈키호테’ 완역에 이어 내년 10월쯤 해설서 ‘돈키호테를 읽다’(가제)도 낼 계획이라고 했다.

◆돈키호테 줄거리(안영옥 교수 역자 해설에서 발췌)

스페인의 라만차의 어느 마을에 사는 알론소 키하노라는 이름의 쉰 살도 넘은 이달고(하층 귀족)가 그 신분에 어울리게 유유자적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러다가 당시 유행하던 기사도 소설에 빠져 밤낮 가리지 않고 식음을 전폐한 채 탐독한 나머지, 급기야 미치게 되어 스스로 편력 기사가 되기로 결심한다. 몸소 세상에 정의를 내리고 불의를 타파하며 약자를 돕겠다는 원대한 꿈을 세우고 실현하기 위해 모험에 나선다. 기사가 되기 위해 자신의 이름부터 기사 소설에 나오는 인물들처럼 ‘돈키호테 데 라만차’로 고친다. 그리고 이웃 마을의 촌부 알돈사를 사랑하는 여인으로 세워 ‘둘시네아 델 토보소’라는 이름의 공주이자 귀부인으로 격상시킨다. 그런 다음, 증조부로부터 내려오던 낡은 갑옷으로 무장하고 비쩍 마른 말인 로시난테에 올라 세 번에 걸쳐 길을 나선다.

첫 번째 출정에서는 객줏집 주인에게서 기사 서품을 받고 그의 충고대로 기사로서 갖추어야 할 것들을 준비하기 위해 다시 집으로 돌아오다가 안드레스 소년과 그의 주인 후안 알두도를 만난다. 돈키호테는 이들에게 정의를 행함으로써 자신의 정의가 어떤 것인지 전한다. 이어 만난 톨레도 상인들에게도 맹목적인 믿음을 요구하지만, 이에 대한 답으로 상인들의 우롱과 매질만 돌아온다. 만신창이가 되어 땅바닥에 나뒹굴며 자신이 만투아 후작의 로만세에 나오는 발도비노스라는 생각에 고통을 호소하고 있을 때, 이웃인 페드로 알론소가 그를 알아보고 집으로 데려오는 것으로 사흘간의 첫 출정은 끝난다. 집에서 몸을 추스르는 사이 마을 신부와 이발사와 가정부와 조카딸은 돈키호테 서재의 책 검열과 화형식을 행하고 그를 광기로부터 끌어내려 한다. 그러나 돈키호테는 종자 산초를 대동하고 두 번째 출정에 나선다.

두 번째 출정에서 돈키호테는 일신상의 위험을 돌보지 않고 꿈을 이루기 위해 모든 모험을 불사한다. 하지만 승리는 단 몇 차례, 거의 항상 부서지고 깨어지기만 할 뿐이다. 오로지 자신의 이상만을 추구하는, 그래서 실패에 대한 인식도 없는 광인 돈키호테, 그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현실을 잊지 않고 욕심을 채우며 겁도 많지만 그럼에도 어디까지나 주인에게 충실하기 그지없는 단순 소박한 종자 산초, 이 이상주의자와 현실주의자의 충돌은 독자들에게 끝없는 유쾌함과 해학을 선사한다. 다양하게 삽입된 모든 장르에 걸친 이야기들 속에서 산초는 수많은 속담과 의견들을 쏟아놓는다. 그리고 주인 돈키호테의 인간과 삶에 대한 이해를 비롯해 군사, 행정, 법, 자유, 평등, 인류애 및 경제와 문학, 통치, 철학 등에 관한 인본주의적이자 이상주의적인 해석이 넘친다. 이것은 사랑과 믿음과 소망의 주제와 맞물려 한 권의 금언집이나 도덕서로 탄생하고도 남을 정도이다. 돈키호테는 이 두 번째 출정에서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 우리에 갇히고 소달구지에 실린 채 집으로 돌아오게 된다. 이로써 돈키호테 이야기의 전편인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는 끝난다.

전편이 출판되고 10년이 지난 1615년, 돈키호테가 한 달간 집에서 요양하다가 세 번째로 집을 나서는 내용으로 속편 ‘기발한 기사 돈키호테 데 라만차’가 출판된다. ‘행동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제로 이달고에서 기사가 된 돈키호테와 그의 종자 산초가 한 일들이 책으로 출판되어 세간의 호평을 받았으며, 이제 세상 사람들 모두 이 두 사람에 대해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이야기는 시작된다. 전편을 통해 이들을 알게 된 공작 부부가 주변의 사람들과 함께 이 두 주인공을 가지고 집요하게 장난을 친다. 이런 장난과 더불어 돈키호테를 고향으로 데리고 가기 위한 삼손 카라스코 학사의 끈질긴 추적이 이어진다.

산초는 바라타리아 섬의 통치자가 된다. 돈키호테는 ‘하얀 달의 기사’로 분장한 삼손 카라스코에게 패해 편력 기사로서의 모험에 종지부를 찍고 집으로 돌아와 꿈을 잃은 자로서 우울증에 빠져 영면한다. 통치 경험을 마친 산초가 자신의 꿈은 어리석은 자의 소망이었음을 고백하는 모습 또한 의미심장하다. 자신의 당나귀에게로 가서 돈키호테와 지냈던 시절이 가장 평화롭고 행복했다는 그의 술회와 임종을 앞둔 돈키호테에게 어서 일어나 편력 기사로서의 모험을 찾아 다시 나가자며 터뜨리는 오열은, 현실 앞에서 꿈을 접을 수밖에 없는 나약한 인간의 모습으로 우리의 가슴에 비수처럼 아프게 꽂혀 온다. 세상의 진리를 절절하게 맛본 작가 세르반테스가 거대한 현실의 벽 앞에 허무하게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인간의 나약함을 포용하고, 그 약점까지 관용으로 사랑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