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중공업과 삼성엔지니어링의 합병이 무산되자 증권업계에서는 '예상된 결과'라는 반응이 나왔다. 국민연금 측은 이번 합병이 주주 가치를 훼손할 우려가 있으며 현재 주가가 주식매수청구 가격 이하로 떨어졌기 때문에 내린 불가피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합병이 재추진될 수도 있지만, 주식매수청구권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면 이번과 같은 상황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 주식매수청구권은 합병에 반대한 주주들이 자신들의 보유 지분을 회사에 일정 가격으로 되사달라고 요청할 수 있는 권리다. 삼성중공업(010140)과 삼성엔지니어링의 주주들이 행사한 주식매수청구권은 1조6000억원에 달했다. 두 회사가 주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 합병을 추진하기 위해 지출해야 하는 금액이 그정도로 많다는 뜻이다.
◆ 합병 발표 이후 주가 10% 이상 빠져…시총 1.4조 증발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이 합병을 발표한 지난 9월 1일 이후 주가는 10% 이상 하락했다. 두 회사의 시가총액 1조4000억원이 증발했다.
회사 측이 제시한 주식 매수 청구 가격과의 격차도 계속 벌어졌다. 주식 매수 청구 가격은 삼성엔지니어링 6만5439원, 삼성중공업 2만7003원인데 현재 주가와 비교하면 15% 이상 비싸다.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하지 않고 주식을 계속 보유하고 있으면 그 차이만큼 손실을 보는 셈이다.
합병을 발표한 이후 삼성 측에서는 주가 하락을 막기 위해 자사주 매입에 나섰지만, 주가 하락 속도는 더욱 가팔라졌다. 연기금이 두 달 여간 두 회사의 주식을 500억원 가까이 순매도했기 때문이다. 증권업계에서는 주가가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한 일부 기관 투자자들이 차익 실현을 위해 순매도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두 회사의 합병을 통한 시너지 효과가 불확실하다는 점이 주가에 악재였다. 두 회사의 부채비율이 모두 높은 편이어서 합병으로 재무구조가 더 악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컸다. 이재원 유안타증권 연구원은 "합병 법인의 부채비율이 270% 정도로 계산돼 재무구조 개선에 대한 고민이 커질 것"이라면서 "특히 삼성엔지니어링은 부채비율이 삼성중공업의 두 배에 달하고 실적 개선 속도도 더디기 때문에 삼성중공업 주주 입장에서는 아쉬울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 LG이노텍·현대모비스·호남석유…합병 걸림돌 된 주식매수청구권
주식매수청구권 때문에 기업 합병이 지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지난 2009년 현대모비스(012330)는 현대오토넷과 합병을 추진했지만 주식매수청구 금액이 2조8796억원에 달해 결국 무산됐다. 주가가 주식매수청구권 가격보다 올라간 이후에 합병을 재추진할 수 있었다.
LG이노텍(011070)도 2008년 LG마이크론과 합병을 추진했는데 주식매수청구 금액이 회사에서 당초 예상했던 것보다 3배 이상 많아 연기할 수 밖에 없었다. 당시 지분율이 5.55%인 6개 기관 투자자를 비롯해 개인들이 총 1766억원의 주식매수청구권을 행사했다.
호남석유화학도 케이피케미칼과 한 회사가 되는 과정에서 주식매수청구권이라는 암초에 부딪혀 합병이 당초 계획보다 3년 가까이 미뤄졌다. 2009년 주식매수청구 금액이 7000억원에 달해 무산됐다가 2012년 다시 추진했다. 주가가 오르면서 청구 금액이 1500억원 정도로 줄었다.
이들 모두 합병이 한 차례 무산되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재추진해 성공했다는 점에서 삼성엔지니어링과 삼성중공업도 비슷한 절차를 밟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두 회사의 주가가 주식매수청구 가격을 웃돌아야 하는데, 현재보다 15% 이상 올라야 한다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