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풀은 이탈리아의 1위 생활가전 업체인 인데시트(Indesit)를 10억달러(약 1조원)에 인수하는 절차를 최근 완료했다. 생활가전은 냉장고·세탁기·청소기·에어컨 등 일상생활에서 사용하는 전자제품을 말한다. 월풀은 이번 인수를 통해 본격적으로 유럽 시장 공략에 나선다는 전략이다. 스웨덴의 일렉트로룩스도 올 9월 미국 GE의 생활가전 사업부를 33억달러(약 3조5000억원)에 인수하며 몸집을 크게 키웠다.

최근 세계 생활가전 업계 1, 2위 업체들이 연이어 M&A(인수합병)를 단행하면서 업계가 요동치고 있다. 이런 추세는 M&A보다는 자체 역량을 강화해 세계시장을 공략해온 LG전자·삼성전자의 행보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M&A 무풍지대에서 폭풍 속으로

생활가전 업계는 판도에 큰 변화가 없는 보수적 사업 영역이었다. 제품의 교체 주기가 긴 데다 오랫동안 사업을 진행하면서 브랜드 가치와 신뢰를 쌓은 기업이 많기 때문. 예를 들어 스마트폰은 2∼3년에 한 번씩은 제품을 교체하지만 냉장고·세탁기 등은 10년 이상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밀레·다이슨 같은 고가(高價)의 프리미엄 브랜드는 오랫동안 쓰다가 자녀에게 물려줄 정도로 브랜드에 대한 애착이 크다. 다른 회사 제품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별로 없는 것.

실제로 미국에서는 월풀, 유럽은 일렉트로룩스나 지멘스처럼 각 국가, 지역별로 전통적인 강자(强者)들이 높은 점유율을 누리고 있다. 이렇다 보니 상대방 시장을 넘보기보다는 안방 시장을 지키는 전략을 주로 사용해왔다.

최근에는 이런 판도가 급격히 변하고 있다. 일렉트로룩스는 인수를 추진한지 6년 만에 미국 GE의 생활가전 사업부를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유럽에서는 독보적인 1위이지만 북미 시장에서는 월풀에 크게 뒤지는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승부수인 셈이다.

GE는 작년 미국 생활가전 시장에서 3위를 기록한 업체다. 일렉트로룩스는 GE 브랜드를 유지하면서 북미 지역을 공략할 계획이다. 일렉트로룩스의 키이스 맥로린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인수는 사업 전략과 구조상 딱 맞는 선택"이라고 말했다.

안방에서 공격을 당한 월풀은 이탈리아의 인데시트를 인수하는 것으로 맞불을 놨다. 인데시트는 이탈리아를 비롯해 영국, 러시아 등에서 선두권을 달리고 있다. 월풀은 작년에는 중국 가전업체 '허페이 산요'의 지분 51%를 인수해 중국 시장 공략에도 나서고 있다.

LG·삼성의 글로벌 1위 전략에 암초로

글로벌 업체들의 합종연횡은 LG전자·삼성전자 등 국내 가전업체들에는 악재(惡材)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글로벌 4~5위권을 달리는 LG와 삼성은 모두 2015년 세계 생활가전 시장 1위 달성을 목표로 내세운 상태다.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월풀 등 주요 경쟁자를 반드시 꺾어야 한다.

하지만 이번 M&A를 통해 월풀과 일렉트로룩스는 모두 연 매출 200억달러가 넘는 초대형 업체가 됐다. 작년 기준으로 월풀과 인데시트의 합계 매출은 총 222억달러(약 23조5453억원)로 집계됐다. 일렉트로룩스와 GE 생활가전을 합친 매출도 212억달러(약 22조4847억원)에 달한다.

반면 LG전자는 작년 생활가전 사업부에서 111억달러(약 11조7988억원)의 매출을 기록했다. 월풀이나 일렉트로룩스의 절반 수준에도 못 미친다. 삼성전자는 생활가전 분야 실적을 따로 발표하지 않지만 LG와 비슷한 수준으로 알려졌다.

LG전자 HA(생활가전) 사업부장을 맡고 있는 조성진 사장은 "지난 수십 년 동안 가전업계에서 진행된 변화보다 최근 1년 사이 일어난 변화가 훨씬 심하다"며 "자체 역량을 계속 강화해 경쟁력을 키워 나갈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2009년 폴란드의 가전업체 아미카를 인수해 유럽 시장을 겨냥한 생산·유통 기지로 활용하고 있다.