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인생에도 흑자(黑字)와 적자(赤字)가 있다. 단 한 번 삶을 사는 건데, 처음 태어날 때부터 적자 인생으로 살겠다는 카드는 없다. 하지만 요람에서 시작된 적자 인생을 평생 면치 못하는 카드가 있는가 하면, 고군분투 끝에 인생 역전해서 흑자 인생으로 돌아서는 카드도 있다.

카드의 운명을 가르는 것은 소비자들이다. 기본 혜택이 푸짐하고 그 혜택을 집요하게 뽑아쓰는 소비자가 많이 모여 있으면 카드사의 가슴은 멍든다. 금융감독원이 정우택 국회의원에게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이런 적자 카드는 모두 141개였다. 9개 카드사가 지난 1년간(2013년 9월~2014년 8월) 수익 대비 비용이 많이 나가 손해를 본 카드들이다. 익명을 요구한 카드사 관계자는 "신규 고객을 잡으려면 어쩔 수 없이 손해를 감수하고 그럴싸한 미끼를 던져야 할 때가 있다"면서 "소비자 입장에선 그런 미끼용 적자 카드를 골라내어 쓰면 이득"이라고 귀띔했다.

적자 카드들은 카드사의 주력 상품이어서 소비자에게 유리한 알짜 서비스가 푸짐하고, 일명 '모심발'(모집·심사·발급)로 불리는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어가는 1~3년 된 새내기 카드가 많았다. 대개 소비자들이 온라인이나 SNS로 '대박 카드'라며 정보를 주고받고, 그에 따라 회원이 급증해 손해가 더 커지는 구조를 갖고 있다.

하나SK 클럽SK카드는 지난 1년간 247억원 손해를 본 업계 최고 적자 카드였다. 실적에 따라 통신요금 최대 1만5000원, 교통요금 7%, 주유 할인 리터당 150원, 학원비 10% 등 너무 인심이 후했던 것이 원인이었다. 알뜰 소비자들의 집중 표적이 되자, 하나 SK카드는 지난 2월 부랴부랴 혜택을 축소했지만 적자를 줄이기엔 역부족이었다.

적자가 둘째로 많았던 롯데 VEEX카드(-243억)는 모든 가맹점에서 최대 2%까지 적립되는 포인트 특화 카드다. 포인트 적립률이 업계 최고 수준이고 유효기간도 없기 때문에 쓸수록 소비자에게 유리하다.

우리 다모아카드(-207억)는 아무 조건 없이 포인트를 0.7% 쌓아줘 소비자들 사이에서 '무적의 카드'로 불린다. 모든 가맹점에서 최소 0.8% 할인 혜택을 주는 KB국민 혜담2카드도 183억 손해를 끼쳤다. 삼성카드2는 알짜 서비스를 많이 탑재해 적자가 났다. 교통요금·통신요금 10%, 놀이공원 50% 등 할인 폭이 커서 20~30대 고객에게 인기다.

카드업계 관계자는 "젊은 층은 지금은 소득이 많지 않아도 훗날 소득이 안정될 때가 있다"면서 "이들을 선점해 놔야 해서 혜택을 많이 몰아주기도 한다"고 말했다.

현대카드는 지난 1년간 적자가 난 카드가 하나도 없었다. 지난해 7월 월 50만원 이하로 쓰는 소비자에겐 포인트를 아예 안 쌓아주는 강도 높은 정책을 시행했는데, 단물만 뽑아먹는 충성도 낮은 고객을 도려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