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정 종목의 주가 움직임에 연동돼 고수익을 낼 수 있게 설계된 '종목형 주가연계증권(ELS)'이 주식시장을 흔들고 있다. 예탁결제원에 따르면 ELS 발행 잔액은 11일 현재 총 53조원이며 이 중 대부분은 특정 주가지수에 연동돼 수익을 내는 지수형 ELS다. 올해 발행된 ELS 중 종목형 ELS는 3.6%에 그쳤다. 그런데도 종목형 ELS는 주가 하락기에 매도 물량을 쏟아내며 시가총액 1000조원대 규모의 증시 전체를 뒤흔들고 있다. 증시의 대표주인 현대차까지 ELS 손실 구간에 접근하자 종목형 ELS에 대한 불신은 더욱 커졌다. 한 줌도 안 되는 종목형 ELS가 왜 증시를 뒤흔드는 것일까.
◇ELS, 변동성 클수록 증권사 이익 늘어나는 구조
ELS는 주가가 일정 한계 이하로 내려가지 않으면 미리 정한 수익을 주는 금융상품이다. 예를 들어 지난달 31일 SK증권이 발행한 1392호 ELS를 보자. 이 ELS는 삼성전자와 삼성중공업을 기초 자산으로 하는 연수익 17.1%짜리 3년 만기 상품이다. 두 종목이 만기 때까지 발행 당시 주가(최초기준가)보다 60% 미만으로 떨어진 적이 한 번도 없으면 3년 뒤 원금에다 51.3%(17.1%×3년) 수익을 얹어 준다. 또 4개월마다 중간평가를 해 평가일 주가가 최초기준가의 95%(1년차)·90%(2년차)·85%(3년차) 이상이면 조기 상환된다. 만약 3년 동안 두 종목 중 하나라도 최초기준가의 60% 아래로 내려간 적이 있고 만기일 주가가 최초기준가의 85% 이하면 손실이 발생하게 되는데, 손실률은 두 종목 중 주가가 더 많이 내린 종목의 하락률로 결정된다.
그렇다면 이런 의문이 제기될 수 있다. 지금 같은 저금리 시대에 증권사는 무슨 수로 연 17%의 수익을 보장해주는 것일까. 답은 '변동성'에 있다. 일반적인 종목형 ELS의 경우 초기에는 고객 투자금의 약 50%는 채권에, 나머지는 기초 자산과 관련된 상품(특정 종목 주식 현물이나 선물·옵션 등)에 투자한 후 '델타 헤지 트레이딩'이라는 투자 방식을 통해 주가 변동에 따라 수익을 창출하게 된다. 주가가 하락하면 현물을 매수하고, 가격이 상승하면 매도해 이익을 실현하는 투자 방식이다. 기초 자산의 가격 변동성이 높을수록 수익이 높아지기 때문에 증권사는 ELS를 발행할 때 주가의 변동성이 크고 거래량이 많은 종목들을 주로 선택한다.
기본적으로 변동성이 큰 종목들이다 보니, 주식시장이 하락할 때 ELS 기초 자산들은 더 크게 출렁이는 경향이 있다. ELS가 주식시장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시기는 원금 손실(녹인·Knock-In) 구간에 진입했을 때다. 기초 자산이 일정 범위에서 하락할 때는 ELS의 헤지 프로그램 중 상당 경우가 오히려 주식 매수 물량을 늘려 주가를 지지하는 역할을 하도록 설계돼 있다. 그러나 기초 자산이 일단 손실 구간에 진입한 순간, 더 이상 고객에게 정해진 수익률을 돌려줄 필요가 없기 때문에 그동안 지나치게 많이 사두었던 물량을 한꺼번에 청산하게 되는 구조다. 발행 물량이 많은 ELS 종목이 녹인에 걸릴 경우, 같은 종목을 기초 자산으로 한 또 다른 ELS 상품을 녹인으로 이끄는 '녹인이 녹인을 부르는' 효과가 일어나는 셈이다.
또 ELS의 기초 종목이 되는 주식은 20여개 정도로 제한돼 있는 데다, 증권사들이 비슷비슷한 상품들을 같은 시기에 내놓기 때문에 ELS의 만기가 겹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각 증권사가 비슷한 시기에 매도 물량을 쏟아내 주가 하락 폭이 더욱 커지는 체인 리액션(chain reaction·연쇄 반응)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일부러 주가 내렸다" 소송도… 입증 쉽지 않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종목형 ELS에서 잇따라 손실이 발생하면서 종목형 ELS에 대한 불신은 극도로 높아진 상태다. 주식 관련 게시판에는 "증권사들이 수익을 주지 않기 위해 일부러 주가를 끌어내리는 바람에 손해를 봤다"는 투자자들의 목소리가 높다. 과거에도 ELS의 기초 종목이 만기를 앞두고 급락해 손해를 본 투자자들이 증권사들을 상대로 소송을 내거나 증권사 트레이더들이 기소당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법원은 이 소송에서 모두 증권사의 손을 들어줬다. "정상적 헤지 거래를 벗어난 인위적 주가 조작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는 이유였다.
2012년에는 삼성전자와 KB금융 주식을 기초 자산으로 하는 한국투자증권의 원금 비보장형 ELS(부자아빠 ELS 289회) 투자자들이 이 증권사와 백투백헤지(Back to back hedge·다른 금융기관으로부터 같은 구조의 ELS를 조금 더 싼 값에 매입해 만기 때 고객 상환금을 보장받는 위험 분산 행위) 계약을 맺은 도이치뱅크를 상대로 집단 소송을 내기도 했다. 투자자들은 "도이치뱅크가 수익금을 주지 않기 위해 일부러 만기 직전 42만주가량의 KB금융 주식을 매도하는 부정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해 1심에서 승소했지만, 2심에서는 패소해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ELS(주가연계증권·Equity Linked Security)
주가지수나 특정 종목의 주가 방향성에 따라 수익률이 결정되는 파생금융상품. 주가가 하락하더라도 일정 범위 내에서만 움직이면 약속한 이자를 지급하지만, 주가가 범위를 벗어나 폭락하면 원금을 잃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