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식형 펀드의 '굴욕'이라 부를 만하다. 국내 증시가 몇 년째 2000 근처에서 맴돌며 부진한 성과를 내자 국내 채권형 펀드 설정액이 주식형 펀드보다 많아졌다. 7년 만이다. 주식 이외에도 별다른 투자처를 찾지 못한 사람들이 만기가 1년 미만인 국공채를 주로 편입하는 '초단기 채권'으로 올해만 1조원 넘는 돈을 넣었다.

◇국내 펀드 설정액, 채권이 주식 넘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11월 말 기준으로 국내 채권형 펀드 설정액은 63조4100억원이었다. 작년 말보다 13조원 넘게 증가한 것. 같은 기간 주식형 펀드는 설정액이 3조원 이상 감소해 62조5650억원이 됐다. 채권형 펀드 설정액이 주식형 펀드보다 많아진 것인데, 2007년 이후 7년 만이다.

투자자들이 그동안 주식형 펀드에 비해 관심을 덜 가졌던 채권형 펀드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는 수익률 때문이다. 국내 주식형 펀드는 올해 2.8% 손실을 냈지만 채권형 펀드는 4.4% 수익을 냈다. 한국은행이 올해 기준금리를 두 차례나 인하하면서 3년 만기 국고채 금리가 올해 초 2% 후반에서 최근 2% 초반으로 0.8%포인트 정도 떨어졌다. 채권 금리(가격)는 수익률과 반대로 움직이기 때문에 금리가 떨어진 만큼 채권 수익률이 올라간 것이다.

채권형 펀드 중에 올해 손실을 낸 상품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래에셋개인연금 전환 1(채권), 삼성코리아중기채권자 1[채권]_직판, 신한BNPP상대가치 1[채권](종류C-i) 등 일부 펀드는 6% 이상의 수익률을 기록했다.

반면 국내 주식형 펀드 투자자들은 올해도 힘겨운 시기를 보냈다. 코스피지수는 작년 말 2000을 웃돌았지만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가다가 1900 초반까지 떨어지기도 했다.

문남중 대신증권 자산전략실 연구원은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때 손실을 봤던 펀드 투자자들이 코스피지수가 2000을 넘으면 환매를 하는 패턴이 계속 나타나고 있다"면서 "주식형 펀드 설정액이 감소하는 것은 추세적인 현상으로 내년에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만기 1년 안 되는 국공채 편입 상품 인기

채권형 펀드 중에서도 '초단기 채권'이라고 불리는 상품이 인기를 끌고 있다. 만기가 3~9개월 정도인 국채, 지방채, 통안채, 특수채를 계속 편입하는 상품이다. 키움투자자산운용이 지난 2월에 내놓은 우리단기국공채 1[채권]C1로는 9000억원이 넘는 돈이 들어왔다. 한화단기국공채(채권) 종류C로는 6200억원이 순유입됐고 유진챔피언단기자(어음)Class-A는 출시된 지 일주일도 안 돼 13억원이 들어왔다.

수익률이 2% 중후반으로 또 다른 단기 금융 상품인 머니마켓펀드(MMF)보다 높다는 것이 장점 중 하나다. 한화단기국공채(채권) 종류C는 올해 수익률이 2.8%인데 MMF는 평균 금리가 2% 초반이다.

증권업계 관계자들은 국내에서는 주식, 부동산 등 투자할 만한 대상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단기간 자금을 맡겨두려는 투자자들이 많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상진 한화자산운용 부장은 "내년 미국이 기준금리를 인상할 예정이기 때문에 만기가 긴 채권에 투자하기는 부담스러운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금은 또 다른 단기 금융 상품인 MMF로도 향하고 있다. 작년 말 66조원대였던 MMF 잔액은 11월 중순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처음으로 100조원을 넘었다. 임광택 한국투자신탁운용 상무는"안전한 국공채에 주로 투자하는 상품에 대한 관심은 당분간 꾸준히 이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