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은 중국과 인도에서 TPA(테라프탈산) 수요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지난해 공장을 증설했다. 하지만 올해 초 1년 만에 감산을 결정해야 했다. 중국 업체들이 자체적으로 TPA 생산에 돌입하면서 수요가 줄었고 국내업체와의 경쟁도 더 치열해졌다.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꼽혔던 파라자일렌(PX) 역시 과잉공급 때문에 국내 업체들이 감산에 돌입했다. 현대코스모는 올해 PX공장 설비 가동을 중단했고, 에쓰오일 삼성토탈 SK종합화학 역시 감산에 들어갔다.

제조업 국내총생산(GDP)이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1분기 이후 처음으로 감소했고 수출이 4분기만에 줄어들면서 그동안 우리 경제의 버팀목이었던 제조업과 수출에 문제가 생긴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와 조선업체 등 우리나라 주력 대기업들의 실적이 악화되고 있고 중국의 경기둔화, 유로존 경기 침체, 엔저 현상 장기화 등 대외 여건도 나빠지고 있어서 앞으로도 좋아지기가 쉽지 않다는 위기감이 확산되고 있다.

한국은행이 24일 발표한 '2014년 3분기 실질 국내총생산(속보)'에 따르면 3분기 GDP는 전분기대비 0.9% 성장해 올해 1분기 수준을 회복했지만 우리 경제의 핵심축인 수출과 제조업에 비상등이 켜졌다. 수출은 전분기대비 2.6% 감소했고 제조업 GDP는 0.9% 줄었다. 제조업 GDP 감소는 2009년 1분기(-2.4%) 이후 5년 6개월 만이다. 수출이 줄어든 것은 작년 3분기(-1.1%) 이후 1년 만이다.

◆ 수출이 위태롭다…1~9월 원화 기준 수출 감소

정영택 한은 경제통계국장은 "해외 생산 비중이 높은 삼성전자가 최근 하이엔드(high end·최고급) 시장에서는 애플에 밀리고 로엔드(low end·저가)에서는 샤오미 등 중국 제품에 영향을 받아 영업이익이 큰 폭으로 줄었다"며 "이런 부분이 3분기 GDP에 반영됐다"고 말했다. 또 엔저 현상으로 인해 현대자동차의 수출이 줄고 자동차 업계가 3분기에 파업이 있었던 영향도 있었다.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 우리나라 주력 대기업의 실적이 악화되며 제조업 국내총생산(GDP)이 세계 금융위기 이후 처음 감소했다. 수출도 4분기만에 감소했다. 우리 경제의 버팀목으로 꼽히는 제조업과 수출에 비상등이 켜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사진은 부산항 감만부두에서 수출화물을 선적 중인 컨테이너선의 모습.

다만 정 국장은 “수출이 전분기대비로 줄어든 것이지 1~3분기 수출증가율은 전년동기대비 3.4% 증가했다"며 “지금 봐서는 큰 문제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김성태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도 "보통 3분기에는 하계휴가도 있고 추석 연휴 등 쉬는 날이 많아서 수출금액이 적은 경향이 있다"며 "작년에도 수출증가율이 3분기에만 마이너스(-1.1%)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수출이 심상치 않다는 이상 징후가 보이고 있다. 수출 증가율은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인 2009년 -0.3%를 저점으로 2010년 12.7%, 2011년 15.1%로 높아졌다가 2012년 5.1%, 지난해 4.3%로 낮아졌다. 올해 1~3분기에는 전년동기대비 3.4%로 계속 둔화되는 추세다. 이처럼 달러 기준 수출액은 증가했으나 기업의 수익성과 직결되는 원화로 환산한 수출 증가율은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으로 감소세로 전환했다. 올들어 9월까지 원화 환산 수출 증가율은 -3%인 것으로 집계됐다. 기업들이 원화로 손에 쥐는 돈은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의미다.

◆ 앞으로가 더 문제…중국 ‘경지부진’ 유로존 ‘D망령’에 수출 비상등

앞으로도 수출이 둔화될 가능성도 크다. 한은은 올해 수출 증가율 전망치를 지난 7월 예상한 4.9%에서 이번 10월 수정전망 때 3.6%로 낮춰잡았다. 내년 전망치도 6.3%에서 5.2%로 하향 조정했다. 유로존과 중국 등 세계경제 성장률이 둔화될 전망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올해 3분기 경제성장률은 7.3%로 5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을 기록했다. 2011년 9%대에서 2012년 7%대 후반, 지난해 7%대 중후반 등으로 계속 낮아지는 추세다. ‘디플레이션 망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유로존은 성장률이 2012년 -0.7%, 지난해 -0.4%로 2년 연속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고 올해도 성장률이 1분기 0.2%, 2분기 0.0%에 그쳤다.

특히 중국의 부품 소재 자급자족이 크게 늘면서 우리의 부품, 중간재 수출이 타격을 받고 있다. 올해부터 GDP 편제 개편으로 해외에서 생산하는 부품, 중간재 등 가공무역까지 GDP로 잡히고 있는데, 이 실적이 악화되면서 제조업 GDP, 수출 GDP 성적이 좋지 않았다.

임희정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위기 이후 수출이 매우 좋았는데 앞으로 계속 잘 나갈 수 있을까 하는 우려가 있다"며 "중국 경기둔화와 유로존 경기부진이 지속될 것 같고 엔저 현상도 시차가 다 돼서 우리에게 부정적인 효과가 나타날 때가 됐다"고 말했다. 아직 일본 기업들의 가격 인하가 없었는데 앞으로 가격 인하까지 겹치면 일본 기업들과 경합하는 품목들에서 우리 기업들이 더 고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 ‘삼성전자 현대차 쇼크’ 제조업 흔들린다…매출도 수익도 둔화

3분기 GDP를 업종별로 보면 제조업은 0.9% 줄어 유일하게 감소세를 보였다. 전기가스수도사업(4.7%) 건설업(1.8%) 서비스업(1.4%) 농림어업(1.9%)은 모두 증가했다. 서비스업 중에서도 도소매 및 음식숙박업, 운수 및 보관, 금융 및 보험, 부동산 및 임대, 보건 및 사회복지 등이 모두 증가했는데 제조업만 감소했다.

제조업의 매출증가율과 수익증가율도 둔화되고 있다. 지난해 6~12월 결산법인 49만2288개를 조사한 결과 제조 기업들의 지난해 매출 증가율은 0.5%로 통계 집계를 시작한 1961년 이래 사상 최저 수준이었다. IMF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0.71%)이나 글로벌 금융위기 후인 2009년(2.21%)보다도 더 낮았다. 제조업 기업들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5.3%로 사상 최저였던 2012년(5.1%)과 얼마 차이가 나지 않았다.

특히 우리나라의 간판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흔들리는 것도 문제다. 재벌닷컴 등에 따르면 국세청 법인세 신고기업 기준 삼성그룹과 현대차그룹의 영업이익은 2012년 39조원으로 전체 기업 155조1000억원의 24.9%의 비중을 차지한 것으로 집계됐다. 두 그룹의 매출액은 412조원으로 비중이 전체 기업 매출액 3464조1000억원의 11.9%에 이른다. 올해 3분기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은 4조1000억원으로 작년 3분기(10조1600억원)보다 59.65% 감소했고 현대차의 영업이익은 1조6487억원으로 18.0% 줄었다.

임희정 연구위원은 "전기전자 반도체 조선 자동차 석유화학 등 우리나라 경제를 이끌어온 주력산업들이 그동안 잘 나갔는데 이제는 정점에서 내려오는 사이클로 가고 있지 않나 싶다"고 말했다. 글로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선진국에 밀리고 중국 등 신흥국에 쫓기는 형국이라는 것이다. 반면 김성태 연구위원은 "제조업 수치가 안 좋아진 것은 맞지만 구조적으로 위축되고 있다고 판단하기엔 이르다"며 "조업일수 감소 등 일시적인 측면도 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