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석유수출국기구(OPEC) 국가 중 감산 없는 저유가 치킨게임으로 미국과 승부를 볼 수 있는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오스트리아 빈에 위치한 OPEC 본부.

국제 석유시장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미국과 석유수출국기구(OPEC) 간의 힘겨루기가 '치킨게임'(먼저 겁먹고 피하는 쪽이 지는 담력 테스트)으로 번지고 있다.

1980년대 중반 오일쇼크 당시와 비슷한 상황으로 치달을 것이라는 우려도 있지만 미국이 생산하는 셰일오일의 채산성이 높아 과거와는 상황이 다르다는 의견에 더 무게가 실리고 있다.

3일(현지시각) CNN머니는 "국제유가 하락에도 OPEC가 원유 생산량을 줄이지 않기로 지난주 결정한 것은 급성장하는 미국의 셰일오일 산업을 싹을 잘라버리려는 의도"라고 분석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약 7만8000원)선 아래로 떨어진 상황이어서 OPEC 회원국들은 물론 미국의 에너지기업에도 상당기간 큰 손실이 불가피해 보인다.

CNN머니는 사우디아라비아를 비롯한 OPEC 회원국들이 현재 상황을 1986년 오일쇼크 당시와 비슷한 구도로 몰고 가려 한다고 덧붙였다. 당시 사우디아라비아가 석유 생산량을 급격히 늘리면서 유가가 폭락하자 미국 텍사스와 오클라호마, 루이지애나 등의 개발업체들이 줄줄이 파산했다.

업계 전문가들은 그러나 시추 기술의 발달 등으로 미국 원유 채굴의 채산성이 좋아져 오히려 OPEC 회원국들이 입을 피해가 더 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최근 보고서에서 저유가 국면을 가져온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꼽히는 미국발 '셰일원유 혁명'의 발원지인 노스다코다주의 바켄 유전의 경우 "국제유가가 배럴당 42달러(약 4만6800원)까지 떨어져도 수익을 낼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에너지 컨설팅 업체 리스타드 에너지의 퍼 매그너스 니스빈 연구원도 관련 인터뷰에서 "미국의 셰일에너지 업계의 상황 적응력은 놀라울 정도"라면서 "조금이라도 수익이 발생하는 한 생산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시카고에 본사를 둔 프라이스퓨쳐스그룹의 필 플린 수석 애널리스트도 "지금은 1980년대가 아니고 시장 상황도 그때와 다르다"는 점을 이유로 "OPEC가 이후 상황을 수습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며 맞장구를 쳤다.

여기에 더해 OPEC 국가들의 경제 여건도 제각각이어서 일치된 목소리를 내기 어렵다는 점도 시간이 흐를수록 부담으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감산 없는 저유가 치킨게임으로 미국과 승부를 볼 수 있는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뿐이라고 입을 모은다.

핵무기 개발 의혹으로 국제사회로부터 경제적 제재를 당하는 이란이나 60%가 넘는 연간 인플레이션으로 경제위기의 몸살을 앓는 베네수엘라의 경우는 상황이 특히 심각하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은 지난주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약 11만원) 수준을 회복할 때까지 다른 OPEC 국가들에 감산 압력을 넣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수의 전문가는 올해 7월만 해도 100달러선을 유지했던 국제유가가 다시 그 수준으로 회복되는 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리스타드의 니스빈 연구원은 "100달러선을 회복하는데 5년 정도 시간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했다.

데이비드 스페겔 BNP파리바 리서치센터 글로벌 담당 대표는 "만일 유가가 내년에도 배럴당 70달러선에 머문다면 OPEC 국가들이 입게 될 손실은 (지난 3년 평균인 배럴당 105달러였을 때와 비교해) 3160억달러(약 352조8000억원)에 달할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와 노르웨이, 멕시코 등 OPEC에 소속되지 않은 산유국의 피해까지 포함하면 저유가가 지구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상대적으로 상황이 낫다고는 하지만 치킨게임이 계속될 경우 미국 경제도 만만치 않은 타격을 입게 될 것은 자명하다. 더구나 양적완화 종료로 유동성이 부족해지게 되면, 지난 10년간 고유가를 바탕으로 엄청난 금액의 오일머니를 전 세계에 공급해온 카타르와 아랍에미리트(UAE) 등 OPEC 국가들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질 수 있다는데 미국의 또 다른 고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