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할부 금융을 활용한 금융 사기가 기승을 부려 주 표적이 되는 서민층과 중고차 구매자들의 주의가 요망되고 있다.
자동차 할부 금융을 많이 취급하는 A캐피탈사는 최근 잇달아 이상한 사건을 겪었다. 신차(新車)론을 이용해 2000만원 상당의 새 차를 산 고객이 구입 직후 차를 어딘가에 팔아버리고, 남은 할부금을 못 갚겠다며 '배 째라'는 식으로 나온 것이다. 보통 이런 경우 캐피탈사는 차량을 회수해 경매에 넘기지만 차량이 이미 유령회사 명의로 넘어가 찾을 수 없었다. A사는 문제의 고객을 고소했지만 이미 신용 불량자로 전락한 그에게 돈을 받아낼 도리가 없다. 캐피탈사가 몰랐던 것은 이 고객이 차를 팔아넘긴 대가로 브로커에게 200만원을 받은 사실이다. 전문 차량 밀매 브로커와 대출 이용자가 함께 개입한 금융 사기였던 것이다.
A사가 당한 것처럼 자동차 할부 금융을 활용한 금융 사기 범죄가 기승을 부려 캐피탈사를 골탕먹이고 있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서민들이 작은 이익에 현혹돼 신용 불량자로 전락하고, 중고차 구매자들이 '대포차'(합법적으로 명의 이전이 안 된 차)를 구입하는 위험이 발생한다는 점이다.
사기단은 신차론의 경우 처음부터 차량에 대한 소유권을 대출 신청인 명의로 취득할 수 있다는 점을 노렸다. 브로커는 당장 급전이 필요한 사람을 섭외해 캐피탈사를 통해 신차를 구입하게 만든다. 물론 이 대출인은 처음부터 차를 구입할 생각이 없다. 브로커에게 차를 넘겨주고 신용 불량자가 되는 대신 필요한 급전을 제공받는 것이다. 금액은 차 가격의 10% 정도로 알려졌다. 브로커는 이런 차량을 페이퍼컴퍼니 명의로 이전해 대포차로 만든다. 대포차는 중고차 시장에서 거래되거나 밀수출되고 있다.
국내 최대 캐피탈 회사인 현대캐피탈은 이 같은 사기로 지난 3년간 52억원, 차량 250대 규모의 피해를 입었다. 아주캐피탈 역시 같은 기간 동일한 수법에 차량 60여대를 잃었고, KB캐피탈도 이와 비슷한 수준의 피해를 입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업계는 그간 총 1000억원, 차량 1만대 규모의 손실이 발생했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 도로를 무법 질주 중인 2만2000여대의 대포차 중 절반 가까이가 차량 할부 금융 사기를 통해 만들어진 것인 셈이다.
이렇게 매집된 차량은 암시장에서 거래되거나 범죄에 이용돼 2차 피해를 낳고 있다. 캐피탈사들은 통상 채권 확보를 위해 판매 차량에 근저당권 등록을 하고 있지만, 무등록 대부업체에 차량이 인도된 후에는 속수무책이다. 차량의 소재를 파악할 수 없으니 경매 절차를 진행할 수가 없다. 밀매 차량 일부는 중고차 시장으로 흘러들어 간 것으로 전해졌다.
업계 관계자는 "중고차를 살 때 차량등록원부를 반드시 떼어보고 주인이 너무 많이 바뀌었거나 생소한 법인 명의하에 있던 차는 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 만약 이런 차를 모르고 구매한다면 추후 캐피탈사에서 소유권을 주장할 수 있다. 이렇게 될 경우 고객이 사기에 연루된 차량임을 모르고 구매했다는 사실을 소명해야 한다.
현대캐피탈은 전문 수사관을 고용해 6개월간 조사한 끝에 사기 혐의가 의심되는 페이퍼컴퍼니 22곳을 검찰에 고소한 상태다. 금융 당국도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대응에 나섰다. 전 금융권에 관련 자료 제출을 요청했고, 국회에 '대포차 방지를 위한 특별법'을 입법 청원할 예정이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사기꾼에게 반드시 필요한 세 가지가 대포전화, 대포통장 그리고 대포차인데 캐피탈 급전 사기는 대포차 융통을 조장하는 만큼 강력히 수사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신용 불량자 되는 것만 감수하면 쉽게 수 백만원을 벌 수 있다'는 사기꾼의 감언이설에 빠졌다가 더욱 깊은 수렁에 떨어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