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금융계열사인 삼성생명(032830)과 삼성화재 지분을 취득한 것에 재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취득 지분율이 0.1%씩에 불과하기 때문에 지배구조에 미치는 영향은 극히 미미하지만, 삼성가(家) 후계자인 이재용 부회장이 이번 지분 취득으로 인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특수관계인 위치에 오르게 된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해 1월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2013 CES(가전전시회)'를 참관하고 나오는 모습이다.

특히 삼성생명 지분을 취득하는 것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삼성전자 지분을 7.2% 가지고 있는 삼성생명은 ‘제일모직→삼성생명→삼성전자’로 이어지는 순환출자 고리의 중간고리 역할을 하고 있고, 삼성화재와 삼성카드, 삼성증권 등을 지배하는 금융계열사의 축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번 지분 매입이 향후 삼성 금융계열사에 대한 이재용 부회장의 영향력을 강화시키려는 조치의 시발점으로 보는 시각도 나오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 삼성생명ㆍ삼성화재 ‘특수관계인’ 지위 취득

2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삼성생명과 삼성화재는 이재용 삼성전자(005930)부회장이 자사 지분 0.1%씩을 취득할 예정이라며 대주주 변경승인을 요청했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5월 삼성생명이 삼성자산운용 지분을 100%를 매입하기로 한 데 따라, 본인의 삼성자산운용 지분 7.7%를 팔고 받은 250억원(세금 제외)으로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지분을 각각 0.1%씩 매입할 예정이다.

보험업법 시행령에 따르면, 경영사항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주주의 경우 지분을 취득할 때 금융위원회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사전 승인을 얻지 않고 지분을 취득하면 6개월 안에 금융위로부터 주식 처분 명령을 받을 수 있다. 금융위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대주주 변경 승인안을 오는 29일 의결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6월 말 기준 삼성생명의 최대주주는 지분 20.7%를 보유한 이건희 회장이다. 이어 이재용 부회장이 최대주주인 제일모직(옛 삼성에버랜드)가 19.3%를 갖고 있으며, 이건희 회장의 여동생인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이 최대주주인 이마트(139480)가 7.3%를 보유하고 있다. 삼성화재의 경우 삼성생명이 지분 15%를 보유한 최대주주다. 이번 지분 매입이 매듭되면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생명과 삼성화재의 특수관계인 지위를 갖게 된다.

삼성그룹 주요 계열사 지분관계

이 때문에 전체 지분 1% 이상 변동이 있을 경우 받도록 한 대주주 변경승인 심사를 이 부회장이 지분 0.1%를 취득하면서 받겠다고 나선 의도를 의심하는 시각도 있다. 보험사의 경우 개인이 대주주가 되기 위해선 금융당국의 적격성 심사를 거쳐야 하는 등 승인 절차가 까다롭기 때문에 미리 이건희 회장의 특수관계인으로 등재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도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언젠가는 이건희 회장이 가진 삼성생명 지분을 증여받아야 하기 때문에 미리 특수관계인 지위를 획득하려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그러나 삼성은 이런 시각을 경계하고 있다. 삼성 관계자는 “삼성생명과 삼성화재 지분을 취득하기로 한 것은 삼성자산운용 보유주식 매각을 통해 마련된 250억원의 효율적인 운용안을 찾는 과정에서 결정된 것”이라며 “현재로서는 추가 매입 여력이 없다”고 말했다. 삼성생명 등 금융계열사 지분을 추가로 매입할 계획이 없다는 것이다.

◆ 이재용 부회장, 금융에 관심…금융계열사 지배력 높일까

이재용 회장이 금융회사 지배구조의 핵(核)인 삼성생명 지분 취득에 나섰다는 점을 주목하는 시각도 있다. 이재용 회장은 이제껏 삼성생명 지분을 단 1주도 갖고 있지 않았다. 이재용 부회장의 주요 삼성 계열사 지분은 삼성전자 0.57%(9100억원), 삼성SDS 11.3%(2조6000억원), 제일모직 25.1%(1조5000억원) 등이다.

재계에서는 이번 지분 취득을 두고 이 부회장이 금융계열사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관점에서 바라보기도 한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27일 삼성그룹 영빈관인 서울 이태원 승지원에서 중국·일본의 주요 금융기업 사장들을 초청해 만찬을 주재하는 등 금융 분야에 부쩍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서는 제조업 계열사 지배구조 구축을 일단락한 삼성이 이 부회장의 경영승계에 대비해 금융계열사 지배구조 구축을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삼성전자 자사주와 이 부회장과 오너 일가가 보유한 삼성SDS, 제일모직 지분을 활용해 삼성그룹 제조업 계열사를 지배하는 지주회사 전환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는 점이 이 같은 시각을 뒷받침한다.

이 같은 움직임이 제조업 지주사와 분리된 금융 지주회사 설립까지 갈 수 있을 지가 관심사다. 학계 등에서는 삼성전자를 주축으로 하는 통합 지주사를 구축한 삼성이 이건희 회장 등 오너 일가가 가진 삼성생명 주식을 출자해 지주사 지배권을 높인 뒤, 여기에서 별도 금융 지주회사를 분리하는 형태의 시나리오를 예상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삼성이 지주회사 형태로 지배구조를 전환하게 되면 금산 분리 원칙에 따라 별도 금융지주사를 만들 수밖에 없을 것”이라며 “이재용 부회장이 금융회사 지배력을 높이려고 하는 것은 이를 대비하기 위한 측면이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