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은 아버지인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을 쏙 빼닮았다고 삼성그룹 직원들은 평가한다. 외모뿐만 아니라 똑부러진 성격까지 아버지를 닮았다고들 말한다.

삼성그룹 주변에서 그룹 경영권과 관련한 소문이 끊이지 않는 것이나 이 회장이 드러누운 이후 상속에 대한 얘기가 많아진 것도 아버지를 닮은 이 사장의 성격에서 비롯된 부분이 적지 않다. 장녀 이부진 사장에 대한 이 회장의 사랑은 각별했다. 이부진 사장은 갓난아기 때 몸이 약했다고 한다. 아버지 이건희는 이 때문에 ‘유진’이란 이름을 세 살 때인 1973년 현재의 ‘부진(富眞)’으로 고쳤다. 개명 덕분인지, 커가면서 면역력이 생겨서인지 이 사장은 이후 건강하게 컸다.

이 사장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부녀 사이에 큰 부딪침이 없었다. 부녀 간에 처음 갈등이 생긴 것이 바로 임우재(46) 부사장과의 결혼 과정에서다. 이 사장은 1993년 연세대 아동복지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 삼성복지재단 평사원으로 삼성그룹에 발을 들여놨다. 임우재 삼성전기 부사장이 삼성그룹에 입사한 것도 같은 해 2월이다. 일각에는 임 부사장이 경호원으로 알려져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임 부사장은 단국대 전자계산학과를 졸업하고 삼성그룹 계열사인 에스원의 사업기획실 전산실에 평사원으로 입사했다. 전공을 살려 삼성그룹에 들어왔다. ‘경호원’이란 소문은, 에스원의 전신이 한국경비실업이라는 보안전문업체였기 때문에 잘못 난 것으로 보인다.

1999년 6월 10일 서울 신라호텔 다이너스티홀에서 열린 이부진 사장과 임우재 부사장의 결혼식

같은 해 입사한 두 사람은 잘 알려진 것처럼 사회봉사활동을 하면서 처음 만났다. 이 사장이 사회공헌활동을 담당했던 삼성복지재단에서 일한 데다가, 입사연도가 같았다는 인연이 있었다. 임우재 부사장에 대해 잘 알고 있는 한 인사는 임우재 부사장에 대해 “신중한 데다 성품이 좋다”고 말했다. 그는 매사에 적극적이고 외향적인 이 사장과 잘 맞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두 사람이 연애를 시작할 때만 해도 삼성그룹 주변에서는 평사원 이부진이 이건희 회장의 딸이란 걸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부진이 회사 오너의 딸이란 사실이 점차 알려지면서 두 사람의 관계가 언제까지 갈 것인지에 대한 관심도 커졌다. 이러쿵저러쿵 하는 주변의 말들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약 4년간 연애를 계속했다.

두 사람의 결혼과정에서 이 회장 부부의 반대가 심했다고 알려져 있는데, 정작 두 사람의 결혼을 극구 말렸던 것은 임우재 부사장의 부모였다. 양측 집안 간 차이가 너무 심하다는 이유에서였다. 하지만 양가 부모님을 모두 설득한 것도 바로 이부진 사장이었다. 이 사장이 여러 차례 임 부사장 측 부모를 만나 결혼에 대한 확고한 의지를 내비친 끝에 비로소 허락을 했다고 한다. 이 사장 측에서는 이건희 회장보다 홍라희 여사의 반대가 심했으나 이부진 사장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이 회장도 이 사장이 임우재 부사장과 결혼하겠다고 말하자, 대놓고 반대는 못했지만 신라호텔 커피숍이 문을 닫을 때까지 혼자 앉아 고민에 빠질 정도로 근심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우여곡절 끝에 1999년 결혼에 성공했고, 두 사람의 결혼스토리는 많은 화제를 모았다.

결혼 후 1년 정도까지 큰 문제가 없었으나, 이 사장의 동생인 이서현 제일모직 사장이 2000년 결혼하면서 상황이 어느 정도 바뀌었다. 당시 이서현 사장의 남편은 동아일보 고 김병관 명예회장의 둘째 아들인 김재열씨였다.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중학교 동창인 데다, 언론사 사주의 아들이었던 만큼 삼성가의 일원이 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이재용 부회장의 아내였던 임세령씨 역시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딸이었기 때문에 임 부사장이 상대적으로 위축될 만한 상황이었다. 임 부사장이 가족모임에 나가기 힘들어했던 것도 이 시기다. 임 부사장과 삼성그룹 입사동기인 한 인사는 “아주 드물게 동기모임에 나오면 개인적 어려움을 토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임우재 삼성전기 부사장(왼쪽)과 김재열 삼성엔지니어링 사장

임 부사장이 해외지사로 나갔던 때도 이맘때다. 임 부사장은 2000년부터 삼성물산 도쿄주재원과 삼성전자 미주본사 전략팀을 거치면서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그가 다시 국내로 돌아온 것은 2005년 1월 삼성전기 기획팀담당 상무보 발령이 나면서부터다. 그는 이후 줄곧 삼성전기에서 일하면서 상무보에서 상무-전무-부사장으로 승진했으나, 아랫동서인 김재열 사장에 비하면 승진이 훨씬 늦었다. 김재열 사장은 이미 2011년 3월 제일모직 사장으로 승진했다가, 같은해 12월에는 삼성엔지니어링 사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임 부사장이 삼성전기 부사장으로 승진한 것은 2012년 1월이다.

임 부사장이 삼성전기로 와서 경영에 막 뛰어든 시기, 이 부사장은 호텔신라로 자리를 옮기며 본격적으로 경영능력을 뽐내기 시작했다. 커피 브랜드 아띠제 론칭, 인천공항 신라면세점 위치 이동 및 루이비통 유치, 김포공항 면세점 입점, 싱가포르 창이공항 면세점 사업권 획득 등이 이부진 사장이 경영에 뛰어든 이후 이뤄진 일들이다. 이 사장이 호텔신라에 처음 입사했던 2005년 호텔신라 주가는 1만원 아래였으나 최근에는 12만원대를 찍기도 했다. 이 사장은 한때 삼성물산 상무를 겸임하면서 삼성물산 유통 부문까지 맡으려 했으나 현재는 손을 뗀 상태다. 삼성물산은 삼성그룹의 모태가 되는 기업인 만큼 이재용 부회장이 맡는 것이 모양새가 좋다는 이유에서였다. 이 사장은 서울 삼성동 한국전력 부지가 매물로 나왔을 때 형제 중 누구보다 이 땅에 관심을 보인 걸로 소문이 나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사업 분야에서 승승장구 하던 이부진 사장이 지난 10월 8일 이혼소송을 제기하자 ‘아버지가 병환 중인데 왜 그런 일을?’이라며 사람들은 의아해했다.

언론은 이부진 사장과 임우재 부사장의 이혼 신청 사유에 대해 성격차이로 보도하고 있다. 하지만 삼성그룹 내부 사정에 보다 밝은 인사들의 얘기는 성격차이가 없을 수 없지만 애초부터 양측이 자라온 환경이 너무 달랐던 것이 보다 큰 원인이었다고 말한다. 결혼 초 두 사람의 ‘허니문’ 기간 동안에는 상대적으로 이 문제가 부각되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경영문제와 연관이 되면서 이런 문제들이 본격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것. 여기에 이 사장이 경영자로서 그룹 안팎에서 높은 평가를 받으면서 경영에 욕심을 내기 시작한 것도 두 사람 간 사이가 소원해진 원인으로 꼽힌다.

이부진 사장은 결국 지난 10월 8일 수원지법 성남지원에 임우재 부사장을 상대로 이혼 소송과 함께 아들 임모군의 친권자 지정 소송을 냈다. 이에 대해 이부진 사장 측 소송 대리인인 윤재윤 법무법인 세종 대표변호사는 “두 사람은 이미 중요한 부분에서 합의를 마쳤고 원만하게 이혼을 마무리하기 위해 조정을 신청했다”며 “앞으로 비공개 심리 등을 거쳐 잘 해결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협의 이혼 방식을 택하면 두 당사자가 직접 가정법원에 출석해야 한다. 반면 조정을 통해 합의가 성사되면 재판을 할 필요가 없으며, 양측 대리인을 통한 조정 결정은 확정판결과 동일한 효력을 지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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