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현 지음|공간서가|432쪽|2만8000원
대형서점에 꽂힌 건축서들은 대개 두 부류로 나뉜다. 단독주택을 싼 값에 짓는 법을 소개한 집짓기 실용서가 하나. 다른 하나는 국내·외 유명 건축가의 건축 철학을 담은 책이다. 후자의 경우 국내에도 자주 소개된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安藤忠雄)의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대표적이다. 그에 반해, 국내 건축의 여러 문제를 묻고 답하는 데 골몰한 책은 근래 보기 어려웠다.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인 저자가 쓴 이 책은 그런 점에서 반갑다.
구구절절한 개인사나 어려운 미학 용어만 잔뜩 앞세운 여느 건축서들과는 다르다. 건축가 김인철이 추천사에서 적절히 요약한 것처럼, 40여년 간 한국 건축계 중심에서 건축학자이자 건축가로 살아온 저자가 바라본 '감출 수 없는 우리 시대의 사실이며 반성문'이다.
총 7장에서 1~2장은 '공동성(共同性·commonness)'을 근거로 저자의 건축관(觀)과 현대건축에 대한 생각을 밝힌다. '공동성'이란 키워드는 사전에 없는 단어다. 김 교수는 "건축에는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다가오는 가치와 본질이 있다"(9쪽)며 이를 공동성이라고 명명한다. 모든 사람(사회)은 보편적인 건축 감각과 의지를 갖고 있다는 뜻이다. 중정(中庭·집 안의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마당)을 공동성의 한 예로 든다.
"(중정은 문화와 민족이 다른 곳에서도 잘 쓰인다) 중정이라는 건축 형식은 지배자의 궁전에도 쓰이고 서민의 집에도 쓰이며 종교건축에도 쓰이고 주택에도 쓰인다. 중정형 주택이 밀집하며 마을과 도시를 이룬다. 이렇게 널리 쓰이는 이유는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의 개체성을 보장하면서 도시의 밀도를 높이는 아주 유효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어떻게 이런 것이 가능할까? 이것은 인간 모두에게 속하는 건축이라는 공동의 질서가 있기 때문이다."(45쪽)
공동성에 기초한 건축은 "사람들(또는 건축주)이 장소와 공간에 대해서 무언가 분명하게 공동으로 이해하는 힘"(32쪽)을 탐구해 건축물로 구현하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답은 이미 인간과 시간과 땅속에 본질로서 주어져 있으며, 건축은 그것을 각종의 기술과 재료로 번역하는 것"(33쪽)과 다르지 않다고 본다.
3·4·5·7장은 한국 건축계에 팽배한 허위의식을 통렬히 비판한다. 그리고 방치되다시피한 근대건축과 공공건축, 건축교육에 대한 쟁점을 끌어와 따진다. 6장은 그동안 홀대받던 건축가의 성명표시권과 건축단체 간의 반목 등 한국 건축계의 현안을 다뤘다.
눈길을 끄는 부분은 3장 '의심해야 할 건축의 논점들'이다. 특히 이런 대목들. "비움. 한때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우리를 현혹하는 말이다."(210쪽) "유독 유명 건축가들은 '~미학'이라는 말을 참 많이도 쓴다. (중략) 그러나 '~미학'이라는 말은 말하고 싶은 바가 있기는 한데 정확하게 말할 줄 모를 때 적당히 뭉개 버릴 때 쓰는 말이고, 없는 내용을 있는 것처럼 달콤하게 덮는 당의정(糖衣錠) 같은 것이다." (219쪽)
이 날선 비판들은 국내 몇몇 기성 건축가들에게 그대로 날아가 꽂힌다. 저자는 "지금 우리 건축은 허학(虛學)"이라며 건축가가 무슨 특권이라도 있는 양 "실제와 거리가 먼 관념적 언어로 치장해도 남이 잘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믿는"(191쪽)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건축가=창조자'라는 사고 방식에서 비롯된 이기적 배타성을 국내 건축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는다. 건축가들이 파벌을 만들고, 건설·감리업계와 신경전을 벌이는 것, 학교는 교육에만 열 올릴 뿐 산업과 제도에는 무관심한 것도 모두 건축계의 이기적 배타성에서 나온다고 본다. 건축가들이 자기 작업을 작품으로 승격시키기 위해 미학 용어까지 총동원하면서, 정작 사회 속에서 건축 산업이 직면한 중차대한 문제들을 무심하게 방치한다고 지적한다.
불필요한 감정 싸움을 의식한 듯, 저자는 최근 자신의 블로그에 설명을 부연하기도 했다. "비움의 미학을 표방하는 건축을 비판하려고 (이 책을) 쓴 것이 아니다"면서 "나의 관심은 건축의 공동성이며, 내 건축의 목표가 비움의 건축을 비판하는 데 있지 않다"고 썼다.
1990년부터 올해까지 저자가 각종 매체와 자신의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주제와 현실에 맞게 52편으로 추린 것이다. 글은 사실과 논리로 탄탄하지만, 행간에는 한국 건축계에 대한 안타까움이 역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