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를 막론하고 주요 기업에서 여성이 최고기술책임자(CTO)를 맡고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여성 엔지니어 자체가 적은 탓이다. 삼성전자의 경우에도 국내 엔지니어 4만3900여명 중 여성은 15%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네이버의 자회사인 라인은 세계적으로도 드문 기업이다. 여성인 박의빈(40·사진)씨가 CTO로 있다. 그는 전 세계 6억명이 사용하는 메신저 서비스 '라인'에 관한 기술 개발을 총괄하고 있다. 그의 판단에 따라 라인에 어떤 기능을 넣고 뺄지, 무슨 기능을 먼저 개발할지가 결정된다.

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그는 2000년 PC통신 서비스업체인 나우콤에서 개발자 경력을 시작했다. 이후 검색업체 첫눈에서는 개발팀장을 맡아 네이버에 도전하는 검색엔진 개발을 주도했다. 네이버가 첫눈을 인수한 후에는 일본 도쿄로 건너가 네이버재팬(현 라인)에서 7년간 근무하며 이해진 네이버 의장과 함께 라인의 대성공을 이끌어냈다.

최근 경기도 성남시 서현동 라인 사무실에서 만난 박 CTO는 "항상 재미있을 만한 것에 도전해왔더니 여기까지 왔다"고 말했다. 그는 한 달의 절반은 일본 도쿄의 라인 본사에서, 나머지 절반은 서울을 비롯해 대만 타이베이, 일본 후쿠오카 등 라인 개발팀 사무실이 있는 곳으로 출장을 다닌다. 그는 "내가 생각하는 CTO는 밑바닥에서 현장 개발자들을 받쳐주는 것"이라며 "지금도 일선 개발자들로부터 직접 제안을 듣는다"고 했다.

박 CTO는 자신의 업무 스타일에 대해 "즐겁게 몰두해 일하면서 그 기운을 주변에 퍼뜨리는 것"이라고 했다. 그는 자신이 "문제 해결에 완전히 집중하면서 이 과정에서 재미를 느끼는 타입"이라며 "이렇게 일하다 보면 주변도 같이 몰두해 있었다"라고 말했다. 그는 "여성인 점을 의식하며 일한 적은 한번도 없었지만, 굳이 여성으로서 강점을 꼽자면 이런 공감 능력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그와 함께 일한 이들 역시 그의 공감 능력을 높게 평가했다. 예전에 박 CTO를 검색업체 '첫눈'의 개발팀장으로 발탁한 장병규 본엔젤스 대표는 "기술과 사업에 대한 이해도 높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할 줄 아는 사람"이라며 "공감 능력이 바닥인 사람을 묶어 함께 일할 수 있게 만드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박 CTO의 당면 목표는 전 세계 인재가 공감할 수 있는 개발 조직을 만드는 것이다. 그는 "한국·일본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만으로는 서비스를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라인이 커졌다"며 "올해부터는 서비스만 아니라 개발 조직도 글로벌화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한국·일본 외에 아시아·북미·유럽의 개발자를 대거 채용하겠다는 뜻이다.

"이미 일본에서는 유명 IT기업과 라인을 저울질하다 라인에 입사한 사람도 많아요. 빠르게 성장 중인 회사에서 신나게 일하고 싶은 개발자는 언제든지 환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