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감독원이 확보한 스탠다드차타드(SC)그룹의 내부 보고서는 1조원이 넘는 배당금을 영국 본사로 가져가기 위한 SC그룹의 '실행 계획서'이다. 지난 3월 작성된 14쪽짜리 보고서를 보면 SC그룹은 김앤장과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 KPMG 등 유수의 로펌과 컨설팅 회사에서 조언을 받아 11억달러, 한국 돈으로 1조1620억원을 송금할 목표를 세웠다고 밝히고 있다. 그리고 영국으로의 거액 배당을 관철시키기 위해 아제이 칸왈 한국SC은행장은 물론 피터 샌즈 회장 등 SC그룹의 주요 경영진이 누구를 언제 면담해야 할지를 세세하게 적시하고 있다.
이에 대해 아제이 SC은행장은 로비 의혹에 대해 즉답을 피한 채 "배당 자체를 안 하는 건 아니지만 1조원이 넘는 정도의 큰 숫자는 아니다"고 해명했다. 그러면서 "배당은 은행이든 기업이든 다 하는 정상적인 행위이며, 법에 위배되는 일은 절대 안 한다"고 덧붙였다. SC은행은 올해 3분기까지 114억원의 적자를 내 연간 적자를 면하기 어렵다는 전망이다.
한 전직 은행장은 "배당은 주주들을 배려하는 경영 행위로 장려할 만하다. 하지만 적자임에도 불구하고 배당하는 경우는 글로벌 기업이나 국내 기업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면서 "더욱이 배당을 강행하기 위해 정·관계 로비를 계획한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상황별 로비 방안도 구체적 제시
보고서는 고배당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부닥칠 수 있는 난관을 네 가지 시나리오별로 구분해 로비 대책을 마련해놨다. 먼저 한국 언론이 외환은행을 팔고 나간 론스타에 대해 적대적인 것처럼 SC그룹의 고배당에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금융 당국이 고배당에 드러내놓고 반대할 경우 그리고 금융 당국이 드러내고 배당에 반대하지 않지만 SC그룹의 구조조정 계획에 제동을 거는 등 세 가지 상황을 가정했다. 이 경우 SC그룹은 정부 최고위층에 접근해 당근책을 제시해서 계획된 배당을 가능하도록 한다는 대책을 세워놨다. 최고위층으로 청와대(Blue House)가 포함되는 것으로 적시돼 있다. SC그룹은 당근책으로 현 정부가 육성하려는 5대 서비스 분야인 금융산업을 조언하는 방안과 중소기업 대출 지원 확대 등을 검토키로 하는 등 한국 정부를 회유해 고배당을 관철시키려는 인센티브를 세워놨다.
다른 상황은 국내 언론의 고배당에 대한 적대적 보도로 인해 SC그룹 주주들이 한국에서의 소매금융 철수를 요구하는 것인데, 이때엔 한국SC은행에 대해 구조조정(점포 정리, 인력 감축 등을 의미)을 가속화하는 것으로 보고서에 나와 있다.
◇계열사 매각도 고배당 일환
보고서는 한국SC은행이 올해 중간 배당으로 5360억원을 SC은행에서 SC금융지주로, 이를 다시 동북아 총괄본부(SC NEA)로 송금하고 내년 3월 주주총회를 거쳐 6260억원을 역시 동북아 총괄본부로 송금해 총 1조1620억원의 배당금을 영국에 송금하는 계획을 담고 있다. 이 경우 한국 언론의 반응이 좋지 않을 경우엔 중간 배당 없이 내년 3월 주총에서 한 번에 1조1620억원의 배당을 결의하는 대안도 담고 있다.
지난 6월 SC저축은행과 SC캐피탈을 일본계 대부업체인 제이트러스트에 매각하고 9월에 SC펀드서비스를 은행에 합병한 것도 고배당 계획의 일환이었다. 보고서는 SC펀드서비스를 은행에 합병시키면서 확보되는 현금을 한국SC지주회사로 송금하고, SC저축은행과 SC캐피탈 매각 대금도 배당금으로 활용해 한국SC지주사를 거쳐 한국SC지주사의 모회사인 'SC동북아(NEA)'로 송금한다는 계획을 포함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 송금 목표액과 관련해 '본사 사옥과 제일빌딩을 매각할 경우엔 배당 가능한 금액이 증가한다'고 적시해 배당금을 늘리기 위해 서울 공평동 본사 사옥과 서울 신세계 옆의 구제일은행 본점을 파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보인다.
◇한국 전직 고위 관료 역할, 금융 수장 교체도 언급
SC그룹은 또 전직 고위 관료의 역할을 명시하고, 금융 당국 수장들의 교체 가능성도 감안하는 치밀함을 보였다. 예컨대 SC그룹이 (고)배당을 실행하는 시점에는 금융위원장과 금융감독원장이 같은 사람이 아닐 수 있다(교체될 수 있다)거나 권태신 SC은행 이사회 의장(전 국무조정실장)과 아제이 은행장의 부임 자체가 관료들을 만나 (배당 등에 대해) 대화할 수 있는 명분을 가질 수 있다는 식이다. 국내 금융 수장의 인사까지 내다보며 배당 계획을 짜고, 전직 고위 금융 관료를 적극 활용해 배당 계획을 이루겠다는 것이다. 보고서엔 한국SC은행의 사외이사들을 활용해 정부 고위 당국자들을 목표로 삼아 비공식적으로 접근한다는 표현까지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