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법인이 제약사의 효자(孝子)로 떠오르고 있다. 국내 시장은 포화 상태에 다다랐지만, 해외 법인이 진출한 신흥국은 경제성장 가도를 달리면서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작년 국내 제약시장 규모는 약 13조6220억원으로 2012년 대비 0.1% 성장하는 데 그쳤다. 사실상 제로(0) 성장이다. 업계에서는 올해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시장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해외 법인·지사가 새로운 매출원으로 떠오른 것이다.
해외 시장에 가장 앞서 진출한 업체는 대웅제약이다. 대웅제약은 이미 중국·베트남 등 해외 7개 법인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작년에는 중국의 원료 의약품 제조사인 '바이펑'을 180억원에 인수해 중국 현지 생산 기지도 확보했다. 여기에 의약품 수출 실적도 좋아지고 있다. 이 회사의 주름 개선 보툴리눔 독소 제제인 '나보타'는 세계 60여 개국에서 7000억원 규모의 수출 계약을 기록했다.
녹십자는 안후이성(安徽省) 화이난시(淮南市)에 세운 중국 현지 법인인 '녹십자 생물제품 유한공사'에서만 올해 매출 600억원을 기대하고 있다. 작년 매출 300억원의 두 배이다. 2020년까지 중국에서만 2300억원의 매출을 기대하고 있다.
녹십자는 현지 법인을 홍콩 증시에 상장하기로 하고 현재 준비 중이다. 국내 제약업체로는 처음 현지 증시에 상장하는 것이다. 또 녹십자 캐나다법인은 올 4월 캐나다 퀘벡주(州)에 1800억원 규모의 혈액분획제제 공장 설립 계약을 맺기도 했다.
한미약품은 현지 법인 북경한미약품을 세워 중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작년 중국 시장에 어린이용 정장제, 기침가래약 등 20여개 제품을 수출해 약 9억6000만위안의 매출을 기록했다. 2008년 10월 연구원 160여명으로 북경한미연구센터를 만들어 연구·개발(R&D) 기능까지 강화했다. 덕분에 한국·중국에서 동시 임상시험이 가능해 해외 출시 일정을 앞당길 수 있을 전망이다.
업계에서는 해외 진출 러시는 역으로 국내 시장에서의 고전(苦戰)을 반영한다고 분석한다. 대웅제약의 경우 신약 개발에서 아직 특별한 결과가 없다.
해외에서 도입한 약품은 특허가 종료되면서 복제약이 범람해 고전 중이다. 한미약품 역시 연구개발에 힘을 쏟고 있지만 아직 별다른 성과는 없다. 강력한 영업력을 내세워 급성장했지만 최근 리베이트 금지 등으로 영업 환경이 악화하면서 국내에선 더는 성장 여력을 찾기 어렵게 됐다. 녹십자는 국내 제약업계 2위이지만 혈액제제·백신에 치우쳐 제품군이 다양하지 못한 태생적 한계가 있다.
물론 개별 업체의 상황과 상관없이 국내 시장의 성장세가 정체된 만큼 글로벌 시장 진출은 필수적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최근 제약업체들의 신규 해외 진출이 늘고 있다.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 따르면 작년 국내 제약업계의 해외 직접 투자는 5121만달러로 2012년의 4254만달러보다 20.4% 늘었다.
동아쏘시오그룹은 올 2월 브라질에 해외 법인을 세웠다. 전문의약품 계열사인 동아ST는 인도네시아 제약사인 '컴비파'와 제휴해 현지에 의약품 생산공장을 세우기로 했다. JW홀딩스 역시 올 7월 필리핀 마닐라에 현지 법인을 세웠다.
동아ST 박찬일 사장은 "국내 제약 시장만으로 매출을 비약적으로 늘리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해외 지사·법인은 포화 상태인 국내 제약 시장의 숨통을 틔워줄 출구"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