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후 7시 서울 강남구 역삼동 새롬빌딩 6층의 창업지원센터 'D캠프' 다목적홀. 금융과 IT를 융합한 신산업을 일컫는 '핀테크(fintech)'의 글로벌 동향과 국내 관련 스타트업(창업 초기 기업)을 소개하는 행사가 열리고 있었다. 208㎡(63평) 규모의 행사장에 마련된 150여개 좌석은 행사 시작 전부터 다 찼다. 강당 뒤쪽과 옆 통로에도 20~30명이 선 채로 강연을 들었다. 이들은 모두 핀테크 관련 창업을 한 사람이거나 예비 창업가, 벤처캐피털 임직원들이었다.

먼저 치과의사 출신으로 간편 송금 서비스 '토스'를 개발한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가 국내 핀테크 산업 동향을 설명했다. 이어 6개 스타트업 대표가 무대에 올라 자신의 사업을 소개했다. 그때마다 "제휴 금융사로부터 거래 정보를 실시간 전달받는 시스템이 구축돼 있느냐" "기업과 일반 소비자 중 어느 곳이 주 타깃인가" 등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다.

"회사 키우는 재미 쏠쏠해요" 서울 테헤란로에 있는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회사 '빙글'의 호창성(앞줄 파란옷 입은 이)·문지원(호 대표 오른쪽) 공동대표가 직원들과 함께 활짝 웃고 있다. 부부 사이인 두 사람은 2007년 창업한 동영상 회사 '비키(Viki)'를 작년 일본 라쿠텐에 2억달러에 매각한 뒤 빙글로 다시 창업에 뛰어들었다. 이들은 "새로운 회사를 창업해, 키워가는 게 재밌고 멋있고 즐겁고 행복하다"고 말했다.

지난 7일 오후 8시 서울 광화문 KT 빌딩 1층에 있는 '드림엔터'. 미래창조과학부가 올 2월 개소한 창업 지원 공간이다. 이곳에 들어서자 3~4명씩 짝을 이룬 젊은이들이 곳곳에 흩어진 채 노트북과 스마트폰, 태블릿PC 등을 펼쳐놓고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회의실 네 곳은 아예 밤을 새우려는 듯 여행용 캐리어까지 끌고 온 예비 창업자 30여명으로 만원(滿員)이었다. 박용호 센터장은 "365일 휴무 없이 24시간 내내 10여곳의 회의실과 협업 공간, 강당 등을 무료로 빌려준다"며 "창업을 준비하며 이곳을 찾는 이들이 매달 6000~7000명에 이른다"고 말했다.

최근 서울 강남의 테헤란로와 광화문, 구로디지털단지, 경기도 판교 등 곳곳에는 창업자와 예비 창업자 간의 교류, 강연, 투자자와의 상담 행사가 하루에도 10여개씩 열리고 있다. 행사 때마다 적게는 30~40명, 많게는 300~400명씩 몰려든다. D캠프·마루180·넥슨앤파트너스센터·오렌지팜 등 최근 1~2년 사이 만들어진 민간 차원의 창업 지원 공간만 10여개에 달한다.

벤처 창업만 전문으로 다루는 인터넷 방송까지 생겨났고 회당 시청자가 많을 때는 7000여명에 달한다.

이미 테헤란로 일대에는 투자 기관 등으로부터 기술·사업성을 인정받은 벤처기업만 200여개가 자리 잡고 있다. 섬유·봉제 공장촌(村)이었던 '구로공단'도 스타트업 밀집 기지로 탈바꿈했다. 대표 거리인 '디지털로(路)'에 입주한 벤처기업만 700여개. 13층 '이앤씨벤처드림타워 3차' 빌딩 한 곳에만 81개의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다. 구글이 "서울을 아시아 스타트업의 전초기지로 삼겠다"며 강남에 2000㎡(약 600평) 규모의 아시아 최초 창업지원기관 '캠퍼스서울'을 짓기로 한 것도 한국의 이런 창업 열기를 평가했기 때문이다.

이미 상당한 매출을 올리는 벤처기업도 많다. 스마트폰의 주파수 관련 필수 부품을 생산하는 '와이솔'은 2008년 창업한 기술 벤처기업이다. 고도의 칩설계 능력과 미세한 반도체 공정기술로 현재 세계 시장 3~4위를 다투고 있다. 지난해에는 창업 5년 만에 처음으로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1401억원의 실적을 냈다. 벤처기업이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연 매출 1000억원이 넘는 우량 벤처기업의 모임인 '벤처천억클럽'의 작년 총매출은 101조2000억원(454개사)이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스타트업 열풍'은 1990년대 말~2000년대 초 '벤처 버블(bubble)'과는 질(質)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벤처기업협회 김영수 전무는 "지난 10여년간 1세대 창업가를 중심으로 투자·네트워크·멘토링 등 탄탄한 창업 생태계를 만들었고, 스타트업의 경영 투명성도 한층 높아졌다"고 말했다.

해외 유학파, 글로벌 기업 출신 인재가 유입되면서 처음부터 '글로벌 시장'을 노리는 스타트업도 많아졌다. 전 세계 1700만명이 쓰는 알람 앱 '알람몬'의 말랑스튜디오의 홍병철 공동창업자는 GE캐피탈 아시아 총괄 대표 출신이다. 명함인식 앱 '리멤버'를 만든 최재호 드라마앤컴퍼니 대표는 보스턴컨설팅그룹(BCG)에서 억대 연봉을 받던 컨설턴트 출신이다.

서강대 정유신 교수(전 한국벤처투자 대표)는 "대기업은 현실적으로 국내에서 더 이상의 고용창출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벤처기업들이 한국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고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자랄 수 있도록 지속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