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중심병원 제도가 도입된지 1 년반이 흘렀다. 하지만 의료계에선 병원을 중심으로 보건의료 분야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산업화를 이루겠다는 처음 기대와 달리 평범한 연구비 지원사업과 다르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된 10개 병원이 연구 활성화를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예산마저 제대로 할당되지 않아 어려움을 호소한다.
정부와 병원의 큰 기대를 모았던 연구중심병원 제도는 이렇게 표류하고 마는 걸까. 그동안의 진행 상황을 점검해보고 병원의 연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필요한 과제를 짚어본다. [편집자 주]
◆연구중심병원, 보건의료 산업화 기대하며 출발
연구중심병원이란 지속가능한 연구 역량을 갖추고 기업, 대학과 공동연구를 통해 보건의료 산업화를 선도적으로 이끄는 병원을 말한다. 진료 의사와 연구인력과 합동으로 제약, 의료기기, 바이오 분야의 새로운 기술을 창출할 수 있다. 미국 하버드의대 매사추세츠 종합병원(MGH)은 연구전담의사의 비중이 44%에 달하는 연구중심병원으로, 전체 수익 중 연구를 통해 나온 수익 비중이 25%를 차지한다.
보건복지부는 2011년 보건의료기술진흥법 개정을 통해 10개 연구중심병원을 지정했다. 10년에 걸친 장기 계획에 수천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면서 병원 선정을 까다롭게 진행했다. 복지부는 서류 평가와 현지조사, 면접 평가를 5개월에 걸쳐 실시했다. 심사위원도 두 그룹으로 나눠 심사평을 서로 공유하지 못하게 했다.
지난해 4월 전체 지원병원 25개 중 10개 병원이 연구중심병원에 최종 선정됐다. 가천의대 길병원, 경북대병원, 고려대 구로병원, 고려대 안암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병원, 서울아산병원, 아주대병원, 세브란스병원, 분당차병원 등이 주인공이다. 이들 병원은 환호했다. 전 세계의 보건의료산업을 주도할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가득했다.
연구중심병원 선정에 따른 혜택은 전폭적인 예산 지원에 있었다. 이전에는 연구비 지원이 기초적인 연구개발(R&D)에 그쳤지만, 산업화까지 가능한 연구를 지원하는 점에서 차이가 있었다. 지난해 9월에는 한국개발연구원(KDI)의 예비타당성 검토도 통과했다. 전체 사업비는 정부 9425억원, 민간 2795억원을 합쳐 무려 1조 2220억원에 달한다. 1차 사업으로 6240억원(정부 4712.5억원, 민간1527.5억원)을 승인받은 것이다.
복지부는 제도적인 지원도 내세웠다. 보건의료 R&D 비용에 인건비를 최대 40%까지 사용하도록 했다. 이전에는 연구비에서 내부 연구자의 인건비는 인정되지 않았다. 또 진료시설 건립, 의료기기 구매 등 병원의 고유사업에 연구비 사용이 가능하게 했다. 법인세 감면과 세제 혜택도 보장했다. 복지부는 선정 당시 "한국 최고의 인재가 모여 있는 병원을 미래성장과 창조경제의 발판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연구 활동을 장려하기 위해 10개병원을 엄격하게 선정했다"고 밝혔다.
◆1년 반 훌쩍 지났지만 예산 확보조차 못해
복지부는 지난해 4월부터 2016년 3월까지 3년간 연구중심병원 효력을 부여했다. 10년 사업이지만 성과가 미비하면 연구중심병원에서 탈락시키겠다며 병원들에 으름장을 놨다. 그러나 1차 지정인 3년의 절반이 흐르도록 지원은 커녕 연구 동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선 예산 승인부터 제대로 진행되지 못했다. 복지부는 예산 부족 문제로 올해 연구중심병원 예산을 100억원만 승인받았다. 그나마도 집행은 75억원에 그쳤다. R&D 정책 예산을 관할하는 미래창조과학부와 조율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적은 예산이지만 한 곳에 몰아줄 수 없다고 판단한 복지부는 75억원을 또 쪼갰다. 10개 병원 중 3곳만 지원하기로 하고 심사를 통해 길병원과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을 선정했다. 다른 7개 병원은 불만을 터트렸다. 10개 연구중심병원 중에서 선별 지원한다는 계획은 처음부터 없었기 때문이다. 복지부는 부랴부랴 내년 승인받은 예산 145억원에 300억원을 추가 요청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10개 연구중심병원 전체에 R&D예산을 지원하기 위해 증액했다"며 "예비타당성조사 계획에 따른 충분한 예산 반영이 수반돼야 하지만 예산 부족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최종 예산 심의는 이달 말 결정되지만 전액 통과되지 않을 전망이다. 김춘진 국회 보건복지위원장은 "연구중심병원의 취지가 일부 반영되지만, 전체는 승인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들은 연구중심병원 선정으로 수백억원, 수천억원에 달하는 대규모 예산이 투입될 것으로 기대했지만 돌아온 건 평가밖에 없었다고 항변했다.
연구중심병원에 선정된 한 대학병원 교수는 "지원이나 혜택은 전혀 없고 매년 복지부 평가만 이어지고 있다"며 "선정되지 않은 병원보다 더 못한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전 보건산업 R&D본부장인 선경 고려대 안암병원 흉부외과 교수는 "연구중심병원이 기존의 병원이 연구비 지원사업과 같은 수준"이라며 "당초 기획 취지에 맞게 연구 산업화를 위한 대대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