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에 식품류를 납품하는 중소업체 E사는 얼마 전, 마트 바이어로부터 반갑지 않은 전화를 받았다. E사의 경쟁업체가 판촉행사에 참여하기로 했으니, E사도 이를 따르라고 한 것. E사는 제품을 하나 사면 공짜로 하나를 더 얹어주는 '1+1 행사'에 참여하기 위해 자체 비용을 들여 제품 포장도 바꾸었다. E사 관계자는 "원가와 공급가격이 거의 같아지는 데도, 행여나 불이익을 받을까 불평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중소 식품업체 B사를 운영하는 사장 김(52)모씨는 납품처인 A마트에서 할인 판매 소식이 들려 올 때마다 분통이 터진다. A마트가 제품을 싸게 팔면서 수익률이 떨어지면, 중소업체와 마트 중간에 있는 벤더사가 B사의 몫으로 돌아갈 대금을 이용해 떨어진 마진을 챙기기 때문이다. 김씨는 "대형마트에서 납품업체에 직접 대금을 지급해야 한다"며 "말 못하는 중소업체만 피해를 보고 있다"고 말했다.
중소기업 절반 이상이 대형마트의 불공정거래 피해를 감내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중소기업중앙회는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중소기업 312곳을 대상으로 애로사항을 조사한 결과, 불공정 거래를 당한 중소기업의 55.9%는 '특별한 대응 방법 없이 감내한다'고 답했다고 7일 밝혔다.
불공정 거래유형은 '부당한 납품단가 인하 요구'와 '추가 비용 부담 요구'가 각각 50.0%로 가장 많았다. '납품이 끝난 뒤 훼손되거나 분실된 상품에 대한 반품 조치'가 38.2%, '판촉 사원에게 다른 업무를 수행할 것을 강요'하는 경우도 35.3%에 달했다.
중소기업은 불공정 거래행위를 근절하기 위한 대책으로 '신고자에 대한 비밀 보장'을 49.3%로 첫째로 꼽았다. 이어 '직권조사와 단속 강화'가 45.3%, '대형 마트에 대한 제재 강화'가 44.7%를 차지했다. 대형마트와의 상생 협력 방안으로는 '적정 납품가격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이 37%로 가장 많았다.
다만 불공정 거래 경험은 2008년 46.9%에서 올해 11.3%로 감소했다. 2011년 대규모 유통업법이 제정되고 표준계약서가 개정되는 등 제도적 장치가 마련된 데 따른 것으로 보인다.
김정원 중기중앙회 소상공인정책실장은 "대형마트의 불공정행위는 개선되고 있지만, 아직도 납품 중소기업은 불공정 행위에 문제제기 조차 못 하는 상황"이라며 "정부의 직권 조사와 단속 강화와 함께 중소업체를 보호하는 제도가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