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초 홍역을 치렀던 신흥국 통화 가치가 또다시 곤두박질 치고 있다. 금리 인상을 기대한 투기수요가 몰리면서 미 달러화 가치가 뛰자, 경제 기초체력이 약한 신흥국에서 자본이 이탈한 탓이다. 각국 중앙은행은 금리 인상과 외환시장 개입 정책으로 맞서고 있다.

8일(현지시각) 미 달러화 대비 러시아 루블화는 달러당 53.68루블에 거래됐다. 루블화 가치는 5년 만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고 마켓워치는 전했다. 브라질 헤알화 환율은 달러당 2.6헤알을 기록했다. 헤알화 가치는 올 들어 43% 떨어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 랜드화 가치는 6년 만에 가장 낮다. 미 달러화 대비 랜드화 환율은 전날보다 1.6% 상승해, 달러당 11.53랜드에 거래됐다. 경상수지 적자 규모가 커질 것이란 전망에 인도 루피화 환율은 달러당 61.90루피로 상승했다.(루피화 가치 하락)

미 달러화 대비 신흥국 통화 가치를 산출한 JP모건 신흥통화지수는 14년 만의 최저수준이라고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도했다. 2000년 집계를 시작한 이후로 가장 낮다.

러시아·브라질 등 원유 수출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신흥국들의 충격이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1월 인도분 서부텍사스산 원유(WTI) 선물 가격은 전날보다 4.2% 내린 배럴당 63.05달러에 거래됐다. 일일 하락폭으로는 2009년 7월 이후 가장 크다. 런던 ICE선물시장에서 거래된 북해 브렌트유도 4.2% 하락한 배럴당 66.19달러에 거래됐다. 브렌트유 가격은 지난 2009년 9월 이후 최저 수준이다.

미국 경제지표가 호조를 보이는 상황도 신흥국 통화가치엔 불리하게 작용한다.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연준)가 기준금리를 인상할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지난주 발표된 미국의 11월 비농업부문 일자리 증가 건수는 32만1000건으로 집계됐다. 월간 기준으로 지난 2012년 1월 이후 가장 많았다. 고용지표는 물가 상승률과 함께 중앙은행이 금리 정책을 결정할 때 참고하는 주요 기준이다.

신흥국 증시에 대한 투자자들의 불안감도 커졌다. 이날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신흥지수는 전날보다 0.9% 하락한 976.84를 기록했다. 신흥국 20개국의 주가지수를 묶어 산출한 블룸버그 신흥국지수는 10일(거래일 기준) 연속으로 내렸다. 투자정보업체 모닝스타의 집계에 따르면, 지난 8~10월 석 달 동안 신흥국 증시에서 유출된 자금은 26억달러(약 2조8790억원)에 달한다고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자국 통화의 가치가 가파르게 떨어지자 중앙은행들이 대응에 나섰다. 수입물가가 급등해 물가가 불안해질 것이란 우려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러시아 중앙은행이 오는 11일 통화정책회의에서 현재 연 9.5%인 기준금리를 추가로 인상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이미 올 들어 기준금리를 4차례 인상했다. 환율을 안정시키기 위해 이달 초 740억달러어치의 외화를 풀었지만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브라질 중앙은행도 두 달 연속으로 기준금리를 올렸다. 이달 초 12월 통화정책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11.75%로, 전달보다 0.50%포인트 인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