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 리베이트 단속이 강화된 이후 제약사 영업사원들은 '감성 영업'에 더 치중하고 있다. 의사와 인간적으로 친밀한 관계를 쌓아두면 차별성 없는 제네릭(복제약)을 내밀어도 해당 제품을 선택해주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부가 리베이트 쌍벌제, 투아웃제와 같은 강력한 규제를 잇따라 내놓으면서 국내 제약사 영업사원들의 영업 방식이 예전과 많이 달라졌다. 음성적인 불법 행위가 완전히 사라진 건 아니지만 공공연히 리베이트를 제공하던 과거와는 눈에 띄게 다른 모습이다.

변화된 환경에 적응해가는 영업사원들은 요즘 어떤 일에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을까. 국내 중·대형 제약사 8곳에 속한 영업사원 10명에게 질문을 던졌다. 별도의 객관식 보기는 주지 않고 자유롭게 답변하도록 했다. 비슷한 내용은 하나로 합쳤다.

조사에 응한 영업사원들은 “의사의 마음을 얻기 위해 행하는 ‘감성 영업’이 평소 가장 중요한 업무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고 입을 모았다. 국내 제약사의 감성 영업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 알아봤다.

◆ '예매신' 섭외해 프로야구 표 구하고, 개원 기념식때 가족 영상편지 준비

대웅제약(069620)에 근무하는 허모 대리는 국민 스포츠인 프로야구를 감성 영업에 활용한다. 티켓을 구하는 것 자체가 쉽지 않은 주말 경기때 좋은 자리를 대신 예매해주는 전략이다. 허 대리는 “예매를 잘하는 지인에게 부탁해 전망이 좋은 자리를 확보한다”며 “의사의 동료나 가족 모두 좋아해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또 허 대리는 일부러 식사시간에 맞춰 의사들을 찾아가기도 한다. 그는 “병원장이 혼자 사는 미혼 남자이거나 50세 이상일 경우 저녁을 거의 혼자 먹는다”면서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함께 저녁 식사를 하면서 개인적인 친분을 쌓는다”고 전했다.

갑작스럽게 쏟아지는 소나기를 감성 영업에 활용하는 영업사원도 있다. JW중외제약(001060)에서 일하는 조모 주임의 차에는 10여개의 우산과 바구니가 항상 실려 있다. 바구니에는 ‘양심 우산입니다. 자유롭게 사용하신 후 돌려주세요’라고 써있다.

조 주임은 “환자 입장에선 병원이 제공하는 서비스처럼 보이기 때문에 재방문 효과를 거둘 수 있다”면서 “자연스레 병원과 나의 관계도 돈독해진다”고 말했다.

한미약품(128940)소속의 이모 대리는 연인에게 프로포즈를 할 때나 사용될 법한 영상편지를 영업에 활용해 병원장의 신뢰를 얻었다.

병원장 가족들의 영상편지를 미리 녹화한 뒤 병원 개원 15주년 기념 회식때 깜짝 공개한 것이다. 이 대리는 “약간 술이 오른 상태에서 영상을 본 병원장님이 감동해 눈물을 흘리더라”며 “이후 개인적인 친분이 두터워져 영업에 도움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일동제약(249420)에서 영업사원으로 일하다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기 위해 최근 퇴사했다는 윤모씨는 “난방이 취약한 개인병원의 경우 창문에 문풍지를 붙여주면 좋아한다”고 설명했다.

이밖에도 제약사 영업사원들은 학창시절 전공을 살려 병원내 납땜 작업을 도와주거나 병원 직원들의 각종 기념일을 기억했다가 축하메시지를 전달하는 등의 감성 영업을 전개한다고 답했다.

제네릭 위주의 국내 제약사…"제품 차별성 없어 감성 영업은 필수"

국내 제약사들이 이처럼 감성 영업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이유는 영업 품목의 대부분이 제네릭(복제약)이기 때문이다. 포장만 다를 뿐 성분은 거의 같은 제품을 판매해야 하다보니 감성 영업이 매출에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한미약품의 이 대리는 “의사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이라서 인간적으로 친밀감을 느끼는 영업사원이 내미는 의약품을 선택할 확률이 높다”면서 “신약 품목이 많은 다국적 제약사와 국내 제약사는 아무래도 영업 방식이 다르다”고 말했다.

정부의 리베이트 관련 규제가 강화된 점도 감성 영업에 집중하게 만드는 이유다. 불법 리베이트 단속을 비껴가면서도 비슷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종근당(185750)소속의 이모 대리는 “리베이트와 관련해 회사 자체 단속도 강화돼 대부분의 영업사원들이 다른 영업방식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웅제약의 허 대리는 “프로야구 티켓을 공짜로 제공하는 게 아니고 예매만 대신 해주는 것”이라며 “가끔은 나도 함께 야구를 관람할 수 있게 해줘 쏠쏠한 면이 있다”고 말했다. JW중외제약의 조 주임도 “집에 굴러다니는 우산들을 모아 양심 우산을 제공한다”며 “현금 제공이나 카드깡과 같은 불법 리베이트와는 전혀 다른 방식의 영업”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