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는 내년 전체 연구개발(R&D) 예산을 18조8245억원으로 책정했다. 정부는 2017년까지 해마다 5% R&D 투자를 늘린다는 방침이다. 하지만 일반 국민과 기업들은 막대한 규모의 연구비를 쏟아부었는데도 그 효과를 체감하기 힘들다고 말한다. 경제 살리기와 일자리 창출에 과학기술이 제 힘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달 13일 서울 서초구 교육문화회관에서는 정부 관료와 과학기술출연연구기관, 기업, 일반인들이 모인 가운데 정부 R&D가 풀어야할 과제를 논의하는 끝장 토론회가 열렸다. 이날 토론회는 연구비를 쓰는 과학기술자와 연구비를 주는 정부 부처, 그리고 R&D 수혜자인 일반 국민과 기업인의 입장에서 논의가 이뤄졌다. 이날 토론회 내용을 전문으로 소개한다.–편집자주

이달 13일 서울 서초구 교육문화회관에서 열린 R&D혁신 대토론회에 모인 정부 관료와 과학기술출연연구기관, 기업, 일반인들은 5시간 가까이 열띤 토론을 벌였다.


◆이원배(벤처기업인)=사업에 실패한 적 있다. 지금은 나름 자체 연구개발을 통해 벤처기업을 세웠다. 7년간 신용불량자였다. 정부의 정책은 재창업 기업에게 전용 사업을 지원하고 있고, 기존에는 참여 자격조차 없던 사람에게 개발 참여 기회도 주고 있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도전하는 문화가 중요하다고 정부는 말한다. 그런데 그 정신이 지자체로 확산되고 있지는 못하는 듯 하다. 나는 지금 제품을 해외에 수출한다. 독일 아마존에서 판매 1등도 해봤다. 이걸 서울시에서 하는 사업화 지원프로그램에 제출했는데 보증금으로 1억7000만원을 내라고 하더라. 돈이 없어서 사업화 지원을 신청한 사람에게 그런 돈을 내라고 하는건 부당하다.

◆한선화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원장=국가R&D가 굉장히 많은 스펙트럼에서 이야기되고 있다. 그런데 정부 차원의 투자는 미래에 대한 대비에 더 많이 집중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선도적인 국가R&D는 수요지향적인 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중간 과정이나 결과물을 사업화로 연결하는 건 다른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 수요지향적인 연구는 캐치업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리고 연구의 유연성에 대해 말하고 싶다.

◆장병문 한국로스트왁스 전무=대토론회 주제가 사업성이나 성공한 기술의 결과에 대한 토론인 것 같다. 정부 지원 R&D를 보면 이전과 달리 많이 제도화됐다. 왜 사업화가 안되느냐, 공공 국책기관에서 개발한 기술이 논문이나 발표에는 합당한데 민간기업이 사업화하기에는 부족함이 크기 때문이다. 결국 다시 기술 개발에 투자할 수밖에 없다. 또 시대적 변화에 대응하지 않은 기술도 많다. 학문적으로는 의미 있을지 몰라도 말이다. 미래부에서 중소기업 지원 시스템은 만들어놨다. 운영은 잘 된다. 회신도 금방 온다. 그런데 회신이 왔을 때 "지금은 할 수 없다"고 할 때가 있다. 그럼 그 못하는 건 언제 다시 모아서 보나? 기업들의 난제들을 종합한 것을 범부처적으로 해당 담당자들이 모여서 적어도 분기에 한번 정도는 지원책을 만들어야 하지 않나 싶다. 그리고 평가의 경우 전문성에 대해서는 전문가풀이 운영된다. 전문 분야에 대한 세부성을 더 나눠야 한다고 생각한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연구원(성명 미상)=정부R&D에서 큰 사업의 경우 대부분은 사업화와 관련돼 있다. '제품화가 과연 가능하겠느냐' 이 단계에 있어서는 산업계의 의견이 필수적이다. 핵심기술 개발도 의미가 있지만 시험 평가라든지 시제품 제작의 경우 기업체가 원하는 방향으로 반영이 돼야 한다. 실제 시장에 투입할 수 있을 만큼 기업체에서 충분히 검토하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

◆윤영섭 인하대 전자공학과 교수=역할 분담과 주체간 상호협조가 원활하지 않다. 이런 관점에서 내가 학교에 있긴 하지만 국가연구소의 입장이 가장 곤혹스러울 듯 싶다. 각 연구소의 정체성 확립이 지난 십수년간 안되고 있다. 그리고 국가R&D 예산 쏠림 현상이 심하다. 개인간, 분야별 쏠림도 심하다. 국가R&D 예산의 쏠림은 위험하다고 본다. 예를 들어 수십억원의 연구비를 갖고 연구를 하는 교수가 많다. 이런 분들은 연구력이 출중하지만 이 돈을 받는 순간 연구보다는 연구비 관리에 더 많은 시간을 쓰기 시작한다. 그러면 오히려 역효과가 난다고 본다. 또 앞서 이희국 사장도 말했지만 R&D에 있어서 평가가 꼭 필요하다고 본다. 그러나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평가가 중요하다. 제대로 된 사후 처리가 뒤따라야 한다.

◆송규영 울산대 의대 교수=한선화 원장의 말에 동감한다. 국가R&D는 미래 먹거리 창출이다. 창조로 가려면 우리가 가진 포트폴리오를 보고 탑다운과 바텀업의 비율을 면밀히 살펴야 한다고 본다. 실패하지 않고는 절대로 잘될 수 없다. 바텀업을 늘려야 한다. 바텀업에 들어가는 돈이 1조원이 되지 않는다. 대부분 탑다운인데 이게 정말 미래 먹거리로 갈 지는 의문이다. 이제는 구조를 들여다보고 손질할 때다. 그리고 너무나 많은 곳에서 연구를 한다. 대학이 정말 중요하다. 인력을 양성하지 않나. 교수가 놀면 학생도 논다. 바텀업 예산을 대폭 늘려야 한다고 본다.

◆최정숙 한국여성벤처협회장=구글의 성장 이유 중 하나가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라'는 구호 때문이라고 본다. 우리 회사가 다루는 기술을 국내 500~600명에게 말했는데 다 모른다고 하더라. 외국에서는 많이 안다. 그런데 한국은 본인들이 잘 모르면 점수를 잘 안준다. 아는 과제만 선정해준다.

◆서경학 한국연구재단 부장=각 연구분야를 부처마다 다 한다. 미래부는 물론이고 모두들 한다. 기초연구를 열심히 해서 네이처에 발표하는 것도 당연히 필요하다. 그런데 논문으로 끝내지 말고 이어가는 것이 중요한데 그 중간 고리가 없다. 기초와 응용이 다 따로 논다. 성공한 원천기술 중 응용으로 끌어들이고, 응용 중 잘 될 만한 걸 사업화로 보내고, 그런 고리들이 꼭 필요하다. 그리고 부처마다 R&D가 많아지다보니 문제다. 전체 차원에서 연결고리가 만들어지면 성공사례가 분명 나올 것이다. 그리고 또 아까 쏠림 현상을 말씀하셨는데, 부처가 많다보니 연구자가 한 주제를 갖고 여기저기 지원하는 경우가 상당히 만연해있다. 여기서 안되면 저기다가 내고 그러다보니 경쟁률은 높아지고 그러는 거다.

◆박청정(성명 불확실)=나는 이러닝 사업을 한다. 소프트웨어 분야만 1970년대부터 했다. 결과적으로는 누가하든지 사업이 잘되면 창조경제가 잘 된다고 본다. 그게 핵심 주제가 돼야 한다고 본다. 그런데 정부 R&D 예산 중 사업화 예산이 1%도 안된다고 한다. 대부분 국책, 학교 등에 흘러들어간다. 내가 볼 때 국공립 연구소는 논문은 잘 쓰는데 사업화가 안된다. 그것들을 사업화랑 연결해 하나하나 체크해야 한다. 그리고 사업을 할 때 재도전은 정말 어렵다. 금융기관에 빚이 조금이라도 있으면 지원 안해준다고 한다. 그러니 어려울 수밖에. 세금이다 뭐다 걸림돌이 정말 많다.

◆김진형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장=요즘 과학기술 R&D는 대부분 소프트웨어 형태로 결과물이 나온다. 그런데 소프트웨어라는 게 기존 관리 시스템과 굉장히 다르다. 우선 기술 점수가 가능하지 않다. 코딩 소스를 왕창 가져다주면 누가 쓰겠나. 모든 분야의 결과물이 소프트웨어로 나오는 상황으로 가고 있다. 예전에는 연구 결과물을 기업에 던져주고 그랬는데, 이제는 그 세상이 아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개발에 참여한 사람이 직접 사업화로 나와야 한다. 그리고 소프트웨어는 점진적 개선이 맞다. 계속 개선하면서 쓰고 또 개선하고, 그러면서 버전을 업그레이드하는 거다. 그런데 지금 R&D 평가시스템이 과연 이런 특성을 반영할 수 있을까. 가령 ETRI가 뭔가 소프트웨어를 만들었는데 3년의 사업기간이 끝나 다른 과제로 넘어갔다고 치자. 그럼 다시 그 소프트웨어를 만질 수 없다. 그러면 그 소프트웨어가 살아남을까. 그 안에 버그가 남아있어도 딴 걸 해야 하는 구조다.

◆박희재 산업통상자원부 R&D 전략기획단장=국가 R&D의 가장 큰 핵심은 기업, 현장, 시장과의 괴리다. 절대 바깥으로 나가려 하지 않고 과학기술의 틀 안에서 안주하려 한다. R&D 열심히 하면 기업이 사줄거라고 생각하면 안된다. 그동안 우리 R&D는 평가에 큰 문제가 있었다. SCI로 해왔다. 주된 평가가 SCI다. 지난 10년간 SCI는 2.5배 성장했다. 그런데 지난 10년간 중소기업의 외부와의 협력은 다 반토막이 났다. 시장에 나가서 물건을 팔고, 1등 물건을 만들어야 하는데, 과학기술자들은 너무 순수하려고만 한다. SCI만 쓰면 된다고 생각한다. 지금 박사의 82%가 출연연과 대학에 있다. 여기서 SCI만 쓰고 있다. 나도 학교에서 교수할 때 나름 잘 나갔다. 그런데 IMF때 보니 당장 나라가 망하게 생겼더라. 그래서 창업했다. 노벨상, SCI 이런 게 문제가 아니다. 일자리가 없다. 평가부분을 완전히 바꿔야 한다. 글로벌 경쟁력, 지원책 이런 걸 다 바꿔야 한다. 출연연과 학교의 역할도 다 바꿔야 한다. 세계1등 기업을 돕도록 하는 그런 쪽으로 말이다. 기업과 사업화와 연계돼 있는, 그런 쪽으로 R&D 틀이 가야 한다.

◆배희숙 이나루티앤티 대표=중소기업은 아무리 신기술 개발해도 조기에 시장에 정착할 수 있는 시스템이 없다. 중국의 경우 물건이 부족한 부분이 있어도 일단 나라에서 좀 써준다. 한국은 글로벌 제품과 비교해서 무시한다. 글로벌 시장에 갈 수 없도록 만든다. 정부가 중소기업 제품 사용해줄 필요가 있다고 본다.

◆최정숙 여성벤처협회장=중국은 소프트웨어가 개발되면 그중 70% 정도를 정부가 쓰라고 강제한다. 그런데 한국 정부는 전부 외제 천지다. 내가 산업기술연구회 이사를 할 당시 워크샵을 가서 물어본 적 있다. 각 출연연들에서 일년에 창업을 몇 개씩 하냐고 물었더니, 1년에 1~2개 할까말까라고 답하더라. 박사급 인재가 5000명이 넘는데 한두명만 할까말까 한다는 거다. 삼성은 연구개발에 100억원을 투자하면 사업화에는 130억원을 지원한다고 한다. 정부도 사업화에 더 많이 지원해야 한다.

◆선경 고려대 의대 교수=IT헬스 분야는 유망해 상당히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아직 초기 단계다. 과감한 투자와 정책지원이 필요하다. 국가위서부터 5년째 활동하고 있는데 그때부터 느낀 점을 말하자면, 정부 R&D 전반에서 효율성이 의심스럽다. 원래의 기획 대비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인상을 받는다. 성과 기준 평가표를 부처별로 차별화해야 한다. 가령 IT헬스는 파이프라인이 긴데, 지금의 평가지표로는 안 맞는다. 국과심의 기능이 이 같은 맥락에서 강화돼야 할 것이다. R&D 수행 주체별로 역할이 구체적으로 돼야 한다. 대학은 기초원천 강화라는 분명한 미션이 있다. 출연연은 그 중간단계, 그리고 기업이 R&D의 주체라면 사업화에 포커싱 돼야 한다. 그런데 이처럼 각자 다른 미션의 분야 연구자들이 모두 같은 곳에서 예산을 받기 위해 경쟁하는 건 맞지 않는다고 본다. 부처별로도 R&D 예산을 받을 때 기대하는 바가 다를 것이다. IT헬스는 부처간 투자도 단절돼 있다. 가령 천복단지가 수조원 혈세로 하드웨어를 셋업 해두고서 방치되는 상태다. 이런 부분도 해당 부처들이 합심해서 방향성과 로드맵 작업을 해야 한다.

◆이우일 서울대 연구부총장=바른과학기술사회실현을위한국민연합(과실연) 대표를 맡고 있다. 사업화 관련해서는 정부가 갖고 있는 레버리지가 얼마나 될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역할을 말하겠다. 우리 과실연에서도 릴레이 토론을 했다. 그때 나온 말인데, 산업화 시대에 정부가 주도적인 역할을 한 게 맞다. 지금은 민간이 발전을 많이 했다. 이제는 이끄는 역할이 아닌 미는 역할로 바뀌어야 한다. 우선 정부는 연초가 되면 무슨무슨 기술을 개발하겠다고 로드맵을 발표한다. 그걸 계속 하니까 연구자들이 그리로 다 모이는거다. 놔줘야 한다. 또 13개 부처에 17개 평가기관이 있다. 다른 나라는 1개씩 있다. 교통정리를 해야 한다. 규정이 하도 많다. 연구비 관련 규정이 372개가 있다. 이게 매번 굉장히 빠른 주기로 바뀐다. 17개 기관에서 계속 쏟아내는거다. 대형 과제를 맡은 연구자는 규정 숙지에 하루가 다 간다. 노벨상은 택도 없는 셈이다. 정부가 밀어주는 역할로 바뀌어야 한다.

◆김웅진 교수(소속 미상)=연구소와 벤처 운영 등을 하다가 학교로 돌아왔다. R&D 예산이 17조를 넘었는데 그중 인건비가 상당부분이다. 예산을 말할 때 그 세부사항까지 말해주면 좋겠다. 내가 연구소에서 학교로 돌아온 이유는, 안정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기술료 부분을 말하겠다. 예전에는 50%까지 갔다가 지금은 10%까지 떨어졌다. 작은 기업은 상당히 부담된다. 사업계획서에 대해 납부 시기를 조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현금 말고 지분이나 다른 방식으로도 상환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 이익이 나자마자 거두어가려는 지금의 시스템은 상당히 부담된다. 그리고 가급적 중소나 중견기업에 연구비를 많이 배분하면 좋겠다. 천안에 3000개의 업체가 있다.

◆경기욱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연구원=벼농사를 예로 들면 종자 개발부터 농사짓는 사람, 쌀과 과자 만드는 사람이 다 다르다. 기초와 상용화 연구도 그런 맥락으로 봐야 한다. 그런데 연구 책임자들이 왜 논문만 내면 되겠다고 생각하냐면, 과제의 당초 기획 의도가 막상 관리받는 과정에서 자꾸 달라지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원천 연구는 2~3차년도 지나면 관리자로부터 제품 개발 등의 유도를 받게 된다. 그러면 사실은 아니어도 제품화가 될 것처럼 말하는 요식행위가 발생하기도 한다. 상용화가 목표인 과제는 또 상황이 다르다. 처음에는 진짜 제품 만드는 걸 목표로 하는데 시간이 지남에 따라 시제품 정도만 만들어서 노력하고 있다고 적당히 보여주고 끝나는 경우가 생긴다. 결국 요소요소마다 적절한, 기존 의도에 맞게끔 하는지를 평가하는 지표만 제대로 만들어도 많이 나아질 것이다.

◆김영동 경희대 산학협력단장=연구는 모르는 데서 시작하는 것이다. 사업도 원래 추구하지 않았던 곳에서 갑자기 뭔가가 튀어나오는 것이 많다고 본다. 큰 사업을 몇 개 하는 것보다 작은 사업으로 많은 사람들이 연구하는 분위기 속에서 다양한 발견들이 이뤄지고,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이어져야 하지 않을까 싶다.

◆정문철 강릉산업진흥원장=현장에 가보니 과학산업단지라고 하는 것들이 수십개씩 있는데 안타깝게도 문을 닫는 기업들이 많더라. 지역 경제 부활과 균형 발전을 목표로 지방 산업단지를 만들었는데 오히려 독이 되더란 말이다. 강릉의 경우 큰 기업 3개가 도산하니 연쇄도산이 나타나고 결국 나쁜 쪽으로 결과가 나오고 말았다.

◆이태식 한국건설기술연구원장=학교는 기부금을 발전기금으로 받는다. 내가 학교에 있다가 연구원에 와서 우리도 발전기금을 받아볼까 했다. KIST가 먼저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재단에서 줄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하더라.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