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의 인기 영화배우 '周潤發'은 주윤발과 저우룬파 중 어떻게 불러야 할까. 외래어 표기법에 따르면 후자다. 따지고 보면 문제는 좀 복잡하다. 저우룬파는 홍콩에서 태어났는데, 홍콩에서 사용하는 광둥어로는 '짜우연팟'에 가깝게 발음된다. 중국 표준어로는 저우룬파라고 읽지만, 그가 사는 홍콩에서는 다르게 부르는 것이다. 영문으로 그의 이름은 'Chow Yun-Fat'이라고 쓴다.
비슷한 고민이 2014년 한국의 주식 투자자에게 발생했다. 후강퉁(滬港通) 제도 시행으로 586개의 중국 본토주식에 대한 투자 기회가 열렸고, 중국 기업에 대한 관심도 고조됐다. 그런데 중국 기업을 부르는 명칭이 중구난방이다. 어떤 사람은 한자를 그대로 한국식으로 읽고, 다른 사람은 중국식으로 표기한다. 아예 기업의 영문 표기법을 따라 쓰는 경우도 있다. 주윤발, 저우룬파, Chow Yun-Fat이 모두 통용되고 있는 셈이다.
◆ 마시는 술은 '마오타이', 사는 주식은 '귀주모태주', 투자 참고 문서에는 '모우타이'
개인 투자자들이 사용하는 증권사 홈트레이딩시스템(HTS)에 '귀주모태주'란 종목이 있다. 다름아닌 우리에게도 친숙한 중국의 명주(名酒) '마오타이'를 만드는 회사다. 회사 이름이 귀주모태주(貴州茅台酒)인 것은 이 술이 생산되는 곳이 중국 구이저우(貴州)성 마오타이(茅台)이기 때문이다. 회사의 한자 이름을 한국식으로 그대로 읽어 종목명이 귀주모태주가 됐다.
그런데 이 회사의 영문 표기는 'Kweichow Moutai Company'다. 여기서 혼선이 발생한다. 대부분의 증권사는 귀주모태주 종목을 '마오타이'라고 쓰고 있는데, 대우증권은 '모우타이'라고 표기한다. 회사의 영문명이 'Moutai'라고 돼 있기 때문이다. 사실 마오타이주 병에도 영어로 'Moutai'라고 써있다.
마오타이가 모우타이로 된 것은, 중국어를 영문 알파벳으로 옮기는 과거의 표기법이 고유명사로 굳어진 것이 원인이다. 베이징(北京)의 표기가 광둥어(중국어 방언 중 하나)로 읽은 'Peking'에서 표준 중국어에 따른 'Beijing'으로 바뀌었지만, 베이징대학교의 영문명이 아직 'Peking University'인 것과 같은 이유다. 영어로 어떻게 쓰여 있든, 회사 이름을 한국어로 옮기려면 적어도 마오타이는 돼야 한다.
◆ 중국어 낯선데 종목 코드도 잘못 기재
중국어에 능통하거나, 한자 독해 능력이 뛰어난 투자자라면 이런 난관을 제치고 중국의 검색 사이트를 통해 적어도 회사 이름 정도는 제대로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에서는 우리가 쓰는 한자를 많이 간소화한 간체자를 쓰기 때문에 한자를 잘 아는 중장년층도 중국 기업의 이름은 생소하다.
'兴业银行'이라는 글자를 보면 중국어를 배우지 않은 이상 뭐라고 읽어야 할지 감도 잡기 힘들다. 이 기업은 싱예은행(興業銀行)으로, 푸젠(福建)성 기반의 은행이다.
상황이 이러면 믿을 것은 종목 코드뿐이다. 그런데 이마저도 딱히 믿을만한 것은 못 된다. 일부 증권사 리포트에는 종목 코드마저 잘못 적혀있다.
대우증권이 지난달 낸 리포트에 궁상(工商)은행의 코드는 '601166'라고 써 있다. 그러나 이 코드는 위에서 예를 든 싱예은행의 코드다. 궁상은행의 코드는 '601398'이다. 중국어에 익숙하지 않은 투자자가 종목코드만 보고 매수 버튼을 누르면 엉뚱한 주식을 살 수 있는 것이다. 영문명도 궁상은행은 'Industrial and Commercial Bank of China(ICBC)', 싱예은행은 'Industrial Bank'로 비슷해 혼돈할 가능성이 있다.
◆ 한국에 잘 알려진 기업이지만 종목 명칭은 낯설어
증권사 리포트에서 기업 이름을 혼동할 수 있는 사례는 마오타이주를 만드는 회사 외에도 많다. 쌍용차를 인수했다가 철수하며 기술유출 논란을 불러일으킨 상하이(上海)자동차를 대우증권은 'SAIC 자동차'라고 썼다. 회사의 영문명은 'SAIC MOTOR'지만, 이렇게 쓰면 이 기업이 쌍용차를 인수했던 그 회사인지 알 수 없다.
후강퉁으로 거래할 수 있게 된 종목 중에는 홍콩과 상하이에 동시 상장된 기업이 있다. 이 중에선 한 회사지만 증권사의 HTS에서 표시되는 이름이 다른 경우도 있다.
푸싱의약(復星醫藥)은 LIG손해보험, KDB생명보험 인수에 관심을 보였던 푸싱그룹의 계열사다. 국내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며 '푸싱'이란 단어가 낯설지 않지만, 홍콩 증시 종목은 회사의 영문 이름을 그대로 쓴 'Fosun Pharma', 상하이 종목은 '복성제약'으로 등록돼 있다.
중신증권(中信證券)의 경우, 홍콩 종목은 영문 이름을 딴 'CITICSEC', 상하이 종목은 그대로 '중신증권'이다.
HTS에 표시되는 중국 기업의 한글 표기는 증권사에 정보를 제공하는 업체들이 번역한 것이다. 이런 업체가 여러 곳인데, 기준이 통일돼 있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대신증권에 중국 기업 정보를 제공하는 회사는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의 상하이 자회사가 운영하는 차이나윈도우다. 이 회사의 관계자는 "중국 기업 명칭은 한자를 그대로 한국식으로 읽고, 유명한 브랜드는 영문명을 썼다"고 설명했다. 칭다오하이얼(靑島海爾)이 HTS 상에서 '청도하이얼'로 표시되는 것은 이때문이다.
다른 증권사에 정보를 제공하는 연합인포맥스의 한 관계자는 "지명, 인명 등 고유명사는 현지 발음을 쓰고, 보통명사는 한국식 한자 독음을 썼다"며 "정보를 제공하는 업체는 로이터, 블룸버그 등 다양한데 기업의 한국어 명칭이 각각 다른 경우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