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내년 전체 연구개발(R&D) 예산을 18조8245억원으로 책정했다. 정부는 2017년까지 해마다 5% R&D 투자를 늘린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일반 국민과 기업들은 막대한 규모의 연구비를 쏟아 부었는데도 그 효과를 체감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에 과학기술이 제 힘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달 13일 서울 서초구 교육문화회관에서는 정부 관료와 과학기술출연연구기관, 기업, 일반인들이 모인 가운데 정부 R&D가 풀어야 할 과제를 논의하는 끝장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연구비를 쓰는 과학기술자와 연구비를 주는 정부 부처, 그리고 R&D 수혜자인 일반 국민과 기업인의 입장에서 논의가 이뤄졌다. 이날 토론회 내용을 전문으로 소개한다.–편집자주

이달 13일 서울 서초구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R&D혁신 대토론회에 모인 정부 관료와 과학기술출연연구기관, 기업, 일반인들은 5시간 가까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가운데)이 모두 발언을 하고 있다.


◆최정숙 한국여성벤처협회장=우리나라는 2012년 기준으로GDP(국내총생산) 대비 연구개발비가 4.3%로 세계 1위 수준이다. 그런데 이건 건물을 사는데 드는 비용까지 포함한 것이다. 이걸 제외하면 과연 정말 1위일까. 굳이 건물을 살 필요는 없다고 본다. 가령 이 돈이 100억원이라면 5억으로 임대료만 쓰고 나머지 95억원을 연구개발로 돌릴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창업 지원책이 조건이 너무 나뉘어 있다. 39세까지만 가능한, 창업 7년 이내로만 가능한 등과 같은 창업 지원책이 많다.

◆전병완 국방과학연구원 민군협력진흥원 실장=연구소에 있지만, 과제를 기획하기도 힘들다. 애써 기획해 시범사업 보내면 그 다음에는 예산 확보가 문제가 된다. 대통령도 ADD에 방문하시고 서로 협력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잘 안된다. 예산 배분을 하는 미래부가 주도적으로 개선하고, 우선권을 인정해주고 그래야 한다고 본다. 부처끼리 같이 하려고 하면 힘들다. 미래부 장관에게 건의하니 고려해달라.

◆임교빈 산업통산자원부 R&D전략기획단 신사업MD=우리나라는 토론식의 이런 콘퍼런스가 부족했다. 까놓고 말하는 이런 자리가 많이 필요하다. 교수님들은 대개 목적기초로 연구를 안한다. 그냥 순수기초연구로 시작한다. 상용화에 필요한걸 중간에 염두에 두지 않기 때문에 사업화로 가기 힘들다. 그런 걸 정부가 도와야 한다. 장기 사업은 대개 5~10년인데, 정부가 제대로 끝까지 다 지원했는가를 보면 그렇지 않다. 처음 기획 잡았을 때 허락한 기획재정부 등 부처가 책임이 있는 셈이다. 예산이 줄어들지에 대한 고려를 더 잘했어야 한다. 예측된 기간까지 사업예산 지원이 잘 이뤄질지 꼼꼼히 따져야 한다.

◆윤지웅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성과지표를 사업 특성별로 차별화하고 단계적으로 나누는 일을 지금 과제로 하고 있다. 그런데 다른 부처에서 반응을 안해준다. 미래부는 평가지표를 바꾸려 노력하고 있는 것 같다. 다른 부처도 좀 더 유연해지고 평가해줘야 한다. 궁극적으로 정부는 R&D사업을 기획할 때 과학기술계만 보면 안된다. 전체 그림을 봐야 한다. 사업화만이 R&D의 목적이 아니라고 본다. 시장에서 이뤄지기 어려운 부분도 정부가 포트폴리오를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짤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때다.

◆박민준 카이스트(KAIST) 항공우주공학 박사과정=연구자 중심의 R&D 시스템이 이뤄지면 좋겠다. 가령 우리 연구실에서 무인기를 설계해 제작했다. 여러 실험을 한 뒤 더 할게 필요해 쓰려고 했는데 대여비를 내라고 한다. 돈을 준 곳이 달라 소유가 다르고 그런 문제 때문이다. 이 같은 행정적으로 불필요한 시스템이 없어지고 연구 효율성을 높일 수 있으면 좋겠다.

◆김태현 연세대 화학과 박사과정=일본의 경우 교수부터 대를 이어 한 가지 연구를 해서 노벨상이 많이 나온다는 기사를 봤다. 우리나라는 단편적이고 후속 연구가 부족하다. 더 창의적인 연구를 하려면 구조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우리 연구실이 문을 연지 얼마 안됐는데, 과제 선정할 때 그런 배경을 안보고 공평했으면 좋겠다. 연구비 지원기관이 많다 보니 각 기관마다 세목별로 쓸 수 있는 돈이 제각기 다르다. 세목별로 따져가면서 돈을 써야해 매우 번거롭다. 통일되면 좋겠다.

◆권성훈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기술무역수지에서 32위에 머문다. 주목할 만한 성과가 안나오는 이유 중 하나가 과학기술 정책이 미래를 못보고 과거와 현재 문제를 해결하는데 집중하는데 있다고 본다. 오늘 나온 이야기들도 보면 대부분 과거의 문제의식을 갖고 개선 방안을 내려는 것 같다. 이처럼 과거로부터 오는 문제의식으로 미래를 대응하려고 하면 한계가 있다고 본다. 오히려 미래에는 지금의 해결책이 발목을 잡을 수도 있다고 본다.

◆김석일 충북대 산학협력단장=손톱 밑 가시 좀 말하겠다. 많은 교수들이 가장 어려워하는 게 회의비 집행이다. 같은 대학 교수와는 회의를 할 수 없게 돼 있다. 의대 교수가 전자과 교수랑 회의하려면 개인 돈을 써야 한다. 또 사업단장 뽑을 때 조건이 뭐를 맡으면 안된다, 뭐를 하면 안된다 등의 규제가 많다. 대학 내에서 효율적으로 시스템을 운영할 수 있게 자율권이 있으면 좋겠다.

◆농촌진흥청 과장(성명 미상)=미래창조과학부 장관에게 하소연하겠다. 농업분야에 대한 애정을 가져주면 좋겠다. 농촌진흥청은 실제 연구개발을 하는 기관 4개를 갖고 있다. 그런데 현장 중심의 문제해결을 하라는 요구와 미래 먹거리를 만들라는 요구가 서로 다르다. 미국의 농업 R&D의 35~80%까지가 농업의 현상유지에 투입된다고 한다. 우리가 4000억원을 예산으로 쓰는데 절반은 현상유지에 쓴다. 2000억만 갖고 미래 먹거리 못만든다. 농업분야 R&D, 수산업과 같은 1차산업에도 관심을 가져달라.

◆한세대 교수(성명 미상)=근본적으로 미래부의 역할을 말하고 싶다. 미래부가 힘이 없다. 예산 18조 중 미래부가 건드릴 수 있는 것도 얼마 없다. 미래부가 특히 R&D에 대해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 기초랑 산업 이사회도 통합했는데, 정책 라인도 통합할 수 있지 않겠는가. 일관된 프로세스를 만들기 위해 미래부가 힘을 모으도록 장관이 숙제로 가져야 한다고 본다.

◆김형진 공주대 교수=경제적 부가가치를 목적으로 R&D예산이 확정돼야 한다고 본다. 학부생들을 대신해 말하고 싶다. 현재 학생들이 취업을 못해 4학년이 되면 휴학을 한다. 교육 프로그램이 4년만에 졸업을 하게 돼 있다. 해외에는 5~6년 통합 교육프로그램도 있다. 중소기업체가 8~90%인데 이쪽에 더 비중을 두고 연구개발비를 책정해야 한다고 본다. 벤처나 소기업이 학생과 연결될 수 있도록, 휴학을 안해도 되게끔 연계가 가능하면 좋겠다. 기업에 세금 혜택 등을 주고 학생들은 학점 받고 그런 연계가 있으면 좋겠다.

◆이윤규 한국기계연구원 연구원=국가 R&D의 철학적인 부분에 대해 근본적인 고민이 있어야 한다. 민간이 할 수 없지만 국가적으로 꼭 필요한 부분이라고 본다.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 기초 원천 산업 등의 분야가 각각 어떻게 예산 재원을 분배할 것인지 큰 의사결정을 깊이 있게 고민해야 한다. 관련 주체간 합의도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국가 R&D에 지원할 때 각 사업별로 과연 이게 국가 R&D로서 적당한가 그런 질문을 정부가 심각하게 해볼 필요가 있다. 앞서 말한 대로 미래부가 R&D 예산 배분에 있어 더 큰 권한을 가져야 한다고 본다. 또 하나는 민간 부분에 대한 생각인데, 민간 R&D 역량이 성장한 게 사실이다. 일부 영역은 공공 연구가 필요 없을 정도다. 민간이 더 잘하는 산업분야는 굳이 정부가 돈을 지원할 필요가 없다고 본다. 1차산업이나 중소 쪽으로 재원을 배정해야 한다.

◆서울대 교수(성명 미상)=손톱밑 가시 나도 말하겠다. 그동안 우리나라 R&D 지원 예산도 많이 늘었고 시대 상황에 맞게 잘 디자인돼 기여도 많이 했다. 학문 수준도 많이 올라갔다. 그런데 부족한 부분이 있다. 기술사업화라든지 창업 등에 연결이 안된다. 이공계 연구자들은 성실하게 잘 연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특허의 경우 각 대학에 특허비용이 매우 적게 책정돼 있다. 국내 특허 한두건 내면 끝나는 것이다. 연구비에서라도 집행하면 좋은데 항목에 적절한 부분이 없는 경우가 많다. 인력 양성의 경우 학생이 들어오면 2~5년 연구에 집중한다. 교수는 인건비 풀링제도를 원한다. 적어도 그 학생이 졸업할 때까지는 돈을 써야 하는데 지난해에 제도가 통합 인건비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당해 년도에 80% 쓰고 20%만 이월이 가능하게 변경됐다. 오히려 학생들 인건비 주기 더 어려워진 것이다. 그리고 기업과 프로젝트 하려 만나보면 서로 생각하는 기술의 수준이 다르다. 그리고 개발 자금 역시 서로 생각하는 게 달라 어렵다.

◆정경희 포스코경영연구소 연구원=한국 R&D가 왜 성과가 안나는가에 대해 고민한다. 성과 측면에서 아직 갈 길 멀다고 본다. 출연연의 정체성이 점점 미흡해지고 있다. 과거 처음으로 KIST가 설립됐는데 그 당시 출연연 탄생 배경과 지금이 변화가 큰데 가야 할 방향성이 정립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사기도 떨어지고 어떤 연구를 해도 수동적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사기를 갖고 자기들 연구가 미래 후손들에게 얼마나 큰 것인가를 스스로 자부할 수 있는 환경이 구축돼야 한다. 늙은 연구원들의 정년 보장 등의 특혜는 좋은 방법이 아니라고 본다. 책임 없는 자율성은 아무 의미가 없다. 기관간 인력 교류도 이뤄져야 한다. 우리의 강점을 해외의 부족한 나라에 보내고 그 과정에서 배워올 수 있는 것이 있다고 본다. 반대로 외국 기관을 흡수해 배울 건 배우고 그러면 좋겠다.

◆문승현 한국연구재단 단장=대학과 출연연이 무제한으로 경쟁한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연구체제의 협력 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있어 좋지 않은 제도가 많다. 가능하면 정부 정책에서 연구 주체의 아이덴티티를 명확히 해서 3개 섹터를 구분해서 지원해야 한다. 둘째로는 국가 연구는 기획과 평가가 성공의 80% 이상을 결정한다고 본다. 현장에서 느끼기에 기획 전문가나 평가 전문가가 부족하다. A급 과제를 평가하는데 B급 평가자가 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무작위로 평가자를 추출하기보다는 풀을 체계적으로 구축해 활용할 필요가 있다. 연구재단에서 이미 하고 있는 상시제도가 있다. 연구현장에서 의견 반영이 어렵다고 하는데, 상시 계획으로 지속적으로 아이디어를 받고 있다. 이런 제도도 기업에 홍보를 해서 함께 반영하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어차피 18조라는 국가 예산을 집행해야 한다면, R&D 자체를 비즈니스화 할 수 없느냐는 게 내 생각이다. 연구 툴이 비즈니스화 될 수 있다. 실제 노벨상 수상 사례도 보면 연구 툴로 받은 경우가 있다. 연구를 위한 연구소도 해외에는 많다. 연구의 비즈니스화도 고민할 필요가 있겠다.

◆구영성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 정책개발팀장=부처마다 비슷한 심정이겠지만, 국토교통쪽 성격을 보면 교통 인프라, 시설물 등 대형 과제가 많다. 그런 과제들은 중간에 점검을 할 수밖에 없다. 연구자들은 우리가 쓸데없는 행정을 한다고 불평을 제기한다. 그런 부분에 대해 우리가 어떻게 하면 그런 불편을 느끼지 않게 할 수 있을까, 국가와 정부를 대신해서 잘 체계적으로 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입장을 전한다.

◆김필성(소속 미상)=기초연구와 산업화를 동시에 하기 힘들다.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
◆서도운(소속 미상)=각 부처별로 정부 R&D를 할 필요가 있는가. 부처간 중복사업으로 예산 낭비 심하다. 미국은 국방 R&D의 70%를 민간에서 집행한다. 한국은 폐쇄적이다.
◆서영원(소속 미상)=정부 R&D 20조원 시대를 맞이할 텐데 문제는 지금은 대전과 대덕 중심으로 돼 있다. 그쪽에서 나오는 연구성과를 활용할 기업이 얼마나 될까.

◆최종배 미래창조과학부 창조경제조정관=많은 사항들을 정책에 검토해 반영하겠다. 특히 중복사업 꼭 검토하겠다. 국방 쪽과 긴밀한 협조도 하겠다. 연구개발 예산 분배와 바람직한 투입은 현재 고민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