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많은 경영자가 갖고 있는 MBA (경영학 석사)도, 해외 유학 경험도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내게 자주 묻는다. "어떻게 외국계 생명보험사 세 곳을 거치며 CEO(최고경영자)를 8년째 하고 있느냐"고. 비록 나에게 화려한 '스펙'은 없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지식과 실력을 쌓을 시간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을 통해 나에게 도전의 힘을 가르쳐준 귀한 사람이 있다.
대학을 졸업하고 보험사(제일생명)에 취직했다. 회사 생활은 그럭저럭 평탄했다. 하지만 1990년대 말 외환 위기와 함께 내 인생도 크게 달라졌다. 대기업이 줄줄이 쓰러지던 그때 제일생명 또한 그 태풍을 피하기는 어려웠다. 내가 제일생명의 대주주였던 조양그룹 비서실에서 일하고 있을 때 그룹은 회사 매각이라는 결단을 내렸다. 나는 M&A(인수·합병)팀에 합류했다. 거기에서 만난 사람이 프랭크 빔이다. 그는 매각 주관사인 JP모건의 고위 임원이었는데 제일생명 건으로 한국 상주 발령을 받았다.
그의 첫인상은 '무뚝뚝하고 딱딱한 미국인'이었던 것 같다. 영어도 유창하지 않았던 나는 그를 대하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좋건 싫건 매일 오후 11시가 넘도록 프랭크와 함께 일해야 했다. 인수 후보사의 담당자들은 자기들이 퇴근할 오후 6시쯤이 되어서야 우리에게 자료를 요청하면서 출근 전까지 만들어달라고 했다. 매일 오후 11시 넘어 퇴근하는 일이 일상이었다. 일이 끝나고 프랭크와 소주 한잔 기울이는 날이 점점 많아졌다. 어느 겨울이었던 것 같다. 오전 1시 30분까지 함께 술을 마시다가 프랭크를 집으로 데려갔다. 라면 한 그릇 먹고 속이라도 풀고 가라는 생각에서였다. 그는 "이 시간에 동료 집에서 라면을 먹다니 한국은 정말 신기한 나라"라고 웃으면서 나에게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당신은 부지런하고 책임감도 강해요. 하지만 여기서 살아남으려면 좀 더 강한 도전 의식이 필요합니다. 협상 대상자들과 이야기할 때 으레 안 될 거라고 생각하고 말을 안 꺼내는 일이 많죠? 이 말을 기억하세요. '요구하라. 요구하지 않으면 절대로 그것을 얻지 못할 것이다(Ask! If you don't ask, you don't get it).'"
사실 여느 한국인처럼 나는 너무 많은 것을 저울질했다. 거절당하는 것이 무서워서,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해서…. 이유는 많았다. 그런 내가 프랭크는 좀 의아했던 것 같다. 나는 그의 조언을 '일단 부딪치라'는 뜻으로 가슴 깊이 새겼다.
프랭크와 벽이 허물어지면서 우리의 팀워크는 점점 좋아졌다. 1년여 M&A 작업을 통해 제일생명이 독일 알리안츠그룹에 매각된 후, 프랭크는 나에게 M&A를 위한 사업을 함께 해보자는 제안을 해 왔다. 프랭크는 M&A 회사를 차릴 생각이라며, 나에게 한국을 맡아달라고 했다. 10년을 넘게 안정된 대기업에서 근무하던 나는 당연히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 프랭크에게 "내가 과연 잘할 수 있을지…" 하며 망설였다. 프랭크는 말했다. "나는 MBA를 나왔고 그런 사람을 무수히 봤습니다. 하지만 내 말을 믿어요. 지난 1년 동안 당신이 경험한 것이 MBA에서 2년 동안 배우는 내용보다 몇 배 더 값어치 있습니다." 그의 말에 자신감이 붙었다. 좀 더 넓은 시야를 갖고 싶은 생각이 점점 강해졌다.
깊은 고민 끝에 2000년, 드디어 나는 M&A 전문 회사 '허드슨 인터내셔널 어드바이저리'의 한국 지사 대표를 맡기로 했다. 대기업이 최고라 여겨지던 때였기에 엄청난 도전일 수밖에 없었다. 두려울 때마다 '일단 부딪치라'던 프랭크의 말을 떠올렸다. M&A 회사의 대표로 일하는 동안 나는 보험사 5곳, 증권사 2곳의 실사 및 M&A를 진행했다. 상품, 마케팅, 영업, 계약 심사 등 보험 회사 경영의 '알파'부터 '오메가'까지 두루 섭렵할 기회였다. 당시 나는 작은 것 하나라도 놓치지 않으려고 남들이 눈여겨보지 않던 보고서도 두 번, 세 번을 정독했다. 밤을 새우는 일도 예사였다. 안정된 직장이 아니었기에 내가 실력을 갖추지 않으면 생존하기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보험사 경영을 한눈에 볼 줄 아는 안목도 생겨났고, 한국 금융시장의 흐름과 소비자의 수요를 파악할 수도 있게 됐다.
사업이 계속해서 탄탄대로를 달린 건 아니었다. 그 회사에서 대표로 1년여 근무했을 때 한국 경제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며 M&A 매물이 급속하게 줄어들었고 고비가 찾아왔다. 결국 독립했던 회사를 닫고 보험 회사로 돌아갔다. 이후 새롭게 일하게 된 AIG생명에서는 방카슈랑스 부문장으로서 일하며 처음으로 영업에 도전했다. 2004년 알리안츠생명에 들어갔고 2007년엔 최고경영자에 올랐다. 2013년에는 에이스생명, 2014년 2월부터는 ING생명의 사장을 맡고 있다.
대기업에 안주했더라면 나는 어떤 모습일까 가끔 생각해 본다. 아마도 평범한 회사원으로 적당히 안정적이고 그런대로 평온한 삶을 살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보험인, 그리고 경영자로서 전문성을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연마했을 가능성은 낮다.
[정문국 사장은 누구인가?]
정문국(55) ING생명 사장은 부산에서 태어나 해동고와 한국외국어대 네덜란드어과를 졸업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1984년 제일생명에 입사해 15년 동안 일하다 2000년 미국의 M&A(인수·합병) 회사인 '허드슨 인터내셔널 어드바이저리' 한국 대표를 맡았다. 2001년 보험업계로 돌아온 후 AIG생명 상무, 알리안츠생명 신채널 부문 부사장 등을 거쳐 알리안츠생명 사장(2007년 2월~2013년 1월), 에이스생명 사장(2013년 7월~2014년 1월) 등 외국계 보험사 사장을 잇따라 지냈다. 사모펀드인 MBK파트너스가 작년 말 인수한 ING생명의 사장에 올해 2월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