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트에서 떨이 상품만 사 먹으며 모았던 돈인데, 1년도 안 돼 -40%네요. 남편은 아직 모르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요?"(주부 A씨)
"요즘 밤잠 못 이루고 은값과 금값을 수시로 확인합니다. 원자재에 투자한 저 자신이 너무 원망스럽네요."(회사원 B씨)
금·은·원유 등 원자재 가격이 뚝뚝 떨어지면서 재테크 전선에 비상이 걸렸다. 주요 원자재 가격은 최근 4~5년간 최저치를 기록하며 추락을 면치 못하고 있다. 금융회사 창구에는 가격 하락세가 언제까지 계속될 것인지, 앞으로 얼마나 더 빠질 것인지 묻는 투자자의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 이선욱 삼성증권 SNI강남파이낸스센터 지점장은 "보수적인 성향의 투자자들이 은행 예금 대안으로 원자재 값이 50% 이상 떨어지지 않으면 6~7% 수익이 예상되는 파생결합증권(DLS)을 많이 선택했는데 최근 가격 급락으로 손해가 막심해 충격이 크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반면 원자재 가격의 추락을 투자 기회로 보는 사람도 생기고 있다. 원자재 가격이 바닥이라고 생각해 신규 투자를 단행하는 저가 매수세가 늘어나면서 원유 ETF 등 일부 상품은 1일 하루 거래량이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연일 급락하는 원자재 가격
국내 투자자들이 많이 투자한 원자재는 금·은·원유 등 크게 3가지로 압축된다. 이들 못난이 3형제는 글로벌 경기 부진, 달러화 강세 등 다양한 악재가 겹쳐지면서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 28일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10.2% 하락해 배럴당 66달러를 기록했다. 지난 2009년 9월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이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감산 협의 실패가 직접적인 원인으로, 공급 과잉으로 가격 추가 약세가 불가피하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골드만삭스는 내년에도 유가 하락세가 이어지고, 석유 수입과 수출 국가 간 명암이 갈리는 '새로운 오일 질서'가 생겨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손재현 대우증권 수석연구원은 "원자재는 대표적인 인플레 헤지 수단인데 최근 유가 폭락으로 인플레이션 기대감이 꺾여 버렸다"면서 "단기간 가격이 많이 하락해 일시 반등할 순 있어도 부진한 흐름은 상당 기간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금값은 달러 강세 여파로 지난달 온스당 1200달러 아래로 떨어졌다. 은은 태양광 업종에 많이 쓰이는데, 최근 유가 하락으로 태양광 수요가 감소할 것이란 예상이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강유진 우리투자증권 연구원은 "금과 은은 미국의 금리 인상이 이뤄지는 내년 2~3분기까지 가격 출렁거림이 클 것으로 보인다"면서 "미국이 금리를 인상한 이후에는 가격이 안정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렇다면 기존 원자재 투자자들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까. 김종철 신한금융투자 연구위원은 "원자재 DLS는 낙인(손실확정 기준선)을 찍었더라도 만기가 2~3년 정도 많이 남은 경우라면 환매하지 말고 기다리는 것이 손해를 덜 수 있다"고 말했다. 원자재 가격 변동이 워낙 극심하니, 향후 단기 반등하는 시점을 노려 빠져나오는 전략이 유리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원자재에 전체 자산의 5% 이상 투자돼 있다면 일부 손해를 보더라도 비중을 축소하는 것이 좋다고 권하는 전문가도 있다.
◇큰손들은 원자재 탈출… 반등 노린 역발상 투자도
364억달러의 기금을 운용하는 미국의 하버드대학기금은 지난 2008년 8%에 달했던 원자재 투자 비중을 올해 2%까지 줄였고, 2015년엔 완전히 비우기로 결정했다. HSBC의 제임스 스틸 연구원은 "미국 양적완화가 인플레이션을 촉발할 것이란 기대로 최근 몇 년간 글로벌 자금들이 원자재에 많이 투자했지만 이런 예상이 들어맞지 않자 인플레 헤지 자금들이 빠르게 빠져나가고 있다"고 분석했다. 국내 투자자들도 원자재 펀드에서 대거 발을 빼고 있다. 지난 2012년 5000억원을 웃돌던 원자재 펀드는 올해 2900억원대까지 쪼그라들었다.
반면 시장 전망이 비관 일색인 지금이야말로 원자재에 진입할 기회라는 역발상 투자도 등장하고 있다. 지금보다 원자재 가격이 50~60% 이상 하락하지 않으면 5~6% 수익을 챙길 수 있는 투자를 선택하는 것이다. 조재영 우리투자증권 PB부장은 "원자재는 생산원가 개념이 있기 때문에 끝없이 하락할 수만은 없다"면서 "지난주 발행된 금·은 DLS에 5000만~1억원씩 넣는 자산가가 상당수 있었다"고 말했다. 단기 반등을 노린 공격적인 자금이 투자에 가세하면서 원자재 관련 ETF는 거래량이 평소 대비 최대 10배 늘었다. 평균 2만~3만주였던 KODEX 은(銀)선물 ETF 거래량은 1일 30만주로 급증했고, TIGER 원유 ETF 역시 30만주 넘게 거래되어 출시 이후 최대 거래량을 기록했다. 이날 원자재 ETF에 투자한 회사원 이모(40)씨는 "몇 년 전에 비하면 금값과 은값이 너무 싸 보이고 최소한 손해는 안 볼 것 같아 소량 담아 봤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